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뇌부·감독 동시 공석의 위기… '독이 든 성배' 치우고 백년대계 먼저

[더팩트 | 박순규 기자] 파울루 벤투 전 감독과 거스 포옛 전 전북 현대 감독의 이름이 다시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은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이라는 성과를 남겼고, 거스 포옛 전 전북 현대 감독은 K리그에서 지도력을 증명했다. 두 사람 모두 한국 축구를 잘 알고, 한국 선수의 장단점을 이해하는 훌륭한 지도자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들의 이름이 너무 빨리 소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벤투에게도, 포옛에게도, 한국 축구에도 좋지 않다. 감독 후보의 공개 언급은 순식간에 찬반 여론을 부르고, 인물 경쟁 구도로 번진다. 그러면 한국 축구가 정말로 물어야 할 질문은 뒤로 밀린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벤투냐 포옛이냐"가 아니라 "한국 축구는 앞으로 어떤 축구를 할 것인가"이다.
홍명보호의 북중미 월드컵 실패는 한 감독의 패착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체코전 승리 뒤 멕시코와 남아공에 연패하며 조별리그 문턱에서 멈춘 결과는 전술, 선수 운용, 리더십, 행정, 선임 절차, 팬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진 종합 부실이었다. 그런데 이 실패 뒤에 또다시 새 감독 이름만 앞세운다면, 그것은 병의 뿌리를 두고 해열제만 찾는 일이다.

아시안컵이 코앞이라는 현실은 분명하다. 2027년 1월 개막까지 남은 시간은 6개월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는 말은 늘 한국축구 행정의 면죄부가 되어 왔다. 클린스만 이후에도 그랬고, 홍명보 선임 과정에서도 그랬다. 조급함은 절차를 무너뜨렸고, 절차가 무너지자 신뢰도 함께 무너졌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축구 행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빠른 선임보다 중요한 것은 바른 선임이다.
벤투 복귀는 안정감을 줄 수 있다. 포옛 선임은 상징성을 가질 수 있다. 특히 포옛은 2년 전 대표팀 감독 후보였고, 선임 과정의 불투명성 속에서 밀려난 인물이라는 점에서 팬들에게 일종의 ‘복원’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상징은 시스템을 대신할 수 없다. 벤투도, 포옛도, 어떤 명장도 축구협회의 철학 부재와 책임 회피 위에 세워지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지금은 축구협회장과 대표팀 감독이 동시에 공석이 된 비상한 시간이다. 위기는 동시에 기회다. 협회는 먼저 한국축구의 10년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대표팀의 경기 모델, 유소년 육성 방향, K리그와 대표팀의 연결 구조, 전력강화위원회의 권한과 책임, 감독 선임 절차의 공개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 위에서 감독을 골라야 한다. 감독은 청사진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합의된 청사진을 실행할 사람이어야 한다.
손자병법에는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겨놓고 싸운다"는 말이 있다. 한국축구는 너무 자주 싸움터에 나간 뒤에야 무기를 찾았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설사 아시안컵을 임시 감독 체제로 치르더라도, 한국축구가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한 채 얼굴만 바꾸는 일은 멈춰야 한다. 월드컵 대실패의 가장 큰 교훈은 ‘감독 하나 잘못 뽑았다’가 아니다. 원칙 없이 감독을 뽑고, 실패 뒤에도 책임의 구조를 고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벤투도 포옛도 반가운 이름이다. 그러나 한국축구의 진짜 후임은 특정 감독이 아니라 새로운 원칙이어야 한다. 이번에도 감독 선임이 개혁을 대신한다면, 한국축구는 또 한 번 같은 자리에서 넘어질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유명한 얼굴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설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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