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범죄 피의자가 사법체계 정당성 지적
"책임회피 않겠다"던 약속은 어디에

[더팩트ㅣ이헌일 기자] "영장을 서부지법에 청구한 것은 소위 '영장 쇼핑'이고 '판사 쇼핑'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약 보름 전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단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청구와 집행 과정에서 한 말이다. 공수처는 내란 혐의 기소권이 없어 중앙지검에 사건을 이첩해야 하므로 영장도 서부지법이 아닌 중앙지법에 청구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후 체포영장 집행과 구속영장 청구 및 발부를 거쳐 구치소에 수감된 윤 대통령은 21일 대통령으로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변론기일에 출석해 직접 변론에 나섰다. 이전에 탄핵 심판대에 섰던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재 심판정에 한 번도 출석한 적이 없다.
반면 공수처 조사에는 체포 당일인 15일을 제외하면 모두 불응하고 있다. 당일에도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20분가량 조사를 받는 동안 "진술을 하지 않겠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며 영상녹화도 거절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공수처에 할 말은 다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조사에 전혀 응하지 않았고, 헌재 출석 전날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들이 강제 구인을 위해 서울구치소로 찾아갔을 때도 끝까지 거부했다.
탄핵 심판엔 직접 발벗고 나서는 반면 공수처는 사실상 무시하는 셈이다. 체포 및 구속영장을 두고 판사 쇼핑이라고 비판했던 그가 이제는 원하는 자리에만 출석하겠다며 '출석 쇼핑'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이런 쇼핑을 하는 기준도 모호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의 탄핵안 가결 이후 헌재가 탄핵 심판 절차 진행을 위해 보낸 각종 서류의 수령을 거부하며 '시간을 끈다' '사법부를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일주일 넘게 수령을 회피하자 헌재는 관련 서류가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고 절차를 시작했다.
이후 윤 대통령 측은 국회 측 대리인단이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하자 탄핵안에 대한 국회 재표결이 필요하다며 재판부에 각하 결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예 탄핵 심판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탄핵 심판 절차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던 윤 대통령이 이제는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하고, 앞으로도 모두 출석하겠다며 태도를 바꾼 것이다.

마치 법치주의·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사법체계를 중대 범죄 피의자가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규정하는 듯한 언행이다. 수사기관의 영장 청구도 불법이고, 법원의 영장 발부도 불법이라고 한다. 이의신청과 체포적부심까지 거치면서 재차 법원이 문제없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그래도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윤 대통령 측과 여당에서는 윤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이라는 신분 때문에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탄핵 심판과 내란죄 수사 과정에서 이미 일반인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방식으로 모든 권력과 법적 지식을 총동원해 공권력으로도 뚫기 어려운 방어벽을 세운 바 있다.
헌재의 탄핵소추 서류 수령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변론준비기일 연기 신청도 냈다. 또 재판부가 변론기일을 일괄 지정하자 이에 대해서도 이의신청을 했다. 내란죄 수사 과정에도 공수처의 세 차례 출석 요구에 모두 응하지 않았고, 결국 체포영장 청구 및 발부로 이어졌다. 체포영장 집행 과정에서는 경호처라는 공권력을 동원해 관저를 요새화하고 저항하면서 결국 영장 발부 이후 보름이 지나서야 집행이 가능했다. 이 사이 체포영장에 대한 이의신청, 체포적부심 절차도 거쳤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국회의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국민에게 약속한 내용을 지켜주길 바란다. 당시 그는 이렇게 공언했다.
"저는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해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