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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없는 교육에 미래는 없다'...이제 교육부가 답할 차례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K-축구 혁신위서 터져 나온 유소년 현장의 절규
입시 만능주의 넘어 ‘1인 1기’ 교육으로


지난 19일 충북 천안 코리안풋볼파크에서 열린 'K-축구 혁신위원회 경청회'에서 박지성 위원장을 비롯한 혁신위원들이 초·중·고 축구지도자, 학부모, 학생선수, 축구팬 등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천안=KFA
지난 19일 충북 천안 코리안풋볼파크에서 열린 'K-축구 혁신위원회 경청회'에서 박지성 위원장을 비롯한 혁신위원들이 초·중·고 축구지도자, 학부모, 학생선수, 축구팬 등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천안=KFA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지난 19일 천안에서 열린 'K-축구 혁신위원회 경청회'는 한국 스포츠의 현주소와 교육 행정의 스포츠에 대한 몰이해를 적나라하게 확인한 자리가 됐다. 현장의 지도자들과 학부모, 유소년 선수들이 토해낸 목소리는 명확했다. 아이들이 뙤약볕이 내리쬐는 혹서기와 살을 에는 혹한기에 경기를 치러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 그리고 '최저학력제'라는 명분 아래 경기 출전이 제한되면서 학생선수로서 누려야 할 '운동권'마저 침해받는 현실을 바꿔달라는 절규였다.

하지만 이 문제는 문화체육관광부나 대한축구협회의 자구책만으로는 풀 수 없는 행정의 벽에 막혀 있다. 그 중심에는 교육부의 학교체육 정책과 학사·입시 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공부하는 선수 육성’이라는 명분 아래 학기 중 주중대회 개최를 제한하는 문체부와 교육부 부처간 협약으로 전국규모 대회가 방학에 집중되면서, 유소년 선수들은 결국 혹서기와 혹한기의 경기장으로 내몰려왔다.

여기에 최저학력제와 합숙소 폐지 등 학생선수의 학습권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들이 현장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한 대안 없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면서, 학생선수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책을 주도해야 할 교육부는 체육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제도 개선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한국 유소년 스포츠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19일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열린 K-축구 혁신위원회 경청회에 참석한 유소년축구 현장 지도자들이 여러 불합리한 제도와 부족한 환경 등 유소년 축구팀 운영의 어려움을 전하고 있다./천안=KFA
지난 19일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열린 K-축구 혁신위원회 경청회에 참석한 유소년축구 현장 지도자들이 여러 불합리한 제도와 부족한 환경 등 유소년 축구팀 운영의 어려움을 전하고 있다./천안=KFA

◆ 입시 만능주의가 지워버린 학교체육

더 큰 비극은 이러한 '체육 몰이해'가 엘리트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돌아보면 학창시절이던 1970~80년대만 해도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방과 후가 되면 운동장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별다른 운동시설이라곤 철봉과 평행봉 정도가 전부였지만, 남학생 치고 공 한번 안 차보거나 철봉에 매달려 공중돌기 하나 못하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학교 운동장은 아이들의 에너지를 받아주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안전과 민원을 이유로 출입과 활동을 통제해야 하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입시 만능주의에 밀려 체육은 학교 교육의 뒷전으로 물러났고, 과거의 체력장 제도마저 사라진 자리엔 정적이고 경직된 교실 문화만 남았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안전사고와 민원을 핑계로 점심시간 축구마저 금지하는 해괴한 보신주의가 횡행하며, 아이들이 건강하게 땀 흘릴 권리와 신체적 성장의 즐거움을 뿌리째 빼앗고 있다.

지난해 열린 백암온천배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 경기 모습. /울진군
지난해 열린 백암온천배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 경기 모습. /울진군

◆ 조기 스포츠 경험을 깨부수는 입시 몰입과 과잉보호

오늘날 또 하나의 심각한 역설은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부모들이 축구, 농구, 수영, 줄넘기, 태권도 등 다양한 스포츠클럽에 아이를 보내며 열성을 보이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드는 순간 모든 운동 활동을 전폐하고 오로지 학원과 책상 앞으로 내모는 모순된 행태다. 신체와 정서가 가장 폭발적으로 자라는 결정적 성장기에 운동을 끊고 의자에만 앉혀두는 것은 아이의 전인적 발달을 저해하는 지극히 위험한 처사다.

