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대한민국 사법정의 민낯 드러나, 검찰, 즉각 항소해야”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돈 있는 사람은 죄가 없고, 돈 없는 사람은 죄가 있다는 말이다. 죄를 짓고도 사회적 계급에 따라 다른 처벌을 받는 불평등을 꼬집는 표현이다. 예전부터 쓰여 왔던 말이지만, 지강헌 탈주 사건 때부터 금권에 의해 무너진 사법정의를 비판하는 일상의 세태어가 됐다.
19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지강헌 일당은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탈주하여 서울 시내로 잠입했다. 포위망이 좁혀오자 인질극을 벌이며 군경과 대치하던 이들 4명은 결국 자살을 하거나 사살됐다.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
당시 인질극을 벌이며 버티던 지강헌이 했던 유명한 말이다. 560만 원 절도를 저지른 자신은 무려 17년을 살아야 하지만 72억 원을 횡령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겨우 7년 선고에, 그마저도 3년 만에 풀려난 사실에 불만을 가지고 탈출했다고 이유를 소상히 덧붙이기도 했다.
지난해 6월 무려 17명의 사상자를 낸 학동참사 1심 판결이 지난 7일 광주지법 302호 법정에서 내려졌다. 판결이 나온 직후 ‘학동참사시민대책위’는 ‘유전무죄’로 밖에 볼 수 없는 이 부조리한 재판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판결의 내용을 보면 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 ‘봐주기 판결’이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불법시공을 공모하고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현산 현장 소장 서 모 씨는 집행유예 3년에 벌금 500만원, 현산 공무부장 노 모 씨와 안전부장 김 모 씨에게는 각각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불법 재하도급을 조장했던 다원이엔씨 현장소장 김 모 씨에게 금고 1년에 집횅유예 2년을 선고했으며 현산에 2,000만 원, 하청회사인 한솔과 백솔에 3,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반면에 하청업체 한솔 현장소장 강 모 씨에는 징역 2년 6개월을, 재하청업체 대표 조 모 씨에게는 징역 3년 6개월을, 그리고 감리 차 모 씨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 결과를 요약해보면 현산 관계자는 모두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고, 상대적 약자인 하청기업과 감리에게만 징역형 실형을 선고했다. 마치 피라미드식 불법 다단계 사업의 피해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조합원에게 뒤집어 씌워진 듯한 형국이다. 벌금도 현산이 가장 낮다. 한눈에 보아도 참사의 몸통인 현산에 면죄부를 준 재판이라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판결이다.
현산은 학동참사 발생 6개월 후인 지난 1월 화정 아이파크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작업 중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6명의 노동자가 숨지는 대형 사고를 또 일으켜 광주 시민사회의 공적이 되다시피 했다.
이 같은 현산에 대한 불신의 정서가 지역 공동체에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바라본 이번 재판 결과는 시민사회의 법 감정과는 사뭇 배치되는 결과이다.
학동참사시민대책위는 "우리는 이 부조리한 재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 실형이 선고된 깃털들에 비해 가볍지 않은 책임이 있는 몸통 현대산업개발도 이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검찰은 즉각 항소하여 참사 피해자 및 유족들의 억울함을 풀고 불법공사에 대한 엄정한 처벌로 사회적 경종을 울려야한다"고 촉구했다.
‘유전 무죄 무전유죄’는 헌법이 만인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공화국에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임에도 거듭 발생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학동참사 재판 결과를 지켜보면서,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민낯을 쓸쓸한 마음으로 새삼 돌이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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