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축 빠진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수·주 새로운 중심 입증

[더팩트 | 박순규 기자] ‘바람의 손자’ 이정후(27·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더 이상 정확하게 맞히는 데만 능한 교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증명했다.
이정후는 4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텍사스 레인저스와 2026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원정경기에서 2번 타자 우익수로 나서 시즌 7·8호 홈런을 포함해 4타수 3안타 3타점 2득점 1도루를 기록했다. 샌프란시스코가 기록한 6안타 가운데 절반을 혼자 책임지며 5-1 승리와 3연패 탈출을 이끌었다. 메이저리그 진출 후 두 번째 멀티 홈런이자 지난해 기록한 개인 한 시즌 최다 8홈런과 타이를 이룬 경기였다.
두 홈런의 내용은 이정후의 타격이 한 단계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3회 첫 홈런은 시속 133.5㎞ 스플리터가 가운데로 몰리자 놓치지 않고 받아쳤다. 타구 속도는 시속 161.9㎞, 비거리는 125m였다. 8회에는 낮게 떨어지는 시속 139㎞ 슬라이더를 퍼 올려 다시 우중간 담장을 넘겼다. 타구 속도 시속 161.1㎞, 비거리 117.3m였다.
두 타구 모두 시속 100마일을 넘겼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빠른 공이 아닌 변화구를 홈런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실투 응징 능력, 두 번째는 낮은 공을 걷어 올리는 배트 궤적과 하체 중심 이동이 돋보였다. 단순히 운 좋게 담장을 넘긴 홈런이 아니라 투구의 속도와 높이에 맞춰 스윙을 조절한 결과였다.

5회에는 좌전안타 뒤 곧바로 2루를 훔쳐 시즌 8호 도루를 기록했다. 9회 1사 만루에서는 큰 스윙 대신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타점을 추가했다. 홈런을 칠 때는 과감했고, 점수가 필요할 때는 팀 배팅을 선택했다. 우익수 수비에서도 여러 차례 안정적인 타구 판단을 보였다. 장타와 콘택트, 주루와 수비가 한 경기 안에서 동시에 작동한 ‘공·수·주 3박자’의 완성형 활약이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7월 부진을 끊어냈다는 점이다. 이정후는 6월 타율 0.340을 기록하고 개인 최다 18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벌였지만, 7월에는 타율 0.244로 떨어졌다. 6월 23일 0.331이었던 시즌 타율이 한때 0.299까지 하락했고, 홈런도 99타석 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LA 에인절스전 3점 홈런을 시작으로 장타 감각을 되찾았고, 이날 멀티 홈런으로 시즌 타율을 0.306까지 끌어올렸다.
이번 활약은 팀 사정과 맞물려 의미가 더욱 크다. 샌프란시스코는 트레이드 마감일을 전후해 로비 레이와 루이스 아라에스, 엘리엇 라모스 등 주축 선수들을 내보냈다. 24시간 동안 6명이 팀을 떠나면서 젊은 선수 중심의 재편이 시작됐다. 이날 선발 라인업에도 신인급 선수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정후는 ‘좋은 외국인 타자’를 넘어 앞으로 팀이 중심에 세워야 할 핵심 선수임을 보여줬다. 샌프란시스코가 시즌 성적보다 미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면, 이정후에게도 남은 두 달은 개인 기록 이상의 시간이다. 새롭게 구성될 타선에서 누가 공격을 이끌고, 누가 팀의 기준이 될 것인지를 증명해야 한다.
물론 한 경기의 멀티 홈런만으로 이정후를 거포라고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정확한 콘택트 능력에 한 시즌 두 자릿수 홈런 가능성까지 더해진다면 선수의 가치는 전혀 달라진다. 안타를 만드는 타자에서 경기의 흐름을 단숨에 바꾸는 타자로 진화하는 것이다.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 거센 바람이 불어야 강한 풀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주축 선수들이 빠져나간 혼란스러운 날, 이정후는 두 번의 홈런과 한 번의 도루, 안정된 수비로 자신이 샌프란시스코의 미래를 지탱할 선수라는 사실을 그라운드에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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