여기에 정상적인 체육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미한 부상까지 과도하게 문제 삼아 교사와 지도자에게 책임을 묻는 일부 학부모의 과잉보호까지 더해지면서 청소년기 신체활동의 기반마저 위축되고 있다. 성장이란 넘어지고 다치며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과정임에도, 작은 시련조차 두려워해 온실 속 화초로만 키우려는 잘못된 입시 올인 문화가 학교의 정상적인 사회화 기능을 마비시키고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체육 교과 전문성을 위한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
초등학교 교사들이 체육 교과 전문성을 위한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

◆ '시험형 인재'의 한계와 스포츠 리더십의 가치

공부만 잘하는 '시험형 인재'가 균형 잡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타인과의 협업이나 공감 능력 부재로 성인이 된 후 조직에 부적응하거나 사회적 민폐로 전락하는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체육 활동은 단순한 신체 단련이 아니다. 책상 앞에서는 배울 수 없는 팀워크와 공존의 가치, 정당한 패배를 받아들이는 승복,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판단력과 갈등을 조율하는 능력을 몸으로 익히는 교육이다. 함께 뛰고 부딪히며 땀 흘리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이런 역량 이야말로 성인이 된 뒤 사회를 함께 살아갈 건강한 시민에게 필요한 핵심 자질이다.

행정 편의와 입시 성과를 우선하는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신체와 정신, 지성이 균형을 이루는 전인적 교육 체계가 확립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도 건강한 시민과 리더들을 길러낼 수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은 학교의 부활동(部活動)을 비롯한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통해 청소년의 신체활동과 공동체 경험을 교육의 중요한 영역으로 다뤄왔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이 폭넓게 형성돼 있다는 점은 생활체육의 저변 확대와 엘리트 스포츠의 성장에도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우리 역시 학교체육과 생활체육, 엘리트 스포츠를 별개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2024년 세종시교육청이 추진한 마을단위스포츠클럽 ‘동동동’의 한 장면. /세종시교육청
2024년 세종시교육청이 추진한 마을단위스포츠클럽 ‘동동동’의 한 장면. /세종시교육청

◆ 백년대계 차원의 ‘1인 1기’ 제도화와 국가적 결단

이제 체육을 교육의 주변부로 밀어낸 오랜 관행부터 깨뜨려야 한다.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모든 학생이 최소 하나의 스포츠를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이른바 '1인 1기'를 학교체육의 국가적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이를 구호에 그치게 할 것이 아니라 학교 교육과정과 생활체육 시스템 속에서 누구나 안정적으로 스포츠를 접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나아가 학생이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꾸준히 쌓아온 체육활동과 공동체 참여 경험을 학생의 성장 과정으로 인정하고, 이를 대입 사정에도 교육적으로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학부모의 의식 전환을 이끌어낼 교육당국의 노력과 학교 현장의 '공동체 계약' 수립이 병행되어야 한다. 과잉보호가 오히려 아이의 면역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학기 초 학부모 동의 체계를 구축하여 고의나 중과실이 아닌 한 정당한 교육활동 중 발생한 부상에 대해 교사나 지도자 개인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안전망을 확실히 다져야 한다.

19일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열린 K-축구 혁신위원회 경청회에서 박지성 혁신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천안=KFA
19일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열린 K-축구 혁신위원회 경청회에서 박지성 혁신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천안=KFA

◆ '체육(體育)' 역시 엄연한 '교육(敎育)'이다

체육(體育)과 교육(敎育)은 모두 '기른다'는 뜻의 같은 한자 '육(育)'을 쓴다. 몸을 기르는 일과 사람을 기르는 일이 결코 다른 영역일 수 없는 이유다. 신체를 단련하는 과정 역시 엄연한 교육의 핵심 영역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체육을 학업과 별개의 부수적 활동으로 치부해 온 교육 행정의 낡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 교육에 미래는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번 경청회에서 분출된 현장의 절규를 묵과하지 말고 교육부와의 전향적인 협의를 통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도출해야 한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 역시 축구계 위기 수습 과정에서 한국 체육의 모순된 구조를 깊이 확인했을 터다. 주무 부처 수장으로서 스포츠가 사회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다지는 데 주도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한다. 국무회의 등을 통해 대통령과 국정 책임자들에게 학교체육의 현주소를 정확히 알리고, 국가 백년대계 차원의 전향적인 제도 개선과 결단을 이끌어내는 근본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K-축구 혁신위 경청회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은 단지 축구공을 어디서, 어떻게 차게 할 것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인간을, 어떤 사회를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체육을 지워버린 교육에는 건강한 개인도, 성숙한 사회도 없다. 공부하는 아이와 운동하는 아이를 따로 나누는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뛰고, 부딪히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는 경험까지 교육의 일부로 인정해야 한다. 이제 교육부가 답해야 할 차례다. 체육을 교육의 주변부에 계속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핵심 교육으로 되돌려놓을 것인가.

19일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열린 K-축구 혁신위원회 경청회에서 박지성 혁신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천안=K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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