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 줄이면 한국의 그렉 매덕스로 성장 기대

[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렉 매덕스는 ‘아트 피칭의 지존’으로 불린다. 150km 아래는 명함도 못 내미는 메이저리그에서 매덕스의 시속 140km 안팎의 투심 패스트볼은 타자들이 알고도 못 쳤다. 무브먼트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다.
매덕스는 한 타자를 상대하면서 공 3개를 던지는 것도 낭비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초구부터 타자의 방망이를 유도해 내야 땅볼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파워 피처’와 구분해 맞혀 잡는다는 뜻의 ‘피네스 피처’란 말도 그 때문에 생겼다. 메이저리그에서 100구 이내로 완봉승을 거두면 ‘매덕스’라고 부른다.
LG 트윈스 임찬규(33)가 26일 잠실 한화 이글스전에서 생애 첫 완봉승을 거뒀다. 완봉은커녕 완투도 사라져 가고 있는 현대 야구에서 임찬규의 이날 승리는 신선한 청량제와 같았다. 임찬규는 이 경기에서 딱 100개를 던져 한국판 ‘매덕스’가 되었다. 볼넷은 2개만 내줬고, 안타는 5개를 맞았다.

이날 경기만 놓고 보면 매덕스가 전혀 부럽지 않았다. 속구 최고 구속은 145km, 평균 구속은 138km에 머물렀지만 주무기인 체인지업과 커브가 엄청난 위력을 보였다. 임찬규의 서클 체인지업은 속구와 똑같은 폼에서 오른손 타자 몸쪽으로 뚝 떨어진다. 이 때문에 2스트라이크 이후 헛스윙 비율이 90%에 육박한다. 임찬규는 이날 전체 100개 투구 중 25개의 체인지업을 던졌다. 또한 28개를 던진 임찬규의 커브는 KBO리그 투수 중 낙폭이 가장 크다.
프로 15년 차의 임찬규는 초창기만 해도 파워 피처였다. 데뷔 첫해인 2011년 최고 152km의 속구를 던졌고, 2020년까지도 150km의 빠른 공을 뿌렸다. 이후 팔꿈치 수술과 재활을 거치면서 ‘기교파 투수’로 재탄생했다. 임찬규는 이를 두고 ‘생존을 위해서’라고 했다. ‘투수의 가치는 타자와의 승부에서 이기는 것’이란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삼진으로 돌려세우든, 땅볼로 잡든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야구판 ‘흑묘백묘’라 할까.
임찬규는 만 30세가 넘은 2023년부터 전성기를 맞았다. 이때부터 안정적인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갔고 투수로서 눈을 뜨게 됐다. 타자와의 승부 요령이나 경기 운영 능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2023년 14승3패, 평균자책점 3.42에 이어 2024년 10승6패, 평균자책점 3.83으로 2년 연속 두 자리 승수와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23시즌엔 주축 투수로서 LG를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2024시즌 뒤엔 프리미어12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임찬규의 시간은 지금부터다. 기교파 투수는 30대에 들어서 진면목이 드러난다. 매덕스는 메이저리그에 스테로이드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1996년 15승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2003년까지 만 30세 이후 8년 연속 15승 이상을 거뒀다. 그리고 만 42세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국내에선 기교파 투수의 원조 격인 임호균(69)이 있다. 임호균은 청보 핀토스 시절인 1987년 8월 25일 해태전에서 만 31세의 나이에 단 73개의 공으로 완봉승을 거둬 역대 최소 투구 완봉승 기록을 갖고 있다.
통산 109승의 장호연(65)도 기교파 투수 계보에 들어간다. 장호연 역시 만 32세인 1992년 16승으로 자신의 최다승 기록을 세웠으며, 1993년에도 10승을 올려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임찬규가 기교파의 전설이 되기 위해선 경기마다 드러나는 편차를 극복해야 한다. 피네스 피처 답지 않게 볼넷이 많은 것도 약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 경쟁을 벌이는 요즘 야구에서 임찬규의 ‘아트 피칭’은 자신만의 투구를 완성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daeho902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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