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재근 기자] 지난달 27일 상고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최태원 SK㈜ 회장이 4일 그룹 내 계열사에서 맡고 있던 모든 등기이사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옥중'에서도 SK C&C 정기 주주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사내이사에 재선임 됐던 최 회장이 1년 만에 그룹 경영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나게 되면서 최 회장의 경영 행보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4일 SK그룹은 최 회장이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SK㈜와 SK이노베이션, 2015년과 2016년 각각 임기가 끝나는 SK C&C, SK하이닉스의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의 사임 결정을 놓고 재계 일각에서는 SK그룹 측은 최근 재계 총수들의 잇따른 실형 판결로 불거진 '책임론' 등이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재판부로부터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이후 최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과 관련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2004년부터 SK그룹의 회장은 물론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맡으며 그룹의 '얼굴'을 맡았던 최 회장이 SK케미칼 부회장을 맡았던 김창근 의장을 그룹의 대표자리에 앉히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지만, 등기이사 자리에서만큼은 내려오지 않았다.
지난해 3월 22일 열린 SK C&C의 제22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 회장이 만장일치로 사내이사에 재선임되자,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을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최 회장의 경제범죄 혐의 등을 문제 삼으며 재선임 안건에 대한 철회를 요구하는 등 잡음이 잇따랐다.
구속수감 상태에서 지급된 수억원에 달하는 고액의 등기이사 보수도 도마에 올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최 회장이 등기이사로 등록된 SK㈜, SK이노베이션, SK C & C, SK하이닉스가 등기이사에게 지급한 보수는 계열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평균 4억6000만원 수준이다. 수감 중인 최 회장에게 지급된 액수만 약 20억원으로 대외활동에 전념했던 2012년(상반기-13억8700억원) 당시보다 '옥중경영' 상태에서 받은 보수가 7억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사임과 관련해 회사의 발전과 도의적인 책임에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계열사 등기이사직에 후임 사내이사를 선임하는 대신 사외이사 비중을 확대,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은 SK그룹이 더는 논란에 휩싸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며, 사임 결정 역시 회사의 안정과 성장이 최우선으로 하는 최 회장의 뜻이 전적으로 반영된 것"이라며 "(최 회장이) 이사직을 사임하더라도 회사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백의종군의 자세로 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의 결정으로 SK그룹은 오너의 '책임경영' 논란에서 일정 부분 부담을 더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풀어야 할 과제는 남아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의 신규 반도체 사업은 물론 대규모 자원개발 사업을 비롯한 그룹 차원에서 전략사업으로 추진 중인 굵직한 국외사업 프로젝트 등 최 회장의 역할과 존재감이 필수적인 비즈니스들이 대거 남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펙스추구협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최 회장은 그룹의 국내 사업에서는 한발 물러나 국외신규사업개발을 비롯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전념, 각 계열사의 동반성장을 지원하는 그룹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최 회장은 1심 선고공판이 열리기 일주일 전인 지난해 1월 24일에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한국의 밤(코리안 나이트)' 행사에 특별연사로 나서 글로벌 경제 리더와 각국 고위 정부 인사들을 상대로 한국에 대해 설명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최 회장의 실형 확정으로 형기가 2년 11개월이 남은 상황에서 최소 2~3년의 경영 공백이 불가피해진 만큼 신성장동력 발굴에 집중해 왔던 그룹 경영에도 난항이 예상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라크 수주 프로젝트에서 총수의 부재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한화의 사례에서도 확인했듯이, 대규모의 자금이 투입되는 국외 사업 프로젝트의 경우 그룹 총수의 역할이 상당하다. 그룹차원에서도 최 회장의 경영 공백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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