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인간 생존의 첫 번째 과제이자 인류의 영원한 난제
보금자리인가 삶의 고통인가
[더팩트 | 진희선 칼럼니스트]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강남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평당 가격이 1000만을 찍자, "이러다 나라가 큰일 날 수도 있겠구나" 하며 주택공급 200만 호 건설을 발표했다. 그러던 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2018년에는 평당 1억으로 폭등하자 사람들은 놀랬다.
"결국 우리도 아파트 가격 평당 1억 원의 시대를 맞이하는구나!"
소득과 집값 상승의 관계를 살펴보면 의미 있는 상관관계를 발견한다. 1988년 당시에 1인당 국민소득이 3,400달러이고, 30년 후인 2018년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3,000달러다. 지난 30년 동안에 1인당 국민소득이 10배 오른 만큼, 집값도 10배가 덩달아 올랐다.
이 통계적 수치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소득이 오른 만큼 그에 비례해 집값은 오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1인당 국민소득과 집값의 비례관계의 패턴은 선진도시 대부분에서도 유사하다. 소득이 오르면 오른 소득의 상당 부분을 주거비용으로 투입해야 한다. 소득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서민들의 집 마련은 그만큼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고, 결혼했더라도 출산을 보류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집 마련이 안 되어서이다. 날짐승도 성장하면 어미 품을 떠나 맨 처음 하는 행동이 둥지를 만드는 일이다. 그다음 짝짓기하고 그 둥지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친다.
둥지 마련이 어려우면 부모 품을 떠나 독립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보금자리가 없는데 어떻게 짝을 만나 결혼하고 애를 낳는다는 말인가? 불안하다. 삶을 담는 보금자리인 집이 이제는 삶을 짓누르는 고통이 된 것인가?
1945년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기아로부터 탈출이었다. 36년간 식민지 수탈과 6·25 한국전쟁 결과는 참혹했다. 지독한 가난에 굶주림을 견디어야 했던 우리의 앞세대는 1970년대에 이르러야 겨우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국민이 기아로부터 해방되려면 하루에 1달러 소비가 가능한 1인당 국민소득이 365달러를 넘어서야 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이 시점이 바로 1974년이다. 인간의 첫 번째 생존조건인 먹을 것, 식(食)이 해결되면 그다음은 집, 주(住)가 중요하다. 그런데 기아 문제가 해결된 뒤로 50년이 지난 지금 사정은 어떤가? 먹거리는 해결되어 이제 비만을 걱정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지만, 집은 여전히 국가의 큰 현안 과제이며, 집값이 출렁거릴 때마다 국민의 걱정은 크다.
30만년 전에 출현한 호모사피엔스는 기원전 8,500년 경부터 원시 초기문자를 사용하여, 기원전 2,500년 경에 문자가 정형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에서 각각 사용된 문자는 지중해 상업활동을 하는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교류되면서 서로 결합하고 융합되어 그리스문자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문자는 라틴문자에 영향을 주고, 라틴문자는 로마문자의 원형이 된다. 그런데 문자 구성에 있어서 로마문자의 ABCDE 순서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의미를 발견한다. 고대 문자는 처음에 사물의 모양을 상징하는 상형문자가 몇 차례 추상화 과정을 거쳐 단순화 되어 문자로 정착되었을 것이다.
첫 글자인 A는 황소 머리를 거꾸로 눕혀 놓은 형상이다. 황소는 인간 생존의 첫 번째 조건인 식(食)에 해당한다. 황소를 잡아서 머리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몸통은 원시 부락민의 식량으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두 번째 문자인 B는 집을 상징한다. 부엌과 침실 두 칸을 둔 집을 세로로 세운 모양이다. 인간은 배부르게 먹고 나면 안전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집은 추위와 더위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고 다른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방어할 수 있는 쉘터다. 더불어 집은 원시 공동체의 가장 기초 단위인 가족을 구성하고 만들어 가는 장소다.
세 번째 글자는 모서리를 상징하는 C다. 원시시대에 살았던 인간은 어슴푸레한 숲속 모퉁이에 무엇이 나타나면 그것이 같은 집단의 동료인지, 아니면 나를 해치는 적이나 맹수인지 재빨리 판단해야 한다. 신속한 판단은 생존의 확률을 높인다. C는 안전을 상징하는 문자다.
네 번째 글자인 D는 활이나 창의 모양에서 유래되었다. 무기는 나를 해치려는 적을 제압하고, 동물을 사냥하는 도구다. 호모사피엔스가 도구를 개발하지 못했다면 다른 동물과 생존 경쟁에서 도태되어 지구상에서 이미 사라졌을지 모른다. 다섯 번째 글자인 E는 인간의 기쁨을 추상화 한 문자다.
배불리 먹고 나서 편안하게 쉬고 잠잘 수 있는 공간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기쁜 것이다. 행복에 겨워 춤추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 문자 E다. 문자가 출현한 만 년 전의 인간은 식(食), 주(住), 안전이 마련되면 기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로마문자의 ABCDE 순서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우선순위와 생존조건이 완성되었을 때 만족을 표현한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1798년에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는 인구론을 발표했다. 그는 "인구 증가는 기하급수적인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구 증가를 사전에 적절히 제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맬서스의 우려와는 반대로 과학기술의 진보와 농업혁명으로 식량 생산은 인구 증가보다 훨씬 빨리 상승하였다. 오늘날 매년 생산되는 식량은 지구상 모든 인간의 식욕을 해결하고도 남는다. 내전이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아프리카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인간 생존의 첫 번째 조건인 먹거리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오늘날 식(食)의 문제는 너무 많이 먹거나, 품질이 낮은 식품을 먹어서 생기는 비만이나 고지혈증이다. 맬서스의 예측은 빗나갔다.
식(食)이 해결되었으니, 인간 생존의 두 번째 조건인 집(住)이 인류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다. 인류는 집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집은 반드시 토지라는 기반 위에 지어진다. 도시화가 진행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마을을 이루며 산재해서 살았기 때문에, 집 지을 토지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에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집 지을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된다. 과학기술이 고도화 되면 될수록 부가가치가 큰 산업은 도시로 집중되어, 도시화는 가속화하고 사람은 좁은 도시로 몰려들게 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편리함을 증진하는 데 이바지 하지만, 집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될뿐더러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운다. 과학기술 발전의 역설이다.
고도화된 건설기술로 고층으로 아파트를 지어 많은 사람을 수용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갈수록 도심으로 집중되는 재화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아파트는 고밀 고층화되면서 교통, 채광, 환경, 경관 등 도시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며 지방과 가격 차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제는 인간 생존의 첫 번째 조건이 되어버린 집(住) 문제를 우리는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생명이 무생물과 다른 점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보금자리인 집이 해결되지 않으면, 호모사피엔스는 번식을 망설이거나 멈출 것이다. 집 문제는 인구 절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jhseon1@naver.com
※ 본 칼럼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더팩트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