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회

[더팩트 | 이주상 언론인] "왜 쳐다보세요?"
볼살이 없는 앙상한 남자가 누군가를 쳐다보고 있다. 얼굴만 봐도 비쩍 마른 남자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화면 전체에 다채로운 색을 여기저기 흩뿌리며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짙은 눈썹 밑의 빛나는 눈은 영롱함마저 느끼게 할 정도로 반짝인다. 붉은색 입술도 생생하다.
남자의 주인공은 20세기 현대 화단의 이단아이자 총아인 ‘영혼의 마술사’ 에곤 실레(오스트리아, 1890-1918)다. 특유의 서늘함과 긴장감이 감도는 그림이지만, 자화상답게 자신이 주인공이다. 교만할 정도로 타인을 응시하는 눈빛이지만, 시선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 22세에 제작한 자화상은 넘치는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의 제목인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에서 알 수 있듯이 말라비틀어진 꽈리와 뒤틀린 얼굴은 실레 특유의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지만, 짙고 밝은색의 대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청량감을 느끼게 한다. 시선은 타인이 아닌 자신이다. 화가로서 사회에 발을 내디디며 자신감으로 충만한 자신을 표현했다.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서울 용산구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이하 비엔나 1900)가 열리고 있다. 비엔나 1900은 세기말부터 20세기 초 클림트의 분리파와 실레의 표현주의 그리고 예술의 전 분야에서 혁신을 몰고 왔던 모더니즘 운동을 비롯해 미술과 음악,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며 혁신적인 변화를 꾀했던 1900년대 비엔나의 예술과 문화를 집중 조명하는 전시회다.

이번 전시에서는 에곤 실레와 그의 스승인 구스타프 클림트와 교류했던 코코슈카 등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세계적인 미술관인 레오폴트 미술관이 소장한 회화, 사진, 조각, 공예 등 191점과 공예품 60여 점이 한국 관객을 찾았다. 한국 관객을 맞는 첫 작품은 클림트의 ‘큰 포플러 나무’다. 클림트 고유의 풍경화 묘사인 장식적이며 상징적인 요소를 듬뿍 담았다. 긴장감 넘치는 구도와 화려한 색묘사를 통해 작품을 독창성을 높이고 있다. 이어 리하르트 게스트를의 ‘반신 누드의 자화상’이 눈길을 끈다. 반신 누드의 자화상은 종교적인 도상을 이용해 신비하면서 성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예수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부활’의 메타포를 전하고 있다.
이어지는 공간은 실레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전시작 191점 중 46점이 실레의 작품이어서 이번 전시회는 실레의 참모습을 살필 기회다. 모네와 고흐로 대표되는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에 익숙했던 한국 관객은 실레와 클림트에 경도되는 등 예술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올해 3월 3일까지 이어지는 전시회의 주인공은 실레다. 클림트와 동시대 작가의 그림도 갤러리를 유혹하고 있지만, 실레를 보기 위해 살이 에이는 추위에도 긴 줄을 서고 있다. 오픈한 지 한 달 남짓한 시간에 10만여 명이 관람해 실레의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태생인 실레는 길고 가느다란 선, 가냘픈 인체의 묘사, 불안한 시선 처리 등으로 20세기 초 불안의 정서를 대변했다. 게다가 28살의 나이로 일찍 요절하는 바람에 그의 이미지는 ‘불안’으로 고착됐다.
그런 탓에 실레는 불안을 특징짓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실레의 예술 인생은 짧았지만 자아 정체성, 고독, 성적 욕망 등 인간의 감정을 그린 독특한 표현법과 심리적이고 실존주의적 주제를 풀어낸 방식은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금기로 여겨지던 에로티시즘을 노골적으로 다룬 실레의 표현법은 당시에는 외설로 취급됐지만, 오늘날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예술가의 철학적 고민을 다룬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서울을 찾은 이번 전시회에서 실레의 작품은 인간에 대한 솔직한 접근으로 주목받고 있다.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은 실레의 대표작 중의 하나다. 흰색을 배경으로 실레와 꽈리 열매의 붉은색이 강한 대비를 이룬다. 특히 실레는 어깨를 비틀고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린 채 관람객을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눈빛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화가의 자부심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화면은 꿈틀대고 있고, 표정은 충만함으로 가득하다. 시선은 관람객을 향하고 있지만, 자기애로 넘쳐나고 있다.

그동안 관객들은 실레의 인체 중심의 작품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인물화와 함께 풍경화가 다수 차지하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나무’는 실레가 풍경화에 주입한 인간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실레의 풍경화는 자연을 의인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 속의 가지는 연약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강렬한 생명력도 선사하고 있다. 앙상하지만 꺾이지 않는 모습에서 인간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골고다 언덕'은 20세기의 성화다. 21살 때 작품인 골고다 언덕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성서를 소재로 했다. 동네의 언덕에 세 개의 십자가를 그려 넣으며 예수의 고난과 희생을 묘사했다. 석양을 배경으로 황량한 들판 위에 서 있는 십자가는 관람자의 시선을 끌어당기며 종교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회의 마지막은 사랑하는 아내 에디트를 그린 누드화 ‘누워 있는 여성’이 차지한다. 이 그림은 1918년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에 출품됐고, 이 전시로 실레는 처음으로 경제적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같은 해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유럽 전역을 휩쓴 스페인 독감으로 임신한 에디트가 숨을 거두었고, 실레도 3일 후 세상을 떠났다.

"왜 쳐다보세요?" 작가와 타인의 경계가 아닌 합치의 지점이다. 실레와 관객이 하나가 되며 실레는 더욱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개막 40일 만에 10만 관람객을 매료시킨 실레의 그림을 보며 차가운 겨울, 순수함을 찾는 것도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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