
[ 강남=김연정 기자]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이름을 올린 한국인이라 하면 박근혜 대통령, 한국의 부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게임 부문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이 있다.
2007년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로 데뷔, 공격적인 경기력으로 '폭군'이라는 별명을 얻고 이후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해 지금까지 프로게이머를 이어가고 있는 이제동(25)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제동은 포브스가 선정한 '2014년 주목할 30세 이하 스타' 중 게임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월드사이버게임즈(WCG) 챔피언으로 스타크래프트 2 리그에서 두 차례 우승, 지금까지 48만9000달러(한화 약 5억2000만원)의 상금을 획득하며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게이머 중 한 명이 됐다.
게임 부문에서는 대부분 게임업체 CEO, 게임 개발자, 게임 프로듀서 등이 이름을 올린 게 대부분.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이제동이 이름을 올린 것은 이변 중 하나라는 게 업계 반응이었다. 이제동 역시 "솔직히 정말 부끄럽다. 예전보다 좋지 않은 성적으로 지금은 반성할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포브스에 이름이 올라 영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10대에 프로게이머를 시작해 어느덧 20대 중반이 된 이제동. 스타크래프트 1, 한국팀 르까프 OZ 소속에서 현재 스타크래프트 2, 북미팀 '이블 지니어스(Evil Geniuses 이하 EG)'까지…. 많지 않은 나이의 이제동이지만 시작이 빨랐던 만큼 그 안에는 다이내믹한 프로게이머 인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 강민의 다음차례라고 하자 "그 전설에 제가 끼는 건가요?정말 영광이예요"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이제동을 지난 11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이 만났다. 프로게이머답지 않은 잘생긴 외모에 자신을 잘 꾸밀 줄 아는 섬세한 모습에 '조금은 까칠할 것 같다'라는 게 첫인상이었지만 그 편견은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사라졌다. 자신을 낮출 줄 아는 모습에선 일찍 사회 생활을 시작한 탓에 성숙해져야만 했던 뒷모습이 또 전성기 시절 얘기에 신이나 말하는 모습에서는 아이같은 천진난만함을 엿볼 수 있었다.

-최근 근황은 어떤가?
작년 말부터 숙소 생활을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생활하고 있고 해외팀 이블 지니어스 소속으로 재계약을 해서 이제는 완벽히 해외리그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내일 또 대회를 하러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많은 대회를 참가하며 생활하고 있다. 미국에 대회가 있을 때는 EG 숙소에 가 있기도 하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다른 해외 대회를 참여하는 상황이다.
-게임이 유일한 취미인가?
숙소 울타리 안에서 나와보니 그 당시에 몰랐던 저의 취향 같은 것들을 알게 됐다. 숙소 생활 하면서 못 해봤던 것 들,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지금 생활이 만족스럽다. 제가 운동을 좋아한다. 요새는 진짜 연습, 운동 외에는 하는 게 없다. 아! 영화 보는 것 좋아한다. 해외에 장기체류 하다가 들어오면 우선적으로 극장에 간다. 혼자서도 자주 간다. 최근에는 몬스터 봤다. 또 옛날 영화 찾아서 보는 것도 좋아한다. 헬스, 수영 가끔 한다. 킥복싱 요즘 배우려고 생각 중이다. 격투기도 배우고 싶었다. 가까운 곳에서 복싱을 가르치더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이름이 올랐다.
사실 그 전에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조금씩 아는 것들이 생기고 나고 좋은 일이 생기니 기분이 좋더라. 포브스라는 세계적인 경제 전문지에 제 이름이 올랐다는 것 영광스럽다. 주변 사람들 특히 어머니께 연락이 왔는데 그 땐 더 기분이 좋고 뿌듯하고 그랬던 것 같다.
-게임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 포브스에 이름을 올리면서 그런 시선을 없애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사실 부담도 있다. 프로게이머란 직업인으로써 이름을 올린 게 저 혼자다. 또 한국 사람이다. 한국에서 게임을 보는 여러 시각, 다양한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꿔야 되겠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게 됐고 어떻게 보면 기분 좋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부담스럽다.
-포브스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프로게이머라고 소개했다.
