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관 전시 정영창 작가 작품 철거?
작가‧예술작품 대하는 정중한 태도는 공동체 문화 수준 바로미터
지역사회, 지혜 모을 때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작가와 그들의 예술작품을 대하는 정중한 태도는 일정 공동체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이다. 그러한 태도는 투입된 재화와 그에 따른 마땅한 결실이 정량화될 수 없는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사회의 고매한 가치의식에서 비롯될 수 있는 미덕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사관에 철저하게 물들은 식민주의자의 몰염치한 망언이긴 하지만,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는 비평가 칼라일의 언급은 일면 작가와 예술을 국가의 최상위 자산으로 여겼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옛 전남도청 앞 광장 상무관에 설치된 정영창 작가의 작품 '검은 비(飛)‘ 가 철거 논란에 휩싸이며 광주 문화예술계와 시민사회가 소란스럽다.
상무관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된 주검이 임시 안치됐던 곳으로 희생자 유족들의 통곡이 서린, 오월 사적지 중 중요한 의미를 지닌 기념비적 추모공간이다.
2018년 5·18 38주기를 맞아 제작‧설치된 ‘검은 비’는 정 작가가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18여 년에 걸쳐 창작 혼을 쏟아 부은 범상치 않은 작품이다. 독일 뒤셀도르프를 무대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정 작가는 비극과 폭력의 현장에 주목하며 평화와 인권에 관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검은 비’는 가로 8.5m 세로 2.5m의 대형 추상작품으로 쌀을 검정과 코발트블루 유화물감에 섞어 판넬에 부착한, 독특한 분위기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독일과 전남의 쌀 100kg이 질료로 사용됐다. `검은 비’는 멀리서는 검은 단색의 추상회화 같으나 가까이서 보면 입체감을 안겨준다.
벼농사를 짓는 도작문화권에서 쌀은 단순한 주식이 아닌, 영성의 의미를 지닌다. 쌀을 품는 벼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으며, 벼를 생명을 잉태하는 모성적 인격을 지닌 것으로 여겼다.
시인 김준태는 5‧18 41주년에 바치는 시에서 ‘오월 광주는 내 고향 어머니’ 라고 노래했다. 5‧18 추모 작품에 쌀을 질료로 사용한 정 작가의 주제의식이 어떤 맥락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 작가 또한 "쌀 한톨은 작은 우주이며, 생명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검은 쌀’로 덮여있는 검은 표면은 모든 빛을 품고 있어 슬픔과 상처를 조용하고 따뜻하게 안아줘 모두의 빛이 되는 의미"라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검은 비’ 철거 논란이 불거진 것은 국립아시아시아문화전당(이하ACC)이 옛 전남도청 원형복원을 추진하면서 작품 철수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명시된 작품을 설치한 대관 기간을 넘겼으니 마땅히 철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ACC의 입장은 ‘상무관이라는 공간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라는 시민사회의 근원적인 질문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정 작가는 공사기간 동안 작품을 적절한 장소에 임시 보관한 뒤, 원형복원 공사 마무리 후 전시‧보존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ACC와 정 작가는 적절한 접전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술작품의 존치와 철거를 두고 논란이 빚어지는 것을 탓하거나 지역사회가 자괴심을 느낄 이유는 없다. 공공미술의 영역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논란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로는 문화생태계 건강성의 증좌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더 많은 문화, 더 나은 사회’(More culture, Better society') 라는 신념이 바탕을 이룬 집단지성은 문화공동체로 나아가는 핵심 동력이다. 지역문화예술계와 시민사회는 ‘검은 비’를 상무관 전시를 목적으로 한 장소특정작품(Site-specific art)으로 5·18민주화운동의 예술적 자산이라고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지역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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