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박순규 기자] 골은 짧은 순간에 만들어지지만, 주전의 신뢰는 90분에 걸쳐 쌓인다. 이강인(25·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 득점과 풀타임이라는 두 개의 이정표를 동시에 세우며 한 단계 더 진화했다. 번뜩이는 재능으로 경기를 바꾸는 선수를 넘어, 경기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선수로 영역을 넓혔다.
이강인은 17일 오전(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리야드 에어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오사수나와의 2026~2027시즌 라리가 6라운드에 선발 출전해 후반 9분 팀의 두 번째 골을 터뜨렸다. 조너선 데이비드의 감각적인 패스를 받은 뒤 오른발 슛으로 골문 왼쪽 구석을 정확히 찔렀다. 개막전 말라가전 결승골에 이은 리그 2호골이었다.
아틀레티코는 조너선 데이비드와 이강인, 로뱅 르노르망, 알렉스 바에나의 연속골로 4-0 대승을 거뒀다. 이강인은 아틀레티코 이적 후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하며 경기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단순히 한 골을 넣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강인은 슈팅 6회 가운데 4개를 골문 안으로 보냈고 키패스 3개를 기록했다. 패스는 51차례 시도해 39차례 성공했고, 71번 공을 만졌다. 볼 운반 19회와 지상 경합 승리 6회, 태클 성공 2회, 볼 회수 5회도 기록했다. 공격의 화려함에 수비의 성실함까지 더했다. 소파스코어 평점은 9점대였고, 팬 투표에서는 전체 1313표 가운데 880표를 얻었다. 약 67%의 압도적 지지였다.
스페인 언론도 이강인의 변화를 주목했다. ‘AS’는 "이강인이 마법을 더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아틀레티코에 필요했던, 공을 지키고 팀이 필요할 때 경기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선수"라며 "어쩌면 아틀레티코 최고의 영입"이라고까지 했다.
‘엘 파이스’는 "이강인과 바에나가 자유롭게 공격을 즐긴 것은 좋은 소식"이라며 두 선수가 90분을 모두 소화한 사실에 의미를 부여했다. 아틀레티코 전문 매체 ‘인투 더 칼데론’도 이강인에게 팀 내 최고 수준인 평점 8점을 주면서 "결정적인 순간 황소의 뿔을 움켜쥐듯 경기를 주도하는 높은 기술적 수준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ESPN 아르헨티나 중계진은 아예 "경기 최고의 선수"로 꼽았다.
이강인의 경기 후 인터뷰는 더 인상적이었다. 개인의 골이나 MVP보다 팀의 승리에 먼저 의미를 뒀다.

"우리는 승리에 매우 만족한다. 몇 차례 어려운 경기를 치른 뒤 홈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특히 마드리드 더비를 앞두고 있어 이번 승리가 더욱 중요했다."
이어 "전반에는 많은 기회를 만들고도 득점으로 연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중요한 것은 열심히 노력하고 계속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득점을 앞세우기보다 팀이 해결해야 할 과제와 다음 경기를 이야기했다. 플레이뿐 아니라 생각의 중심도 개인에서 팀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강인은 그동안 ‘짧은 시간에 차이를 만드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날카로운 왼발과 탈압박, 전진 패스는 분명 특별했지만, 강한 압박과 많은 수비 활동을 요구하는 팀에서 90분 동안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물음표도 따라다녔다. 선발로 나선 경기에선 59분께 교체 아웃이 많았다.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로테이션과 교체 출전이 반복됐고, 아틀레티코 이적 후에도 선발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사수나전은 그 물음표에 대한 이강인의 대답이었다. 전반에는 내려와 공의 흐름을 만들었고, 후반에는 골문 앞으로 침투해 직접 해결했다. 공을 소유할 때는 경기의 속도를 조절했고, 공을 빼앗긴 뒤에는 압박과 수비 가담을 멈추지 않았다. 90분을 뛰면서도 공격의 선명함을 잃지 않았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이 경기장 모든 지역에서 아주 잘 반응했다. 전반부터 경기를 지배했고 후반에는 결정력까지 살아났다"고 평가했다. 이강인을 따로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시메오네가 강조한 ‘전 지역에서의 반응’과 ‘경기의 지속성’을 가장 잘 구현한 선수 가운데 하나가 이강인이었다.
주장 코케 역시 "팀이 훌륭한 경기를 했다. 3-0 승리에 이어 4-0으로 이겼다. 우리가 찾던 경쟁과 성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강인의 진화는 아틀레티코가 보여주는 성장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축구에서 골은 가장 강력한 언어다. 그러나 감독이 주전을 결정하는 기준은 골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전술 수행과 수비 가담, 경기 조율, 체력, 동료와의 연계까지 90분 전체를 믿고 맡길 수 있어야 한다. 이강인이 오사수나전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리그 2호골보다 ‘풀타임의 신뢰’인지도 모른다.
맹자에는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재능과 기회만으로는 완성된 선수가 될 수 없다. 전술 안에서 동료들과 호흡하며 팀의 승리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주전의 문이 열린다.
이제 시선은 20일 레알 마드리드와의 ‘마드리드 더비’로 향한다. 오사수나전이 진화의 증명이었다면 레알전은 그 진화가 정상급 상대에게도 통하는지를 가늠할 시험대다. 이강인은 더 이상 몇 분 동안 번뜩이는 조커에 머물지 않는다. 골을 넣고, 기회를 만들고, 수비에 가담하며 90분을 완성하는 선수로 변하고 있다.
이강인의 진짜 진화는 왼발에 오른발 득점이 추가된 데 있지 않다. ‘순간의 선수’에서 ‘경기 전체의 선수’로 바뀌고 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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