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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나우히어] 두 번의 대통령 '탄핵'...어처구니없는 '희비극 정치'
세월이 흘러도 한국 정치는 그대로다. 2017년 4월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탄핵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똑 같은 비극적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다./ 더팩트DB
세월이 흘러도 한국 정치는 그대로다. 2017년 4월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탄핵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똑 같은 비극적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다./ 더팩트DB

[더팩트 | 박종권 칼럼니스트]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말이다. 권력과 정치가 그렇다. 작고한 언론인 오홍근의 ‘민주주의의 배신’이라는 칼럼집을 펼쳤다.

1988년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란 칼럼으로 정보사령부 요원들에게 회칼테러를 당한 당사자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도 동원된 바로 그 정보사령부 말이다. 책은 2012년4월부터 2014년2월까지 2년간의 칼럼 모음집이다. 그럼에도 옛날 칼럼 같지 않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무릎을 칠 만큼 현실적이다. 2013년 9월 무렵의 칼럼 제목을 보자. ‘역사의 수레바퀴 거꾸로 돌리는 대통령’ ‘민주주의 할 건가 말 건가, 그것이 알고 싶다’ ‘대통령, 정치를 하세요’ ‘정치가 문제? 대통령이 문제다’ ‘말 따로 행동 따로, 시정연설의 진정성’ ‘생각 바꾸지 않으면 나라가 불행해진다’ ‘민주화 회복, 나라 정상화의 핵심 명제’ ‘이상한 검찰, 이상한 대통령’ 등이다.

어떠한가. 과거의 칼럼 제목으로 느껴지나? 박근혜 대통령 시절임에도 마치 최근 상황인 듯하지 않나. 이는 곧 세월이 흘러도 한국 정치는 그대로라는 뜻 아니겠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정치는 그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거다.책 표지에 쓰인 글이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연상케 한다. 과거로 갔다가 미래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영화 말이다.

내용은 이렇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한 최고 리더십이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마치 과거에 현재의 상황을 예견한 듯하다.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파괴한 현실 말이다. 오홍근 기자가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를 찍은 이유는 나름대로 다짐이겠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전 피의자심문을 마친 뒤 법무부 호송차량으로 서울구치소로 돌아가고 있다. /임영무 기자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전 피의자심문을 마친 뒤 법무부 호송차량으로 서울구치소로 돌아가고 있다. /임영무 기자

지금이야 말로 선택하고 행동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 느낌표는 과거와 현재를 관통한다. 과연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우기는 한 것일까. 24절기의 대설(大雪) 직전에 눈사태를 일으키듯 벌인 엉뚱한 비상계엄은 아직도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동지를 거쳐 소한 대한을 지나 입춘(立春)을 맞았는데 북풍한설은 여전하다.

80년 서울의 봄에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지만,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입춘 절기에도 봄 기운은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양극화된 정치판은 살얼음판 위에서 서로 다투는 모습이다. 지금 ‘역사의 수레바퀴 거꾸로 돌리는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에서 나와 서울구치소에 갇혀 있다.

내란 혐의 피의자로 체포돼 구속 기소되면서 피고인 신분이 됐다. 그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은 오롯이 그 자신이 자초한 것이다. 그는 ‘59분 스피치’로 유명하다. 1시간 담화에 59분을 혼자 말한다는 거다. 지도자의 첫째 덕목이 몸을 앞으로 기울여 듣는 경청(傾聽)인데 아예 듣지 않는다는 거다.

대체로 ‘내가 수사해 봐서 아는데"라고 시작한다고 한다. 헌데 수사 대상은 모두가 범법 혐의자이므로 정치를 배웠다면 결국 불법비리 정치인이 스승이라는 말이 아닌가. 올바르고 통찰력 있는 지도자는 만나지 못했다는 실토인 셈이다.그에게 ‘형님 클럽’이 있다. 그가 검사시절 "형님~"이라고 부르며 술을 따라 올렸던 이들이다.

