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 평양 참사와 31세 요절
사라예보-박영순-단일팀의 대서사시

# 2주 전 이 칼럼은 바둑영화 ‘승부’로 스포츠 키즈문화를 톺아봤습니다. 내용 중 세리 키즈(골프), 박태환 키즈(수영), 김연아 키즈(피겨) 등을 언급하며 바둑의 ‘송아지 3총사’가 가장 먼저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항의를 좀 받았습니다. 맞습니다. 한국 스포츠가 세계를 제패하고, 그 영향으로 해당 종목에서 수많은 유망주가 나타난 것은 바둑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손기정, 1947년 보스턴마라톤의 서윤복 등 마라톤이 먼저일 겁니다(앞서 1910년대 엄복동의 자전거도 있었지만 이는 세계 제패는 아니었던 까닭에 제외해도 무방하겠죠). 그리고 이어 1966년 김기수의 한국 첫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등극도 한국 체육사에 남을 사건이었지요. 수많은 키즈가 마라톤과 복싱에서 세계제패를 꿈꿨습니다. 그런데 남북한에서 경쟁적으로 펼쳐진 탁구는 좀 특별합니다. 바로 1973년 ‘사라예보 신화’와 이에 영향을 받은 1975년 시작된 북한의 ‘박영순 신드롬’입니다.
# 국가경제도 그랬던가요? 1970년대까지 스포츠에서는 한국보다 북한이 먼저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올림픽 첫 금메달을 한국은 1976년 몬트리올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따냈지만, 북한은 4년 앞선 1972년 뮌헨에서 사격의 리호준이 해냈습니다. 당시 "수령님의 교시에 따라서 미제의 심장을 보고 쐈다"는 그의 소감은 엄청난 논란이 됐죠. 축구도 북한은 앞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월드컵 본선 토너먼트 진출(4강)은 36년 뒤인 2002년이었죠.

# 북한 리호준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1973년 4월. 정현숙, 이에리사, 김순옥, 나인숙이 주축이 된 한국 여자팀은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 여자 단체전에서 세계 최강 중국과 '난적' 일본을 꺾고 우승했습니다. 구기종목 사상 한국의 첫 세계제패였습니다. 라디오 생중계가 이뤄져 온 국민이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습니다.
‘사라예보의 신화’였죠. 영화 ‘승부’는 응씨배에서 우승한 조훈현이 카퍼레이드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카퍼레이드도 탁구가 먼저였습니다. 당시 19세였던 이에리사 현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귀국 카퍼레이드를 시작으로 거의 두 달 동안 전국을 돌며 각종 환영행사에 참석했다"고 술회햇습니다.
# 총 대신 스포츠로 싸우던 냉전시대. 북한이 자극받았습니다. 탁구 세계 최강인 중국과 가까웠기에 만리장성의 도움을 받아 탁구 유망주를 집중 육성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과는 2년 뒤 1975년 캘커타 세계선수권 때 나옵니다. 예쁘장한 외모에 남자 못지않은 파워드라이브를 장착한 19세 박영순이 혜성 같이 나타나 여자 단식에서 중국선수를 꺾고 정상에 오릅니다.
특히 준준결승에서 사라예보의 주역 정현숙에게 3-2로 역전승을 거두며 남북대결 승리까지 곁들입니다. 이 임팩트가 얼마나 강력했는가 하면 47년이 지난 2022년 북한은 ‘마지막 한 알’이라는 박영순 일대기를 6부작 TV시리즈로 만들었는데, 그 시작이 바로 이 경기입니다.

# 한국의 사라예보 신화를 덮어버린 박영순 신드롬은 조금 더 계속됩니다. 물론 그 끝은 아주 충격적이지만요. 박영순은 1977년 버밍엄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단식 2연패에 성공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개인 단식 2연패는 세계 최강인 중국선수도 쉽지 않은 일이죠. 북한은 내친 김에 이때 1979년 세계선수권을 평양으로 유치했습니다. 이미 북한에 탁구열풍이 불었는데, 아예 안방에서 박영순의 사상 첫 3연패를 완성해 국가 차원의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것이었죠. 그런데 역시 스포츠는 예측불가가 묘미입니다. 박영순은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직접 지켜보는 등 북한 인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이상하리 만큼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이며 8강에서 탈락했습니다.

# 나중에 알려졌지만 충격적인 뒷얘기도 있습니다. 당시 코치가 박영순을 임신시켰고, 불법 낙태 후 대회에 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밝혀지며 코치는 이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됐고, 박영순은 1982년 은퇴 후 지도자생활을 하다가 1987년 7월 불치의 병에 걸려 31세에 요절했습니다. 이에리사 위원장은 "정현숙 선배는 박영순과는 이기고 지고 그랬던 것으로 기억해요. 나는 박영순과 두 번 붙어서 모두 이겼지요. 한번은 금강산에 갔는데 북한 사람들과 탁구 얘기가 나왔어요. 내 이름은 모르더니 내가 박영순을 이긴 사람이라고 하니 아주 놀라워했습니다(웃음)"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1979년 평양 대회도 북한은 혹시나 안방에서 한국선수에게 질까 우려가 됐는지 뜬금없이 단일팀 구성을 내세우며 시간을 끌다가 한국의 참가를 막았습니다.

# 이야기는 조금 더 이어집니다. 한국은 양영자, 현정화 등 ‘사라예보 키즈’가 등장해 다시 세계 정상에 오릅니다. 반격에 성공한 셈이죠. 북한도 ‘박영순 키즈’인 이분희가 바통을 이어받죠. 그리고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에서 현정화 이분희 등이 남북단일팀을 구성해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땁니다. 영화 ‘코리아’가 바로 이 얘기죠. 정말 영화 같죠? 그리고 그 사이 한국 남자탁구도 힘을 내 김완 김기택 안재형 유남규를 앞세워 86 아시안게임, 88 서울 올림픽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땄습니다. 86, 88 때 한국은 동네 탁구장이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또 한 번 탁구붐이 일었고, 이를 체험한 1982년생 꼬마 유승민(현 대한체육회장)은 나중에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땁니다.

# 확실히 한국은 손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스포츠는 강합니다. 양궁과 펜싱은 말할 것도 없고, 탁구도 중국을 제외하면 가장 좋은 성적을 내왔으니까요. DNA를 공유해서 그럴까요, 북한 탁구도 박영순이 세계를 호령했을 정도로 강합니다. 2000년 이후를 봐도 2013년 파리 세계선수권에서 김혁봉-김정이 혼합복식에서 깜짝우승해 북한에서 카퍼레이드를 했고요, 가장 최근인 2024년 파리올림픽 혼합복식에서도 리정식-김금영 조가 은메달을 따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또 북한은 탁구를 계기로 메이저 국제대회도 유치했습니다. 2026년 아시아 주니어탁구선수권과 2028년 아시아탁구선수권을 평양에서 개최합니다. 아시아선수권은 1979년 박영순의 세계선수권 이후 49년 만에 북한이 개최하는 탁구 메이저대회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쯤이면 남북한 탁구의 키즈문화는 어느 종목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장대한 서사시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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