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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홍의 클로즈업] '인기 사다리' 붕괴...중견 트로트 가수들은 "뭐 먹고 사나?"
오디션 출신 가수 방송·행사장 장악…섭외 기준은 히트곡보다 '현재 인기'
레전드는 출연료 딜레마, 중견은 방송·행사 모두 끊겨…허리층 붕괴 현실


가요 행사 시장 판도가 바뀌었다. 한때는 히트곡을 가진 중견 가수들이 행사장의 주인공이었다면, 이제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린 젊은 트로트 스타들이 대부분의 무대를 차지하고 있다. /더팩트 DB, AI 이미지 합성
가요 행사 시장 판도가 바뀌었다. 한때는 히트곡을 가진 중견 가수들이 행사장의 주인공이었다면, 이제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린 젊은 트로트 스타들이 대부분의 무대를 차지하고 있다. /더팩트 DB, AI 이미지 합성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가요계에는 오래전부터 통용되던 하나의 공식이 있었습니다. 무명생활이 아무리 길어도 운 좋게 히트곡 한두 곡만 만들면 평생 먹고사는 데 큰 걱정은 없다는 믿음인데요. 방송 활동이 뜸해져도 전국 축제와 지자체 행사, 기업 이벤트, 지역 축하공연을 돌며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한때 행사장은 '가수들의 또 다른 방송국'이라 불릴 만큼 생태계가 견고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행사 시장의 판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한때는 히트곡을 가진 중견 가수들이 행사장의 주인공이었다면, 이제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린 젊은 트로트 스타들이 대부분의 무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방송에서 자주 보이는 얼굴이 곧 행사장의 흥행 보증수표가 된 것이죠.

최근 몇 년 사이 트로트 시장은 그야말로 생태계가 뒤바뀌었습니다. 박지현, 김용빈, 송가인, 양지은을 비롯해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스타들이 폭발적인 팬덤을 기반으로 행사 시장은 물론 방송까지 장악한건데요. 지방자치단체가 개최하는 축제나 지역 행사 포스터를 살펴보면 과거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릅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중견 가수 대신 TV에서 익숙한 젊은 얼굴들이 가장 앞줄을 차지합니다.

기존 가수들이 설 자리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행사 예산은 늘 한정돼 있다보니, 출연 가수가 바뀌었다고 예산까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기 절정의 신예들을 섭외하려면 행사비 대부분을 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튜브 캡처
기존 가수들이 설 자리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행사 예산은 늘 한정돼 있다보니, 출연 가수가 바뀌었다고 예산까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기 절정의 신예들을 섭외하려면 행사비 대부분을 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튜브 캡처

실제 히트곡 숫자보다 현재의 화제성과 팬덤 규모가 중요한 평가 기준

이는 단순한 세대교체 차원을 넘어 행사 시장의 소비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행사를 기획하는 지방자치단체나 대행사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야 합니다. 행사 흥행을 위해 자연스럽게 TV 노출 빈도가 높은 가수를 선호하게 됩니다. 실제 히트곡의 숫자보다 현재의 화제성과 팬덤 규모가 더욱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흐름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시대 변화가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중문화는 언제나 새로운 얼굴을 원합니다.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고 기존 스타가 물러나는 것은 어느 시대나 반복돼 온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문제는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에는 인기가 서서히 이동했습니다. 정상급 가수가 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정상에서 내려오는 과정도 완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 한 편으로 전국적인 인지도를 확보하는 시대입니다. 몇 개월 만에 스타가 탄생하고, 행사 시장의 질서까지 순식간에 재편되는 환경이 됐습니다.

