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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오버뷰] '196cm 장신숲' 체코, 홍명보호 흔들 '고공폭격' 경보
20년 만의 월드컵무대 복귀, 2000년대 FIFA랭킹 2위의 전통 강호
장신숲 '고공축구', 韓 수비전술 못갖추면 최악 시나리오 현실


체코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3월31일 프라하에서 열린 월드컵 유럽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승부차기 끝에 덴마크를 따돌리고 본선 진출을 확정한 뒤 서로 얼싸안으며 환호하고 있다. / 프라하=AP 뉴시스
체코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3월31일 프라하에서 열린 월드컵 유럽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승부차기 끝에 덴마크를 따돌리고 본선 진출을 확정한 뒤 서로 얼싸안으며 환호하고 있다. / 프라하=AP 뉴시스

거대한 대륙, 뜨거운 열정의 2026 북중미 월드컵이 마침내 6월 11일 막을 올립니다. <더팩트>는 전 세계 축구 축제의 이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치는 새 연재 [월드컵 오버뷰]를 신설합니다. 단순한 승패와 피파랭킹이라는 숫자의 함정을 넘어, 그라운드 위 베테랑들의 묵직한 서사와 철저한 전술 분석, 숨겨진 팩트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겠습니다. 20년 만에 돌아온 전통 강호 체코의 숨은 칼날을 분석한 이영규 전문기자의 첫 분석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위대한 도전과 월드컵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독자 여러분께 배달합니다.<편집자 주>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197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결승전 승부차기. 체코슬로바키아의 안토닌 파넨카가 찬 공이 느릿한 포물선을 그리며 서독의 그물을 흔들었을 때, 전 세계는 그 대담한 낭만에 열광했다. 오늘날 축구 역사상 가장 우아한 페널티킥으로 불리는 '파넨카킥'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순간이었다.

허를 찌르는 기술과 단단한 조직력으로 세계 축구의 거함들 사이에서 늘 굵직한 서사를 써 내려갔던 나라, 과거 두 차례의 월드컵 준우승을 일궈냈고 유로 무대를 호령했던 유럽 축구의 전통 맹주. 우리에게 체코 축구는 언제나 단순한 숫자가 아닌, 묵직한 서사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바로 그 체코가 오는 6월 12일 오전 11시(한국시간) 멕시코 아크론 스타디움에서 대한민국 대표팀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첫 상대로 맞붙는다.

체코의 중원사령관 파벨 네드베드가 유벤투스 시절이던 2005년 4월에 열린 챔치언스리그 8강 리버풀전에서 스티븐 제라드를 추격을 피해 드리블해가고 있다. / AP 뉴시스
체코의 중원사령관 파벨 네드베드가 유벤투스 시절이던 2005년 4월에 열린 챔치언스리그 8강 리버풀전에서 스티븐 제라드를 추격을 피해 드리블해가고 있다. / AP 뉴시스

◆ 유럽 축구의 맹주 향수, 체코슬로바키아 시절부터의 저력

체코 축구의 역사는 깊고 푸르다.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이던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에서 당대 최강 이탈리아와 연장 혈투 끝에 1-2로 패했고, 1962년 칠레 월드컵 결승에서는 '펠레의 나라' 브라질에 1-3으로 무릎을 꿇으며 두 차례나 세계 정상의 문턱을 두드렸다. 이어 1976년 유로 대회에서는 마침내 유럽 정상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위대한 유산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전 세계 축구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던 황금세대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네드베드를 필두로 토마시 로시츠키, 얀 콜레르, 밀란 바로시 등 그야말로 '밀레니엄 황금세대'가 유럽 무대를 휘저었다. 특히 이탈리아 라치오와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A를 지배하며 2003년 발롱도르를 거머쥐었던 '두 개의 심장' 파벨 네드베드, 그리고 헤드기어를 쓴 채 첼시의 골문을 사수하며 프리미어리그 최소 실점 우승과 UCL 빅이어를 들어 올렸던 전설적인 수문장 페트르 체흐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이끌던 체코는 유로 1996 준우승, 유로 2004 4강 신화를 일궈내며 당대 세계 축구의 거함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FIFA 랭킹 2위까지 치솟았던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군림했다.

그러나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끝으로 네드베드가 대표팀 유니폼을 벗으면서 체코 축구는 가혹한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세대교체 실패와 전술적 정체 고리가 맞물리며 무려 20년 동안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한 채 변방으로 밀려났다. 그 찬란했던 기억을 뒤로하고 침체되어 있던 전통의 명가가, 마침내 긴 잠에서 깨어나 북중미 무대에서 재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체코의 전설적 골키퍼 페트르 체흐가 아스날 시절이던 2018년 유로파리그 경기에 나선 모습. /AP 뉴시스
체코의 전설적 골키퍼 페트르 체흐가 아스날 시절이던 2018년 유로파리그 경기에 나선 모습. /AP 뉴시스

◆ 한국 축구 '오대영'의 아픈 추억

한국 축구에게도 체코는 잊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존재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둔 2001년 8월, 파벨 네드베드가 중원을 지배하던 체코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0-5 참패를 안기며 히딩크에게 ‘오대영 감독’이라는 지독한 별명을 선사했던 장본인이다.

