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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수건'에서 구성윤 슈퍼세이브까지...K리그 GK '상전벽해'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외국인 GK 등록 금지 쇄국정책 27년, 그리고 전면 허용까지
30년전 알렉세이가 던진 신선한 충격...'GK 전문코칭' 체계 싹틔워


지난 5일 열린 2026 쿠팡플레이 시리즈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후반 팀 K리그 골문을 지킨 구성윤(맨 오른쪽)이 위기 상황을 펀칭으로 볼을 처리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기자
지난 5일 열린 2026 쿠팡플레이 시리즈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후반 팀 K리그 골문을 지킨 구성윤(맨 오른쪽)이 위기 상황을 펀칭으로 볼을 처리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기자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지난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쿠팡플레이 시리즈 1차전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 후반 팀 K리그의 골문을 지킨 구성윤(FC서울)의 놀라운 활약상을 보면서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 희미했던 기억 한조각이 떠올랐다.

1995년 K리그에 첫발을 내딛은 신생팀 전북 다이노스(현 전북 현대)에는 전신 버팔로 시절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던 성원종이라는 골키퍼가 있었다. 놀라운 반사신경과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으로 결정적인 선방을 곧잘 해내곤 했다. 다만 체계적인 전문 코칭이 부재했던 시절. 때때로 나오는 실수나 기복은 선수 개인의 열정만으로 채우긴 어려운 시대이기도 했다. 전북은 최후방의 아쉬움을 털어내기 위해 그해 여름 이적시장에서 동유럽 출신의 수문장 알렉세이를 전격 영입했다. 그리고 그가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준 모습은 한국 축구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알렉세이는 경기 시작 전, 골대 옆 그물에 조용히 수건을 걸어 두었다. 그리고 손을 뒤로 뻗어 골포스트를 살짝 터치한 뒤 옆걸음으로 거리를 재가며 골대 중앙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감각과 몸의 마디마디로 골문의 위치를 정밀하게 입력하는 선진 축구의 ‘준비 프로토콜’이었다. (당시는 VAR이나 카메라 판독 간섭 규정이 엄격하지 않아 그물에 수건을 거는 행위가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축구선배이자 동료로서 성원종에게 골키퍼의 ABC를 하나씩 가르쳐 주던 이 장면은, 당시 반사신경과 '몸을 던지는 투혼'에만 의존하던 한국 축구의 미개척지를 일깨운 신선한 상징이었다. 조명탑도 없던 전주종합운동장 주중 낮 경기에 가면 텅 빈 관중석을 쩌렁쩌렁 울리던 알렉세이의 샤우팅이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1995년 전북 다이노스에 영입돼 K리그와 인연을 맺은 러시아국적의 골키퍼 알렉세이 프루드니코프. 1988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한 그가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 수원삼성에서 GK전담 코치를 하던 시절의 모습이다./ 위키피디아 캡처
1995년 전북 다이노스에 영입돼 K리그와 인연을 맺은 러시아국적의 골키퍼 알렉세이 프루드니코프. 1988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한 그가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 수원삼성에서 GK전담 코치를 하던 시절의 모습이다./ 위키피디아 캡처

◆ 외국인 골키퍼 등록 금지, K리그의 쇄국정책

하지만 그가 온 이듬해인 1996시즌부터 K리그에 외국인 골키퍼 제한 룰이 단계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당시 알렉세이와 일화 천마의 사리체프(신의손)를 필두로 포항의 드라간, 유공의 샤샤, 대우의 일리치에 이르기까지, 이방인 거인들이 보여준 공중볼 지배력과 수비 라인 리딩 능력은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결국 1990년대 중반 대다수 구단이 외국인 골키퍼를 주전으로 기용하자 "국내 골키퍼의 씨가 마른다"는 위기감 속에, 국내 골키퍼 육성을 목적으로 1996년부터 출전 경기 수를 제한했고 1999년 외국인 골키퍼 등록 완전 금지라는 극단적인 쇄국 조치가 단행되기에 이르렀다.

그 때문에 1988 서울올림픽 소련 대표팀의 일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알렉세이마저 팀 내 넘버원 골키퍼였음에도 불구하고 풀타임 주전으로 뛸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신생팀 전북의 골키퍼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남김없이 가르쳐주려 노력했다. 선수 생활을 접은 후에도 1999년 전북의 전담 GK 코치, 2000년 수원 삼성의 GK 코치를 역임하며 한국 축구 골키퍼 코칭의 귀중한 기틀을 놓았다.

강원FC 수문장 박청효가 지난 5월 5일 열린 포항과의 홈경기에서 포항 어정원의 페널티킥을 막아 팀을 실점 위기에서 구해내고 있다./ 강릉=K리그
강원FC 수문장 박청효가 지난 5월 5일 열린 포항과의 홈경기에서 포항 어정원의 페널티킥을 막아 팀을 실점 위기에서 구해내고 있다./ 강릉=K리그

◆ 우산 속에서 틔운 싹, 데이터와 빅클럽 상대로 입증한 존재감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K리그 최후방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뤘다. 우산을 씌워 보호하던 시절을 지나, K리그의 골키퍼 생태계는 자생적인 진화를 거듭했다.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며 전문 GK 코칭 체계가 뿌리를 내렸고, 유스 시스템의 정착으로 10대 시절부터 정교한 풋워크와 다이빙 메커니즘을 이수한 자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과거 외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경기 읽는 눈과 준비 프로토콜은 이제 모든 국내 골키퍼들의 기본 소양이 되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비로소 올 시즌을 앞두고 27년 만에 외국인 골키퍼 등록 금지 규정을 철폐했다.