반대로 기존 가수들이 설 자리는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행사 예산은 늘 한정돼 있으니, 출연 가수가 바뀌었다고 예산까지 늘어나는 것은 아니죠. 문제는 오디션 스타들의 몸값이 빠르게 치솟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기 절정의 신예들을 섭외하려면 행사비 대부분을 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 결과 다른 가수들에게 돌아갈 몫은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더 아이러니한 현실은 바로 여기서부터인데요. 레전드급 가수들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가수들도 행사 시장에서는 예전만 못한 대우를 받습니다. 그렇다고 출연료를 크게 낮추기도 어려운 것은 오랜 세월 쌓아온 브랜드 가치와 자존심 때문입니다. 기존 수준을 유지하거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몸값을 올리면 섭외 자체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행사장은 원래 신인과 중견, 레전드가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특정 세대와 특정 프로그램 출신에게 수요가 집중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더팩트 DB, AI 이미지 합성

레전드 가수들도 외면 '높이면 안 불리고, 낮추면 체면이 상하는' 딜레마

결국 '높이면 안 불리고, 낮추면 체면이 상하는' 딜레마에 빠져듭니다. 더욱 심각한 쪽은 레전드 반열에 오르지 못한 중견 가수들입니다. 이들은 방송에서도 보기 어렵고, 행사장에서도 외면당합니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지금 당장 티켓 파워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립니다. 팬덤도 크지 않고 방송 노출도 적다 보니 행사 기획자 입장에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로 잊혀지는 거죠. 그래서 가요계에서는 이들을 두고 '가장 힘든 세대'라는 말이 나옵니다.

젊은 스타들처럼 팬덤이 강한 것도 아니고, 원로 가수처럼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성도 부족합니다. 방송과 행사를 동시에 잃으면서 생계 자체가 흔들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 공연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의 인기 구조가 과연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이냐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행사 시장을 장악한 젊은 트로트 스타들의 대중적 인지도는 상상초월입니다.

반면 높은 인기에 비하면 아직 자신만의 대표 히트곡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핸디캡을 안고 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불렀던 경연곡은 기억하지만, 정작 개인을 대표하는 노래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대부분입니다. 트로트 시장은 결국 노래가 남는 장르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행사장에서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대표곡이 있어야 생명력을 갖습니다. 나훈아, 남진, 설운도, 강진, 진성, 장윤정 등이 오랜 세월 사랑받는 이유 역시 시대를 대표하는 히트곡을 여러 곡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행사장은 원래 신인과 중견, 레전드가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특정 세대와 특정 프로그램 출신에게 수요가 집중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더팩트 DB, AI 이미지 합성
행사장은 원래 신인과 중견, 레전드가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특정 세대와 특정 프로그램 출신에게 수요가 집중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더팩트 DB, AI 이미지 합성

지금 가요계, 어느 때보다 화려해보이지만 역설적으로는 더 불안한 시대

결국 지금의 인기와 앞으로의 생존은 다른 문제입니다. 현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젊은 스타들도 언젠가는 검증의 시간을 맞이하게 마련인데요. 방송 출연이 줄어들었을 때도 행사장에서 꾸준히 불릴 수 있는가,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히트곡을 만들 수 있는가가 진짜 승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신예들을 탓할 이유는 없습니다. 대중이 선택했고 시장이 움직인 결과일 뿐이죠. 문제는 시장 전체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리면서 다양성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행사장은 원래 신인과 중견, 레전드가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세대가 다른 가수들이 같은 무대에서 호흡하며 서로의 팬층을 넓혀가는 선순환 구조가 있었죠. 그러나 지금은 특정 세대와 특정 프로그램 출신에게 수요가 집중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몇 년 안에 가요계의 질서 자체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스타는 계속 탄생하겠지만, 중간 허리를 담당할 가수층은 점점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젊은 스타들 역시 또 다른 신예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자리를 내줘야 하는 순간을 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인기의 수명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시적인 화제성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남는 노래입니다. 방송은 시대가 만들지만, 히트곡은 세월이 만듭니다. 지금 가요계는 어느 때보다 화려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eel@tf.co.kr

행사장은 원래 신인과 중견, 레전드가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특정 세대와 특정 프로그램 출신에게 수요가 집중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더팩트 DB, AI 이미지 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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