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T

검색
칼럼
한국축구, 하늘이 준 1년...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박순규의 창]
월드컵 참사·리더십 공백·내분설 속 찾아온 '반전의 기회'
모레노 평가부터 김은중호 육성까지…한국축구 명예 회복의 갈림길


2026 북중미 월드컵 참사 이후 지도력 공백과 선수단 내분설로 뒤숭숭했던 한국 축구가 아시안컵 연기로 변화의 기회를 얻게 됐다. 임시 감독 모레노의 지도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게 됐고, 대표팀 갈등설도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됐다./KFA
2026 북중미 월드컵 참사 이후 지도력 공백과 선수단 내분설로 뒤숭숭했던 한국 축구가 아시안컵 연기로 변화의 기회를 얻게 됐다. 임시 감독 모레노의 지도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게 됐고, 대표팀 갈등설도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됐다./KFA

[더팩트 | 박순규 기자] 불행 중 다행이다. 벼랑 끝에 몰렸던 한국 축구에 뜻밖의 시간이 주어졌다. 내년 1월 개막 예정이던 아시안컵이 약 1년 연기되고,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을 준비하는 김은중호에는 차세대 기대주들이 속속 합류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참사 이후 지도력 공백과 선수단 내분설로 뒤숭숭했던 한국 축구에 모처럼 변화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 된다. 아시안컵 연기가 한국 축구의 실력을 높여주는 것도, 유망주 몇 명의 등장이 무너진 신뢰를 저절로 회복시켜 주는 것도 아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능력이다.

한국 축구는 지난여름 북중미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기대했던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서 홍명보 감독이 물러났고, 대한축구협회 수장마저 공석이 되는 지도력 공백에 빠졌다. 가뜩이나 흔들리는 대표팀에는 선수 간 갈등 의혹과 이른바 '96라인'의 은퇴설까지 불거졌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축구팬들의 실망과 불신은 더욱 커졌다.

문제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축구협회는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에게 11월까지 임시 지휘봉을 맡겼지만, 아시안컵이 당초 일정대로 열렸다면 감독 계약 종료부터 대회 개막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40여 일이었다. 모레노 감독의 연임이든 새로운 사령탑 선임이든 충분한 준비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제대로 된 플랜B도 없이 아시아 정상 탈환이라는 중대한 시험대에 나설 뻔했던 셈이다.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이 9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운데 추가득점을 성공시킨 우루과이 대표팀이 기뻐하는 순간, 이강인은 고개를 떨구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이 9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운데 추가득점을 성공시킨 우루과이 대표팀이 기뻐하는 순간, 이강인은 고개를 떨구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그런 한국 축구에 예상하지 못한 출구가 열렸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3일 중동 정세 불안과 이동·물류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2027년 1월 7일 개막 예정이던 아시안컵을 같은 해 12월 23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대회 종료일은 2028년 1월 21일로 변경됐다. 새로운 일정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승인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한국 축구는 약 11개월 반의 추가 준비 기간을 확보했다. 기사회생(起死回生)의 기회다. 하지만 시간을 벌었다는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받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제부터는 시간 부족을 핑계로 삼을 수도 없게 됐다.

우선 모레노 감독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지난 9~10월 A매치 4경기에서 2승 1무 1패를 기록한 모레노 감독은 오는 13일 사우디아라비아, 17일 카타르와의 2연전까지 총 6경기를 지휘한다. 성적뿐 아니라 전술적 완성도, 선수 기용의 합리성, 경기 중 대응 능력과 선수단 통솔력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특히 김민재·황인범·황희찬 등 '96라인'과 주장 손흥민을 둘러싼 갈등 의혹은 대표팀이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다. 소문을 사실처럼 받아들여 선수들을 재단해서는 안 되지만, 불신이 확산하는 상황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전술판 위의 지략만이 아니다. 서로 다른 개성과 세대의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리더십이다.

공자는 '인무신불립(人無信不立)'이라고 했다.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이다. 축구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감독을 믿고, 선수들끼리 서로 신뢰하며, 팬들이 대표팀을 응원할 이유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전술도 모래 위의 성에 불과하다.

다행히 미래를 향한 희망의 싹도 자라고 있다. 김은중 감독이 이끄는 21세 이하 올림픽 대표팀에는 김민수(레인저스), 윤도영(마그데부르크), 김예건(츠르베나 즈베즈다) 등 해외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있는 기대주들이 모였다.

'A대표팀 경험자' 김민수(20·레인저스), '독일파' 윤도영(20·마그데부르크), '18세 막내' 김예건(츠르베나 즈베즈다)이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을 향한 김은중호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사진은 10월 호주 원정경기 장면./호주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 제공
'A대표팀 경험자' 김민수(20·레인저스), '독일파' 윤도영(20·마그데부르크), '18세 막내' 김예건(츠르베나 즈베즈다)이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을 향한 김은중호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사진은 10월 호주 원정경기 장면./호주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 제공

A대표팀 데뷔를 경험한 김민수, 독일 무대에서 성장 중인 윤도영, 2008년생으로 가장 어린 김예건의 결합은 한국 축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은중호는 지난 10월 호주 원정에서 1승 1무를 기록했고, 오는 14일과 17일에는 멕시코를 상대로 경쟁력을 점검한다.

한국 축구가 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단순히 올림픽 메달만이 아니다. 손흥민과 김민재, 이강인 등이 주축을 이루는 현재 대표팀의 뒤를 이어 한국 축구의 향후 10년을 책임질 자원으로 성장하는 일이다. 이번 '황금세대'에 대한 기대가 섣부른 찬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연령별 대표팀과 A대표팀을 연결하는 체계적인 육성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유망주는 저절로 세계적인 선수가 되지 않는다. 소속팀에서 꾸준히 출전하고, 국제무대에서 경쟁하며, 실패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눈앞의 대회 성적에만 매달리는 단기 처방에서 벗어나 미래의 경쟁력을 설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한축구협회가 달라져야 한다. 감독 선임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대표팀 운영에 일관된 원칙을 세우며, 세대교체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회장 공백을 해소하는 일도,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춘 의사결정 체계를 복원하는 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위기를 뜻하는 말에 기회라는 의미를 덧씌운다고 저절로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은 불행을 견뎌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불행의 원인을 바로잡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다.

한국 축구는 지금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다. 아시안컵 연기에 안도하며 과거의 문제를 덮을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미뤄왔던 개혁을 실행하고 새로운 세대와 함께 다시 도약할 것인가.

시간은 벌었다. 희망도 보인다. 이제 필요한 것은 결단과 실천이다. 아시안컵이 미뤄졌다고 한국 축구의 책임까지 미뤄진 것은 아니다. 2027년 말 아시안컵에서 한국 축구가 되찾아야 할 것은 우승컵만이 아니다. 월드컵 참사로 실추된 명예와 팬들의 신뢰다.

한국 축구에 주어진 이 귀중한 시간이 또 한 번의 허송세월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A대표팀 경험자' 김민수(20·레인저스), '독일파' 윤도영(20·마그데부르크), '18세 막내' 김예건(츠르베나 즈베즈다)이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을 향한 김은중호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사진은 10월 호주 원정경기 장면./호주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 제공


skp2002@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인기기사
회사소개 로그인 PC화면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