당시 체코는 네드베드를 필두로 로시츠키, 콜레르, 바로시 등이 정점에 달해 가던 시절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벽을 실감케 했던 체코지만, 한국 축구는 2016년 원정 평가전에서 2-1로 그 벽을 허물었던 기억도 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흘렀다. 이제 두 팀은 월드컵 본선이라는 가장 높은 무대에서 외나무다리 매치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현재 체코의 FIFA 랭킹은 41위까지 내려앉아 있다. 그러나 과거의 약력과 그들이 품은 저력을 아는 이들은 이 숫자를 보고 체코를 조별리그의 '약체'나 '1승 제물'로 치부하지 않는다. 체코는 지난 3월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우리보다 랭킹이 높은 덴마크(20위권)를 사지(死地)에서 무너뜨리고 올라왔다. 네드베드와 체흐가 그라운드를 누비던 시절의 그 단단한 전술적 응집력과 벼랑 끝 생존 DNA를 다시 깨워낸, 명백한 '유럽의 강팀'이다.

체코의 장신공격수 패트릭 시크(왼쪽)가 유로2024 조지아와의 조별리그서 골을 터뜨린 뒤 동료 루카시 프로보드의 축하를 받고 있다. /AP 뉴시스
체코의 장신공격수 패트릭 시크(왼쪽)가 유로2024 조지아와의 조별리그서 골을 터뜨린 뒤 동료 루카시 프로보드의 축하를 받고 있다. /AP 뉴시스

◆ 한국수비의 불안한 그림자, 체코의 고공 타격

20년 만에 돌아온 체코는 과거의 기술적 낭만에 현대 축구의 선 굵고 단단한 피지컬을 더했다. 미로슬라프 코우베크 감독이 이끄는 현재 체코 전술의 핵심은 190cm가 훌쩍 넘는 압도적인 척추 라인을 활용한 가공할 만한 세트피스와 고공 타격이다.

특히, 분데스리가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이번 시즌 리그 16골 3도움을 폭발시킨 스트라이커 파트리크 시크(196cm)는 포스트 플레이에 최적화된 공격 머신이다. 여기에 프리미어리그 웨스트햄의 철인 토마시 소우체크(192cm)가 중원을 장악하며 세트피스 상황마다 가공할 만한 헤더로 직접 골을 만들어낸다. 프랑스 올랭피크 리옹의 신성 파벨 슐츠 역시 경계 대상이다. 시크가 상대 수비 블록에 균열을 내고 공간을 열어줄 때, 흘러나오는 세컨드 볼을 포착해 박스 안으로 침투하는 타이밍이 수준급이다.

과거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스위스(2006 독일), 스웨덴(2018 러시아) 등 다소 해볼 만하다고 여겼던 유럽 팀들의 선 굵은 세트피스와 고공 크로스에 고전하며 허무하게 승기를 내주고, 고배를 마셨던 아픈 기억이 많다. 단순히 랭킹의 우위를 내세워 ‘해볼 만하다’는 식의 섣부른 자만은 금물이다.

더구나 홍명보호는 조직적인 수비 전술이 완벽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체코의 오른쪽 윙백 블라디미르 초우팔(코펜하임)의 수비수 뒷공간을 노리는 오른쪽 측면 크로스나 높이를 앞세운 세트피스 상황에서 우리 수비진이 우왕좌왕하다 골을 헌납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체코의 이 높은 타격을 김민재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방패 하나에만 의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수비진 전체의 유기적인 협력과 세트피스 대응 매뉴얼이 없다면, 아무리 세계적인 수비수라 한들 혼자서 체코의 장신 숲을 막아낼 재간이 없다.

체코 수비수 라디슬라프 크레이치(오른쪽)가 지난 3월31일 열린 월드컵 유럽예선 플레이오프에서 덴마크의 알렉산드르 바의 슛을 걷어내고 있다./ 프라하=AP 뉴시스
체코 수비수 라디슬라프 크레이치(오른쪽)가 지난 3월31일 열린 월드컵 유럽예선 플레이오프에서 덴마크의 알렉산드르 바의 슛을 걷어내고 있다./ 프라하=AP 뉴시스

◆ 1차전 필승전략? 고지대의 변수와 배후 공간 타격

체코는 라인을 올리고 롱볼을 통해 전방에서 싸우는 선 굵은 축구를 지향하는 만큼 키 큰 수비수들의 배후 공간이 넓게 형성된다. 특히 체코 대표팀의 주장이자 수비의 중심인 라디슬라프 크레이치(울버햄튼)는 191cm의 신장을 활용한 공중볼 경합은 뛰어나지만, 거구 특유의 한계 탓에 민첩성과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체코가 수비 라인을 올렸을 때 손흥민, 황희찬, 오현규 등 홍명보호의 빠른 공격진이 이 넓은 배후 공간으로 기민하게 침투해 상대의 둔한 발밑을 집요하게 공략한다면 결정적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환경적 변수도 고려대상이다. 1차전이 열리는 과달라하라는 해발 1571m의 고지대로 공기 저항이 희박해 볼 궤적이 불규칙해지고 심폐 기능이 쉽게 한계에 부딪힌다. 지난 3월 플레이오프 막차를 타며 본선 합류가 늦어진 체코는 기후 적응을 위한 행정적, 시간적 준비가 확연히 덜 된 상태다.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체코의 체력 저하와 집중력 균열이 예상된다. 후반전 고지대 여파로 크레이치를 비롯한 체코 수비진의 발이 무거워지는 시점이 진짜 승부처다.

단순한 FIFA 랭킹의 숫자로 두 팀의 우열을 점치는 것은 무의미하다. 유럽 예선의 사지를 뚫고 올라온 전통 맹주가 품은 거친 집념과 재도약의 의지를 상대로, '랭킹의 우위'라는 잔상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야 한다. 철저하게 전술적이고 실리적인 판단, 그리고 상대의 허점을 냉정하게 파고드는 해법만이 승점 3점을 가져올 유일한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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