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외면’ 속에 우크라 동포 귀환 모금 운동 7개월…노벨평화상감 인도주의 실천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당장 덮고 잘 침구류와 주방용품, 쌀과 식재료를 받고 보니 이제 안심이다."
지난 20일 일가족 4명을 데리고 폴란드 바르샤바를 출발, 한국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탈출 고려인 동포 강비탈리씨의 첫마디다. 전화를 피해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이들이 얼마나 힘겨운 나날을 보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강비탈리씨가 고국 땅을 밟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된 데는 이들의 국내입국을 돕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는 광주 고려인마을과 지역 공동체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광주 고려인 마을의 지원으로 국내 입국한 우크라 탈출 동포들의 수가 7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고려인 동포들이 정착촌을 이루고 살고 있는 광주 고려인마을이다. 고려인 마을은 지난 3월부터 모금운동을 펼쳐 전화를 피해 인근 몰도바와 루마니아, 폴란드 헝가리 등으로 피신한 동포들의 국내귀환을 도왔다.
이 인도주의적 행적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정부의 외면 속에 오로지 고려인마을과 지역 공동체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일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침공 직후부터 전쟁지역을 피해 인근 국가로 빈손으로 무작정 피신한 이들을 데려오기 위한 항공권 지원을 위해 마을과 지역공동체가 동분서주하는 동안 정부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지역 국회의원이 이들을 돕는 길을 찾겠다고 인근 국가들의 난민촌을 방문하고, 이준석 집권여당 당 대표 또한 그곳을 다녀왔지만 도움의 손길은 이후에도 전무했다. 그저 여행을 다녀왔다고 볼 수밖에 없는 ‘빈손 방문’이었다.
한 핏줄을 나눈 민족이라는 책임감으로 안간 힘을 쓰는 고려인마을의 노력이 안타까워 기자 또한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 실세라는 이들에게 지난 인연을 고리삼아 공군기 지원을 간절하게 당부했지만 반향은 없었다. 아프간 친한 정권이 무너졌을 때 정부를 도왔던 현지인들을 공군기를 보내 비밀스럽게 데려왔던 극적 드라마는 우크라이나 고려인동포 엑소더스에는 펼쳐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고려인 마을과 지역공동체가 고려인 동포 난민 700여명을 데려온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일컬었다. 또 어떤 이들은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한 인도주의의 실천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여기까지 오는 일도 힘겨웠지만 아직도 할 일은 산처럼 쌓여있다. 최근 전쟁양상이 악화되고 장기전에 접어들면서 공포심에 사로잡힌 크림반도 고려인 동포들도 끊임없이 고국귀환을 요청하고 있어, 고려인 마을은 연말까지 400명을 더 데려와야 할 상황이다.
항공권 지원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어서 고려인 마을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이들의 거주지 마련, 생활비와 생필품 지원, 긴급 의료지원, 학령기 아동 편입학 지원, 출입국 외국인 등록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들이 뒤따른다. 고려인 마을은 7개월 째 모금운동 만으로 이런 수발들을 다 감당하고 있는 중이다.
동포 난민들의 국내 입국을 앞장서서 이끌고 있는 고려인 마을 신조야 대표는 "어려움에 처한 동포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고 말하며 "조국 귀환을 원하는 동포 마지막 한 명까지 지원할 방법을 찾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인근 국가들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만든 디아스포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전쟁의 참화로 다시 이산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데려오는 일을 정부는 고려인 마을의 구호 활동에만 정녕 맡겨둬야 하는 일일까?
민족의 정기는 어떻게 강해지는가? 2차 대전 종전 후 억압을 받으며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극적으로 귀환시키는 과정을 배경 삼은 영화 ‘영광의 탈출’ 주제곡의 한 구절에서 어쩌면 영감을 얻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주제곡을 부른 가수 ‘펫분(Pat Boone)’은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단지 평범한 사람이지만, 당신이 내 곁에 있을 때 신의 도움으로 나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니, 내 손을 잡고 이 땅을 거닐어보세."
정부는 이제라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우리 곁에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민족은 강철처럼 굳건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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