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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 불사르고 떠난 ‘진짜 사나이’ 백인천 [김대호의 야구생각]
14일 지병인 뇌경색으로 영면
평생 야구에 중독된 인생 산 '진짜 사나이'
선수들에게 '혼의 야구' 강조


백인천 전 LG 트윈스 감독이 14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혼의 야구'를 강조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다. /뉴시스
백인천 전 LG 트윈스 감독이 14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혼의 야구'를 강조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다. /뉴시스

[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LG 트윈스 창단 사령탑을 맡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백인천 전 감독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백 전 감독은 이날 오전 6시 30분께 충남 천안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뒀다. 고인은 2021년 지병인 뇌경색이 재발해 투병 생활을 해왔다. 고인의 장례는 KBO장으로 치러진다.

백인천 전 감독은 1942년 9월 27일(음력) 중국 우시에서 태어났다.(호적엔 1943년생) 이후 서울 효제국민학교와 경동중·고를 졸업했다. 중학교 시절엔 야구와 스피드 스케이팅, 육상 선수를 병행할 만큼 운동에 특출난 소질을 보였다. 이재환 오춘삼 등과 함께 경동고를 전국최강으로 이끈 백 전 감독은 1962년 방망이 세 자루만 들고 혈혈단신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 명문 프로팀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지기 전으로 당시 일본은 ‘적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고 백인천 전 감독이 2019년 고척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한국-호주전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백 전 감독의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뉴시스
고 백인천 전 감독이 2019년 고척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한국-호주전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백 전 감독의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뉴시스

백인천 전 감독은 일본에서 온갖 차별과 따돌림을 겪었다. 이때 그를 지켜준 두 개의 좌우명이 ‘혼(魂)’과 ‘노력자애(努力自愛)’다. ‘혼’은 목숨 걸고 야구에 중독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신념이었고, ‘노력자애’는 스스로 하는 일을 사랑해야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백 전 감독은 일본 진출 14년 만인 1975년 타이헤이요 라이온즈 시절 .319의 타율로 마침내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오른다. 이후 1981년 긴테스 버펄로스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20년 동안 뛰면서 통산 1831안타, 209홈런, 212도루, 타율 .278의 기록을 남기고 1982년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고국으로 돌아온다.

MBC 청룡(LG 트윈스 전신) 초대 감독 겸 선수에 부임한 고인은 KBO리그 원년 타율 .412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4할대 타율은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후 LG(1990~1991년)와 삼성 라이온즈(1996~1997년), 롯데 자이언츠(2002년) 감독을 역임했다.

고 백인천 전 감독은 선수들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타협하지 않았다. 고인은 '직업 선수'의 자세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뉴시스
고 백인천 전 감독은 선수들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타협하지 않았다. 고인은 '직업 선수'의 자세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뉴시스

백인천 전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도 선수들에게 ‘혼’을 강조했다. 타격 한 동작, 투구 하나에도 ‘혼’이 담겨 있지 않으면 ‘직업 선수’로 자격이 없다고 질타했다. 이 때문에 선수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으며, 언론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소질이 아무리 뛰어나고 팀 공헌도가 높아도 ‘근성’이 부족한 선수는 극도로 싫어했다. 가끔 공개된 장소에서 선수에게 손찌검을 해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백인천 전 감독은 이런 얘기를 했다. "일본에서 뛸 때 투구에 왼 손등을 맞아 금이 갔다. 하지만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바로 경기에서 빠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내 포지션이 포수였다. 공 받을 때마다 손이 떨어져 나갈 만큼 아팠다.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참고 뛰었다." 백 전 감독은 고통 없는 결실은 없다고 믿는다.

백인천 전 감독이 떠났다. 고인은 평생을 치열하게 살았다. 고인은 생전 "이 세상 모든 일은 노력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말년엔 찾는 사람이 없어 외롭게 살았다. 그의 중독된 야구 인생. 그가 떠난 자리에 한국 야구는 한 송이 국화꽃을 얹는다.

고 백인천 전 감독은 선수들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타협하지 않았다. 고인은 '직업 선수'의 자세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뉴시스

daeho902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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