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보다 관점부터 바꿔야

[더팩트 | 박순규 기자]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라 했다. 옛 성현들이 언행일치(言行一致)를 공직자의 으뜸 덕목으로 꼽고, 명심보감 '언어편'은 ‘구시상인부(口是傷人斧, 입은 사람을 해치는 도끼)’라고 경계했다.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존엄과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정감사장을 뒤흔든 ‘소방 재정 빨대’ 파문은 그 오래된 경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국정감사장의 ‘소방 재정 빨대’ 파문과 이를 둘러싼 집권 여당 인사들의 연쇄 설화(舌禍)는 우리 정치의 언어가 얼마나 참담한 바닥으로 추락했는지를 대변한다. 발단은 지난 13일 추미애 경기지사의 국감 발언이었다.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음에도 인건비와 사업비 등 소방 예산의 90% 안팎을 지방자치단체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기형적 재정 구조의 모순을 지적하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1400만 도민의 살림을 책임지는 도정 최고 책임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는 거칠고 천박했다. "예산 규모가 거의 빨대 수준"이라며 소방을 ‘재정 빨대’로 규정한 것이다. 화마(火魔)의 한가운데로 목숨을 내던지며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들의 숭고한 희생을 일순간에 지자체의 곳간을 축내는 기생적 존재로 격하시킨 참담한 언사였다. 제도의 맹점을 짚어내야 할 정치 지도자가 도리어 현장의 피땀 어린 긍지에 대못을 박은 셈이다.

더 큰 공분을 자아낸 것은 그 뒤에 이어진 사과의 방식이었다. 17일 부천 화재 현장에서 스러져간 고(故) 김진석 소방위의 빈소를 찾아 "사과를 바라시니까 사과드린다"는 기이한 화법을 썼다. 진솔한 반성과 통절한 성찰 대신, ‘원하니 마지못해 던져주겠다’는 식의 오만과 조건부 유감 표명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을 뿐이다. 국감장에서 거듭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참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추 지사를 엄호하겠다며 나선 같은 당 부승찬 의원의 언행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그는 19일 국감장에서 "인건비 90%를 부담하니 재정을 진짜 쭉쭉 빨아먹는 것 아니냐"며 한술 더 떴다. 야당의 항의에 "앞뒤 문맥을 보라"며 핏대를 세우기도 했다.
순직 소방관의 눈물겨운 영결식이 엄수된 바로 그날, 민의의 전당인 국감장에서 ‘빨대’에 이어 ‘쭉쭉’이라는 저열한 어휘가 연쇄 폭발한 현실을 대체 어떤 문맥으로 정당화할 수 있단 말인가. 논란을 수습하러 간 당 지도부 일행이 병원 응급환자 전용구역에 차량을 주차해 물의를 빚은 과잉 의전까지 겹치면서, 국민의 눈에 비친 것은 공감 능력이 실종된 권력의 앙상한 특권 의식뿐이었다.
중앙정부의 소방 재정 책임을 높이라는 요구는 타당하게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재정 부담이 크다는 사실이 소방을 ‘빨대’로 묘사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따져야 할 것은 비용의 분담이지, 국민 안전을 위한 지출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정치인의 언어는 사적 공간의 푸념이나 배설이 아니다. 그것은 공적 신뢰를 지탱하는 주춧돌이어야 한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대화 상대에게 예의와 배려를 보이고, 남을 꾸짖을 때에도 모욕적인 표현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인의 말이라면 그 책임은 더욱 무겁다. 정책의 취지가 아무리 정당해도 상대의 존엄을 깎아내리는 표현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본래의 취지가 제아무리 지방재정 확충과 국가 책임론에 있었다 한들, 표현이 거칠고 사나우면 본질은 온데간데없이 증발하고 상처 입은 민심만 남는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은커녕, 세 치 혀로 제 발등을 찍는 형국이다.
당 대표가 부 의원에게 엄중 경고를 내리고 윤리심판원 직권조사를 지시한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그러나 징계라는 요식 행위보다 시급한 것은 공직 사회의 뼈아픈 자성이다.
‘구화지문(口禍之門·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라 했다. 소방관들의 눈물과 헌신을 모욕한 정치권은 말장난 같은 해명을 거두고 석고대죄(席藁待罪)의 심정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품격을 잃어버린 권력의 언어는 결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소방관은 불을 끄는 사람들이지, 정치인이 낸 말의 불까지 꺼야 할 사람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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