여기에 현대 스포츠 과학과 데이터 분석이 더해졌다. 상대 키커의 슈팅 습관을 정밀 분석하는 것은 기본이고, 슈팅 궤적과 난이도를 정량화한 '득점 차단(유효슈팅 기대득점 xGOT - 실점)'과 같은 고차원 통계로 선방 능력을 입증하는 시대가 열렸다. 단순 선방 개수의 착시를 넘어 실제 실점 위기를 얼마나 저지했는지 보여주는 이 지표에서, 올시즌 치른 21경기 가운데 클린시트 10경기를 기록중인 강원FC 박청효는 축구통계 매체 ‘풋몹’ 기준 경기당 +0.34가 넘는 득점 차단 수치를 기록하며 K리그 최후방의 클래스를 입증하고 있다.

약 3경기마다 오롯이 골키퍼 개인의 능력으로 '확정적인 1실점'을 완전히 지워내고 있는 셈이다. 프리미어리그와 같은 세계 최고 빅리그에서 사용하는 첨단 데이터 기준에 비추어 보더라도, K리그 골키퍼들 역시 정량적인 수치로 자신의 가치와 성장을 선명히 입증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 결실은 세계 최정상급 팀과의 일전에서도 선명하게 증명되었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맨시티와의 경기 후반 팀 K리그의 수문장으로 나섰던 구성윤이 보여준 환상적인 선방 쇼가 대표적이다. 맨시티의 무서운 파상공세 속에서, 구성윤은 탁월한 위치선정과 동물 같은 반사신경으로 잇단 슈퍼세이브를 뿜어내며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경기 직후 맨시티의 골키퍼 마르쿠스 베티넬리조차 그에게 다가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박수를 보낼 정도였다. 과거 '골키퍼 기근'에 허덕이던 K리그의 최후방이 이제는 세계적인 자이언트를 상대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할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지난 5일 열린 2026 쿠팡플레이 시리즈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에서 팀 K리그 수문장 구성윤이 상대의 슈팅슛에 반응해 공을 향해 몸을 날리며 공의 궤적으로 주시하고 있다. / 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지난 5일 열린 2026 쿠팡플레이 시리즈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에서 팀 K리그 수문장 구성윤이 상대의 슈팅슛에 반응해 공을 향해 몸을 날리며 공의 궤적으로 주시하고 있다. / 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 최후방 파수꾼에서 '11번째 필드 플레이어'로의 전술적 대전환

골키퍼의 진화는 선방 능력의 향상에서 멈추지 않았다. 현대 축구는 골키퍼에게 전혀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단순한 '파수꾼'을 넘어 '장갑을 낀 11번째 필드 플레이어'이자 '빌드업의 시발점'으로의 진화다.

오늘날 K리그 전술의 최전선에 서 있는 지도자들은 골키퍼를 적극적으로 후방 라인에 관여시킨다. 수원 삼성의 이정효 감독은 골키퍼를 페널티 박스 바깥까지 올려 세우며 수적 우위를 만들어내고, 상대 전방 압박의 결을 무력화하는 전술을 구사한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윤정환 감독 역시 골키퍼의 정교한 롱·숏 패스 선택을 후방 빌드업의 핵심 축으로 삼는다. 수문장 김동헌이 보여주는 동물적인 선방 능력뿐만 아니라, 상대 수비 뒷공간을 한 번에 허물어뜨리는 정교한 '사선 롱 패스'는 그의 뛰어난 경기 읽는 눈과 현대 골키퍼의 역할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제 골키퍼는 골문만 지키는 선수가 아니다. 상대의 압박을 유인하고, 반대편 하프 스페이스로 정교한 사선 패스를 찔러 넣으며, 수비 뒷공간을 넓게 커버하는 '최후방의 플레이메이커'로서 경기 전체의 템포를 지배한다.

수원삼성 GK 김준홍이 지난 4월25일 열린 K리그2 부산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수원=K리그
수원삼성 GK 김준홍이 지난 4월25일 열린 K리그2 부산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수원=K리그

◆ 과감함과 리스크의 경계, 현대 골키퍼가 맞닥뜨린 새로운 과제

물론 이러한 전술적 요구는 커다란 과제와 리스크를 동반한다. 골키퍼의 패스 미스 한 번은 곧바로 텅 빈 골문으로 직결되는 치명적인 실점이 된다. 빌드업의 과감함과 위험 관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높은 축구 지능'과 '상황 판단력'이야말로 현대 골키퍼에게 가장 강력하게 요구되는 핵심 재능이다.

30여 년 전, 규정의 사각지대 속에서 골대 그물에 수건을 걸고 포스트를 터치하며 위치를 가늠하던 알렉세이의 신선한 충격. 그 충격이 던진 화두 속에서 한국 축구는 외국인 골키퍼 쇄국정책이라는 긴 모색과 진화의 과도기를 거쳤고, 이제 비로소 그 결실을 보고 있다. K리그 최후방은 이제 맨시티 같은 세계 거함을 상대로도 빛을 발하는 선방 능력과 가장 현대적인 빌드업 전술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최후방을 지키는 외로운 파수꾼에서 경기를 설계하는 '전술의 시발점'으로. K리그 골키퍼들이 써 내려가는 이 거대한 진화의 서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라운드 위에서 현재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다.

수원삼성 GK 김준홍이 지난 4월25일 열린 K리그2 부산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수원=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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