대체로 이름 대면 알 만한 법조계와 언론계 인사들이다. 이 ‘형님’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다 종종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우려와 건의를 전달하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고 한다. "내가 바보입니까.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십쇼." 그는 늘 ‘격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실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국무회의에서도 걸핏하면 격노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문제는 이 격노가 가십이 아니라 스트레이트 기사라는 거다. 노기(怒氣)는 심기(心氣)를 해쳐 병을 일으키는 주범이다.사마천은 편작열전에 고칠 수 없는 여섯 가지 불치병을 기록했다. 첫째가 교만하고 방자하여 병의 원리를 논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가 몸을 가벼이 여기고 재물이 아까워 치료하지 않는 것이다. 입고 먹는 것을 적절하게 못하는 것이 셋째이고, 오장(五臟)의 기가 불안정한 것이 넷째이며, 몸이 극도로 허약하여 약을 먹을 수 없는 것이 다섯째이다. 여섯째가 무당의 말만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이 가운데 하나만 있어도 치료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치인과 지도자에 비유하면 첫번째 불치병이 교만함이라는 거다. 마치 세상사를 모두 아는 것처럼, 자신이 늘 옳은 것처럼 여기는 거다. "수사해 봐서 안다"는 주장은 서초동 우물 안 개구리의 세계관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아니겠나. 편작은 이를 대나무 통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 했다.

여섯째 불치병은 무당의 말만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것인데 이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다만 여기서 의사는 정치 좀 아는 원로 인사들로서 예컨대 이종찬 광복회장의 절절한 처방을 마이동풍으로 흘리는 거다. 독립운동가의 후예이자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정치인이고 무엇보다 자신을 지지했던 친구 아버지인데 그의 충심 어린 조언을 외면한 거다.

슬픈 것은 명의(名醫)가 꼭 환영 받지는 못한다는 거다. 시기와 질투 때문이다. 편작도 그의 의술을 시기한 당시의 의약 최고책임자에 의해 살해된다. 사마천은 "여자는 아름답든 못 생겼든 궁궐 안에 있으면 질투의 대상이 된다. 선비는 어질든 어리석든 조정에 들어가기만 하면 의심을 받는다. 편작은 뛰어난 의술 때문에 화를 입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편작의 일화이다. 병자의 섣부른 자만과 고집이 병을 깊게 해 마침내 죽음을 초래한 사례이다. 그가 제나라 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피부병을 경고한다. 일찍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더 깊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왕은 "나는 괜찮다"고 거부한다. 닷새 지나 "병이 혈맥까지 침투했다"고 말한다. 그래도 왕은 "나는 끄떡없다"고 자신한다. 또 닷새 지나 "장과 위 사이에 병이 있다"고 했지만 여전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로부터 다시금 닷새 후 편작은 왕을 멀리서 쳐다보기만 하고 아무 말 없이 그냥 물러나왔다. 왕이 사람을 보내 그 까닭을 묻자 "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탕약으로, 혈맥에 있을 때는 침으로, 장과 위에 있을 때는 약술로 고칠 수 있다. 하지만 병이 골수에 미치면 신의(神醫)라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지금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여부 탄핵 심판을 받으면서 한편으론 서울중앙지법에서 내란죄 재판을 받는 윤 대통령으로서는 첫번째 불치병에서 시작해 마지막 여섯째 불치병까지 동시에 얻은 형국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의 최후는 누구나 짐작하듯이 ‘정치적 사망’ 아니겠나. 본인은 아직도 기사회생을 꿈꾸는 듯하지만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자. 그는 끝까지 탄핵 심판이 인용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 결국 파면되고 국정농단으로 감방에 갇혔다. 비록 머지않아 사면복권 됐지만. 자본론의 저자 마르크스는 말했다. "헤겔이 언급한 것처럼 모든 위대한 세계적 역사적 사건과 인물은 두 번 등장한다. 그러나 헤겔은 다음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번째는 희극으로."

비록 위대하거나 세계적인 사건과 인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8년 사이에 두 번 탄핵되는 일을 어찌 봐야 할까. 먼저는 비극, 이번은 희극일까. 굳이 평하자면 둘 다 어처구니없는 희비극이겠다. 다시는 이런 희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전 피의자심문을 마친 뒤 법무부 호송차량으로 서울구치소로 돌아가고 있다. /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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