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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홍 클로즈업] 나훈아 '은퇴 1년', 그리움은 아직도 노래가 된다
무대 떠난 뒤에 더 또렷해진 그 이름 '가황 나훈아'
'울지 않겠다던 약속' 팬들, "이제는 그리움이 됐다"


나훈아가 '가황'으로 살아온 58년, 그리고 은퇴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가 무대를 떠난 시간은 결코 짧지 않지만, 팬들의 마음에서 그의 이름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예아라 예소리f
나훈아가 '가황'으로 살아온 58년, 그리고 은퇴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가 무대를 떠난 시간은 결코 짧지 않지만, 팬들의 마음에서 그의 이름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예아라 예소리f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가황' 나훈아가 은퇴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가 무대를 떠난 시간은 결코 짧지 않지만, 팬들의 마음에서 그의 이름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최근 온라인 팬 커뮤니티에는 "벌써 많이 그립다", "노래하는 무대를 영영 볼 수 없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은퇴와 동시에 영구히 가요계를 떠난 그의 선택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여운과 질문을 남긴다.

딱 1년 전 이맘 때 쯤, 고별 콘서트 현장에서 팬들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훈아 형님, 그리울 때 그때 울겠습니다." 그 말은 감정의 절제가 아니라 존중의 표현이었다. 나훈아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은퇴가 번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팬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현장은 눈물보다 침묵이 많았고, 박수는 더 길었다.

나훈아는 자타공인 70년대 이후 한국 대중가요의 아이콘이다. 남진과 함께 시대를 양분했던 그는 단순한 인기 가수를 넘어 '현상'에 가까운 존재였다. 히트곡만 120곡이 넘고, 앨범 수는 200장 이상, 자작곡만 1200여 곡, 취입곡은 3000곡에 달한다. 숫자만으로도 전무후무하지만, 진짜 가치는 그 숫자 안에 담긴 대중의 삶과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훈아는 지난해 1월 12일 자신의 마지막 무대 '라스트콘서트'를 끝으로 공식 은퇴했다. '박수칠 때 떠난다'는 스스로 정한 원칙과 규칙에 따라 그는 수많은 팬들의 아쉬움과 허탈함에도 단호히 '마지막 약속'을 이행했다. /강일홍 기자
나훈아는 지난해 1월 12일 자신의 마지막 무대 '라스트콘서트'를 끝으로 공식 은퇴했다. '박수칠 때 떠난다'는 스스로 정한 원칙과 규칙에 따라 그는 수많은 팬들의 아쉬움과 허탈함에도 단호히 '마지막 약속'을 이행했다. /강일홍 기자

단순 인기 가수 뛰어 넘어 '현상'에 가까운 존재 '가황'

그의 노래에는 시대가 있었다. '고향역'에는 산업화의 그늘이, '잡초'에는 꺾이지 않는 인생이, '홍시'에는 어머니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테스형'에 이르러서는 노년의 철학과 유머를 동시에 품어냈다. 묵직한 저음, 절묘하게 치고 올라가는 고음, 그리고 전매특허와도 같은 꺾기까지, 나훈아의 창법은 모방할 수는 있어도 대체할 수는 없다.

특히 대부분의 히트곡을 직접 작사·작곡했다는 점은 나훈아를 더욱 독보적인 존재로 만든다. 그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만드는 가수'였고, 무대 위에서는 언제나 스스로의 언어로 관객을 설득했다. 그래서 그의 콘서트는 공연이 아니라 '선언'에 가까웠다. 사회, 인생, 인간에 대한 생각을 노래와 멘트로 풀어내며, 그는 늘 자기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렇기에 은퇴는 더욱 예기치 못한 결정이었다. 70대 후반의 나이에도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관리했고, 매 공연마다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주던 그였다. 여전히 세대를 잇는 두터운 팬층이 존재했고, 시장의 요구도 충분했다. 그러나 나훈아는 스스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명성이 조금이라도 닳기 전에, '가황'이라는 이름이 가장 빛날 때 무대를 떠나는 선택이었다.

나훈아는 떠났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한국 대중가요사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무대 위에서는 내려왔지만, 수많은 인생의 배경음악 속에서 가황은 아직도 노래하고 있다. /더팩트 DB
나훈아는 떠났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한국 대중가요사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무대 위에서는 내려왔지만, 수많은 인생의 배경음악 속에서 가황은 아직도 노래하고 있다. /더팩트 DB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한국 대중가요사의 중심에 우뚝"

이는 단순한 은퇴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 나훈아는 끝까지 스스로 세운 기준을 지켰고, 그 기준의 이름은 결국 '품위'였다. 더 할 수 있었지만 욕심내지 않았고, 더 서 있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 내려왔다. 할 수 있을 때 멈추는 용기, 가장 빛날 때 등을 돌리는 결단, 그가 무대 위에서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노래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고, 그것은 어떤 히트곡보다 오래 남는 울림이 됐다.

은퇴 1년이 지난 지금, 팬들은 여전히 그의 노래를 듣는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오는 한 소절에 발걸음을 멈추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다시 불러온 무대 앞에서 한참을 머문다. 오래된 LP를 꺼내 바늘을 올리며, 그 시절의 자신과 다시 마주하기도 한다. 더 이상 신곡도 없고, 새로운 무대도 없지만, 나훈아의 노래들은 살아 숨쉰다. 그리움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더 강렬하게 다가올 때가 많다.

나훈아는 떠났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한국 대중가요사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무대 위에서는 내려왔지만, 수많은 인생의 배경음악 속에서 가황은 아직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문득, 그의 노래 한 소절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서야 팬들은 조용히 눈물 지으며 "그리울 때, 그때 울겠다"던 약속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eel@tf.co.kr

나훈아는 떠났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한국 대중가요사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무대 위에서는 내려왔지만, 수많은 인생의 배경음악 속에서 가황은 아직도 노래하고 있다. /더팩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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