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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1호’된 이강인, 봉쇄를 깨야 진짜 에이스다 [박순규의 창]
개막골·3경기 1골 1도움 뒤 달라진 상대 수비…두 명씩 붙어 패스 길부터 차단
‘탈압박·공간 전환’으로 두 번째 시험대 넘어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이강인(가운데)이 10일 리버풀과 2026~27 UCL 리그 페이즈 1차전에서 상대의 집중 견제 속에서 볼을 컨트롤하고 있다./리버풀=AP.뉴시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이강인(가운데)이 10일 리버풀과 2026~27 UCL 리그 페이즈 1차전에서 상대의 집중 견제 속에서 볼을 컨트롤하고 있다./리버풀=AP.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화려한 복귀 신고식을 치르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AT 마드리드)의 새로운 심장으로 떠오른 이강인(25)이 스페인 무대 복귀 후 가장 까다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개막전 벼락같은 데뷔골과 초반 3경기 1골 1도움의 가파른 상승세는 역설적이게도 상대 팀들의 현미경 분석을 불러왔다. 이제 라리가와 유럽 무대의 모든 사령탑에게 이강인은 가장 먼저 지워야 할 '경계 대상 1호'다.

상대의 견제는 선수의 위상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훈장이다. 위험하지 않은 선수에게 수비수 두 명이 달라붙을 이유는 없다. 공을 잡기 전부터 공간을 지우고, 패스가 향할 길목까지 차단한다는 것은 그 선수가 공격의 시작이자 가장 경계해야 할 존재라는 뜻이다. 이강인을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아틀레티코 공격의 물줄기를 바꾸는 ‘경계대상 1호’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14일 레알 소시에다드전은 그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이강인이 오른쪽에서 공을 잡으면 한 명이 정면을 막고 다른 한 명이 중앙 진입로와 패스 길을 차단했다. 돌아설 시간도, 왼발을 편하게 쓸 공간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강인은 전반 5분 왼발 슛과 25분 날카로운 크로스로 가능성을 보였지만 경기가 흐를수록 압박망에 갇혔다.

14일 레알 소시에다드전에서 상대의 집중 견제를 뚫고 드리블하는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4일 레알 소시에다드전에서 상대의 집중 견제를 뚫고 드리블하는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

60분 동안 볼 터치 34회, 슛 1회, 기회 창출 1회. 지상 경합은 6차례 중 2차례만 이겼고 세 차례 공을 빼앗겼다. 전반 패스 성공률도 63%(10/16)에 그쳤다. 결국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0-0이던 후반 15분 이강인과 알렉스 바에나, 마르코스 요렌테를 동시에 불러들였다.

앞선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리버풀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다. 상대는 이강인이 방향을 전환하거나 전진 패스를 시도하기 전에 강한 몸싸움을 걸었다. 공을 받은 뒤 막는 것이 아니라 공이 도착하기 전부터 선택지를 빼앗는 방식이었다. 이강인의 장점이 충분히 분석됐다는 의미다.

문제는 견제가 이강인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아틀레티코의 사정이다. 훌리안 알바레스와 알렉산데르 쇠를로트, 파블로 바리오스 등이 부상과 부진으로 제 몫을 다하지 못하면서 공격의 무게가 특정 선수에게 쏠렸다. 주변에서 침투하고 수비수를 끌어내야 할 선수들의 움직임이 부족하면 이강인은 좁은 공간에서 두세 명을 상대해야 한다. 개인의 탈압박 능력만으로 풀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다행히 소시에다드전에서는 새로운 출구가 열렸다. 알렉스 그리말도가 후반 39분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은 뒤 조너선 데이비드의 데뷔골을 도왔고, 줄리아노 시메오네가 추가시간 쐐기골을 터뜨렸다. 아틀레티코는 3-0으로 이겼지만 세 골 모두 이강인이 교체된 뒤 경기 막판에 나왔다. 스코어는 완승이었으나 83분 가까이 이어진 경기 내용은 결코 압도적이지 않았다.

14일 아틀레티코 데뷔골을 터뜨린 '이적생' 데이비드 조너선./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4일 아틀레티코 데뷔골을 터뜨린 '이적생' 데이비드 조너선./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리말도와 데이비드의 득점은 이강인에게도 반가운 신호다. 공격 루트가 다양해지고 상대 수비가 분산돼야 이강인에게 다시 공간이 열린다. 상대가 두 명을 붙였다면 반대편에는 반드시 비어 있는 선수가 생긴다. 이강인은 공을 오래 소유해 직접 압박을 모두 벗어나기보다 원터치 패스와 위치 교환, 빠른 반대 전환으로 그 빈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시메오네 감독 역시 이강인을 오른쪽 2선에 고정하기보다 중앙과 왼쪽을 넘나들게 해 상대의 압박 기준점을 흔들 필요가 있다.

손자병법에는 "형태가 드러나면 반드시 대비를 당한다"는 뜻의 ‘형현즉피(形現則被)’가 있다. 이강인의 왼발과 드리블, 창의적인 패스는 이미 라리가 수비수들에게 충분히 알려졌다. 이제는 상대가 알고도 막지 못하게 하거나, 한쪽을 막으면 다른 길을 여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집중 견제는 위기의 징표인 동시에 성장의 증거다. 상대가 이강인을 아틀레티코 공격의 시발점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두 명을 붙이고 몸싸움까지 불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이스는 경계대상으로 지목되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준비된 봉쇄망을 깨고 팀에 새로운 해법을 제공할 때 비로소 진짜 에이스가 된다.

개막골은 이강인의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이제 시작된 ‘두 번째 라리가’의 진짜 시험은 골을 넣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을 겨냥한 두 겹의 벽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있다. 이 벽을 넘는다면 상대의 집중 견제는 족쇄가 아니라 이강인을 한 단계 더 높은 선수로 밀어 올린 디딤돌로 기록될 것이다.

14일 아틀레티코 데뷔골을 터뜨린 '이적생' 데이비드 조너선./아틀레티코 마드리드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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