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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야구’의 불편한 ‘역설’ [김대호의 야구생각]
그룹 오너들의 '야구 사랑'이 구단에 미치는 영향
성적 지상주의에 내몰려 자립 기반 약해지기도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KIA 타이거즈 전지 훈련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정 회장은 선수단 전원에게 비즈니스 항공권을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대차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KIA 타이거즈 전지 훈련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정 회장은 선수단 전원에게 비즈니스 항공권을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대차

[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프로야구가 흥행 가도를 달리면서 ‘오너 야구’가 조명을 받고 있다. 야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모기업 회장들이 앞다퉈 야구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박정원 두산 회장은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 해외 전지훈련지를 직접 방문해 선수단을 격려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 정용진 신세계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도 지난해 여러 차례 야구장을 찾아 응원했다. 김승연 회장은 대전 새 야구장 건설에 486억 원의 통 큰 투자를 실행했고, 정용진 회장은 국내 최초로 100% 기업 소유의 청라 돔구장을 짓고 있다. 다른 그룹 오너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야구단에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수십억 원을 들여 라커룸을 최신식으로 개조하는가 하면 전지훈련지로 떠나는 모든 선수들에게 비즈니스 항공권을 지급하기도 했다. 또 선수단 전원에게 최신식 태블릿 PC와 휴대전화를 나눠줬다. 거물 FA 영입에 필요한 수백억 원의 자금 계획을 그 자리에서 결제하는가 하면 때론 손수 감독 영입 작업에 나서기도 한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구단주 가운데 가장 자주 야구장을 찾는다. 대전한화생명볼파크 신축에도 통 큰 투자를 했다. /한화 이글스
김승연 한화 회장은 구단주 가운데 가장 자주 야구장을 찾는다. 대전한화생명볼파크 신축에도 통 큰 투자를 했다. /한화 이글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2010년 사망)는 독선과 기행으로 유명했다. 암흑기에서 허덕이던 양키스를 1973년 인수해 ‘악의 제국’이란 비난을 감수하면서 1990년대 후반 기어코 명문 팀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는 감독을 제 마음대로 잘랐고, 선수단 규율도 제멋대로 정했다. 그럼에도 승리에 대한 집념은 아무도 못 말렸다. 스타인브레너는 "내게 승리는 숨 쉬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오너, 그룹 총수들의 욕심은 오직 ‘우승’이다. 파격적인 투자와 선수단 격려는 우승을 독려하기 위한 수단이다. 오너의 관심이 클수록 구단은 우승 압박에 시달린다. 구단은 수익을 늘리기 위한 마케팅이나 팬서비스 보다 성적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구단 내 인적 배치는 선수단 운영 중심으로 기운다. 성적 지상주의로 흐르는 것이다.

정용진 SSG 회장은 인천 청라지구에 순수 자체 예산으로 돔구장을 짓고 있다. /뉴시스
정용진 SSG 회장은 인천 청라지구에 순수 자체 예산으로 돔구장을 짓고 있다. /뉴시스

어느 순간 오너의 관심이 수그러들거나 모기업의 재정이 흔들리면 구단은 갈팡질팡한다. NC 다이노스는 창단 초기 김택진 구단주의 엄청난 관심과 지원으로 성적뿐 아니라 운영에서도 다른 구단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모기업의 영업실적이 위축되자 야구단 전체가 활력을 잃고 말았다. 그동안 자생력을 전혀 키우지 못한 결과다.

2000년대 중반 모기업 현대전자가 재정난에 휩싸이자 현대 유니콘스는 순식간에 몰락했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 직원 모두가 발 벗고 나서 광고주를 찾아다니고 스폰서를 설득했는데도 그렇게 쉽게 해체를 결정했을까. 다른 기업의 인수를 위해선 동분서주했지만 자립 의지는 없었다.

박정원 두산 회장은 해마다 두산 베어스 해외 전지훈련지를 방문해 선수단을 격려한다. /두산
박정원 두산 회장은 해마다 두산 베어스 해외 전지훈련지를 방문해 선수단을 격려한다. /두산

정용진 회장은 2022년 SSG가 통합 우승한 뒤 류선규 단장을 전격 해임했다. 이듬해에는 김원형 감독을 경질했다. 팬들의 아우성이 들끓었다. 그 뒤 정용진 회장의 야구장 발길은 뜸해졌다. 공교롭게 SSG는 2022년 우승 이후 2023년 3위, 2024년 6위로 성적이 떨어졌다.

오너의 애정과 관심은 ‘달콤한 독’과 같다. 오너의 시혜에 의지했다가 마음이 돌아서는 순간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오너의 관심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 달콤한 유혹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면 야구단의 자립은 백년하청일 뿐이다.

박정원 두산 회장은 해마다 두산 베어스 해외 전지훈련지를 방문해 선수단을 격려한다. /두산

daeho902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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