솔직히 정말 부끄럽다. 지금 제 자신이 반성을 하고 있는 시기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도 부끄러울 정도로 현재의 저에 대해 반성하고 있는 시기다. 현역 프로게이머로써 최근 성적이 좋지 않은게 사실이다. 매일 생각한다. 예전보다 나태해 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현실과 타협하려 하는 것 같아서 스스로 계기를 만들려 하고 있고 초심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프로 게이머는 결과로 보여주는 직업이다. 해외를 많이 오가는게 컨디션 조절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는 핑곗거리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변명으로 들릴 수 있다.

◆ 승자가 됐을 때의 쾌감, 프로게이머 직업을 선택한 이유
-스타크래프트를 선택하게 된 이유?
스타크래프트를 엄청 좋아해서 그랬던 것 같진 않다. 그냥 게임을 좋아했다. 학교 다닐 때 보면 카운터스트라이크, 서든어택 등 스타와 다른 장르도 많이 했다. 상대와 겨뤄서 이기고 지는 것들을 좋아했다. 승부욕도 강한 편이었다. 상대를 이기고 제가 승자가 됐을 때의 쾌감이 좋았다. 그래서 여러 게임을 했다. 당시 스타가 워낙 인기도 많았고 주변 친구들도 모두 했다. 또 그 안에서 제가 잘한다는 것에 대해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자신감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프로게이머가 된 것 같다.
-즐겼을 때 존경하는 선수가 있나?
TV에 나오는 프로게이머를 보면 멋있어 보였다. 당시 스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학교 가면 이런 얘기 했다. "어제 스타리그 봤냐", "4강 봤냐?". 이런 얘기들 말이다. 그 때 당시 부흥을 일으켰던 직업이 제게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다.
처음엔 프로토스, 두 번째는 테란, 마지막을 저그로 했다. 저그로 주 종족으로 삼은 이유가 있다. 테란으로 플레이하던 시절, 온라인 상에서 잘하는 저그를 만났는데 한 번도 못 이겼다. 화가 나서 종족을 바꿨다.(웃음)
-로열 로더 출신, 양대리그 섭렵, 기록 들이 굉장히 많다. 혹시 천재?
(데뷔 첫 해 이제동은 2007년 여름에 치러진 e스타즈 서울 2007 스타크래프트에서 당시 삼성전자 칸의 허영무를 2대 1로 꺾고 우승했다. 또 EVER 스타리그 2007에 진출, 결승에서 삼성전자 칸 송병구에게 3대 1 역전승을 거두며 본선진출 첫회만에 우승을 거두는 로열로더에 자리했다.) 천재? 절대 그렇지 않다(웃음).로열 로더도 어떻게 보면 시기가 잘 맞물린 것 같다. 그 전에 워낙 연습을 많이해서 기량이 순식간에 올랐다. 처음 팀에 들어갔을 때는 계속 졌었다. 불과 몇 개월만에 랭킹이 막 올라갔다. 결국에는 내부적으로 1위를 하게 됐다. 1위 지속 기간도 길어졌다. 갑자기 기량이 올라간 것과 동시에 대회에서도 흐름을 탄 것 같다. 그 때는 팀원들과 감독 코치진이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것 같다.

-이제동이 꼽는 명경기가 있다면?
너무 많아서 힘들다.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다(웃음) 2009년도 때 좋았던 것 같다. 시리즈를 뽑자면 2009년 MSL 우승을 뽑고 싶다. 이영호와와 5전 3선승제에서 이겼고 결국 우승컵까지 거머쥐었다. 그 때 생각하기에 정말 제가 잘 했다(웃음). 지금 와서 말하지만 실력적으로 자신감이 극에 달해 있던 시기였다. 그 당시 연습을 워낙 많이 하기도 했었고 다른 팀에 잘하는 테란과 맞붙어도 다 이기던 시기였다. 그러다보니 경기를 하면서도 그게 묻어난 것 같다. 그 바탕으로 공격적인 뮤탈 컨트롤 등 자신감의 절정인 플레가 나왔고 그게 바로 제 스타일, 소위 '폭군' 스타일이 된 것 같다.(웃음)
-별명이 많다. 맘에 드는 게 있나?
별명이 정말 많다. 시기 별로, 경기 별로 만들어졌다. 자주 불러 주는 것이 ‘폭군 이제동’. 예전에는 ‘이제동 신’이라는 시리즈도 있다. 다 괜찮다. 별명을 가지고 싶어도 없는 선수도 많다. ‘이제동맥경화’는 사실 실수로 만들어진 별명이다. (제8게임단 시절 이제동은 웅진 신재욱과 경기에서 마치 동맥경화에 걸린 듯, 드론에 저글링과 히드라가 막혀 움직이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 이제동은 실수로 적립됐던 대량 물량을 뒤늦게 알아챈 후 한꺼번에 풀어냈고 결국 신재욱이 GG를 치며 이제동은 경기에 승리했다.)그러나 그 조차도 만족스럽다. 잘해서 이슈가 된 건 아니지만 그 경기 때문에 팬들이 웃어줘서 감사하다.
-임진록 뒤를 잇는 택뱅리쌍의 한 명이다.
그 때는 인기가 많다는 것을 잘 못 느끼고 또 못 누렸다. 경기가 있으면 경기 준비에 모든 시간을 쏟았다. 경기가 끝나면 다시 숙소와서 연습하고 그래서 제가 얼마나 인기가 있고 그런 것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았던 것 같다. 밖에 나가면 젊은 남성분들은 모두 알아보실 정도였다.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지금이 더 편하다.(웃음)

-보통 프로게이머, 전성기 시절이 있지만 하락세를 타다가 그대로 고꾸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제동은 오뚝이 같은 모습을 자주 보였다.
(웃음)제가 절 가장 잘 안다. 게임을 하다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스스로를 놓지 않으려고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것 같다. 프로게이머라면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으면 거기서 선수의 등급이 나뉘어 지는 것이다. 설령 진짜 못할지언정 ‘최고다’라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준다. 이유없는 자신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못할 때, 자신감이 꺾일 때도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또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가끔 스스로를 벼랑으로 모는 친구가 있다. 그럴 때 안타깝다. 프로게이머는 단순히 게임만 잘한다고 해서 성공하고 성장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정신적으로 단련해야 한다.
-라이벌, 이영호를 뺄 수 없다. 어떤 존잰가?
이영호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 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창 많이 겨뤘을 땐 대회 나갈 때마다 경기에서 만났다. 그 시기엔 모든 대회에서 만나서 이기고 지고를 거듭했다. 다른 선수들과 경기 할 때보다 이영호와 게임할 때 재밌다. 연습할 때부터 신이 났다. '이영호가 뭘 들고 나올까?'라는 생각에 연습하면서도 재밌고 기대됐다. 지금은 서로 뛰는 무대가 달라서 아쉽다. 그 때를 회상하자면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선수였던 것 같다.
-얼마전 스타크래프트 1 이벤트 전인 '파이널 포' 현장을 찾았다.
정말 재밌었다. 예전 스타 1 프로게이머할 때는 밖에서 게임하는 걸 싫어했다. 친구들이 만나면 하는 말이 있었다. "스타 한 판?".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아마 축구선수도 오랜 연습 끝에는 축구공 보기가 지겨워지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 스타 1은 어떻게 보면 대중에게 좀 멀어진 추억 속의 게임이다.
사실 파이널 포 선배들의 경기가 그렇게 퀄리티 있는 경기는 아니였다(웃음). 단 그 곳은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닌 축제였다. 즐기는 입장에서 보는데 정말 좋았다. 제가 정말 스타 1을 좋아해서 했던 옛 추억도 생각나고. 팬으로써 즐겼던 것 같다. 쌈장 이기석 선배도 실제로 봤다. 정말 놀랐다. 광고에서만 봤었는데....
제게 지금 스타 1을 하라고 하면 진짜 못할 것 같다. 스타 2 선수이기도 하고 절대 예전 기량이 나올 수 없다. 그래도 어쨌든 프로게이머다.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이상의 실력은 되지 않을까?(웃음) 그러나 스스로에게 만족을 주진 못할 것 같다.
<21일,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 해외팀 소속 그리고 e스포츠에 대한 이제동의 생각이 담겨 있는 [SS e-레전드] 이제동 ②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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