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김광현 양현종 이후 선발 맥 끊겨
유망주 신인 투수는 선발 보다 불펜 중용

[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한국 프로야구가 선발투수 기근에 시달린 건 오래된 일이다. 류현진(한화) 김광현(SSG) 양현종(KIA)이 데뷔한 2006~2007년 이후 사실상 국제 경쟁력 있는 선발투수 자원이 고갈됐다. 이들 셋이 국가대표에서 물러난 뒤 한국야구는 처참하게 몰락했다.
3회 연속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1라운드에서 탈락했고, 3개 메이저 국제대회 연속으로 1회전에서 떨어졌다. 이제 1회전 통과가 지상과제가 됐다. 올림픽까지 제패했던 한국야구가 변방으로 전락한 가장 큰 원인은 확실한 선발투수의 부재다.
한국은 2020년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과 2022년 WBC, 그리고 지난해 프리미어12를 치르면서 5이닝을 막아줄 선발투수가 없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급기야 내년 WBC에선 류현진을 재소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류현진은 내년에 만 39세다.

2024시즌 KBO리그에서 100이닝 이상을 던진 한국 투수는 18명이다. 이 가운데 규정이닝(144이닝 이상)을 채운 투수는 10명에 불과하다. 여기에 선발투수로서 기본 요건인 15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고작 8명이다. NC 다이노스는 규정이닝을 채운 국내 투수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선발 로테이션이 상대적으로 잘 돌아갔다는 LG 트윈스도 손주영(144⅔) 한 명이 간신히 규정이닝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도 양현종(171⅓) 김광현(162⅓) 류현진(158⅓) ‘빅3’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20대 중엔 곽빈(두산·167⅔) 원태인(삼성·159⅔) 엄상백(한화·156⅔) 하영민(키움·150⅓) 손주영이 그나마 선발투수로서 제 몫을 했다. 각 팀당 한 명밖에 쓸만한 국내 선발투수가 없는 셈이다.
이들 중 국제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선발투수를 찾는 건 더 어렵다. 김광현 양현종은 구위 저하로 국제대회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곽빈 원태인도 믿고 내보내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급기야 22일 열린 2025시즌 개막전에선 10개 팀 모두 외국인 투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국내 투수가 전멸한 개막전은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특급 선발투수가 사라지는 원인 중 하나로 구단의 이기심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요즘 고교야구는 투구 수 제한으로 싱싱한 어깨를 가진 투수들이 무더기로 배출되고 있다. 고교 시절 150km 이상 던진 투수가 해마다 20명 가까이 된다. 하지만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달고 프로에 입단한 이들이 선발로 자리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외국인 투수 2명에 남은 선발 자리는 셋. 대부분 구단은 신인에게 선발을 맡기지 않는다. 마스터 플랜을 갖고 있는 구단이라면 가능성 있는 투수를 장기적 안목에서 선발로 키우는 게 맞다. 하지만 감독을 포함한 구단은 구위가 괜찮은 젊은 투수를 불펜으로 돌린다. 짧은 이닝 써먹기 좋아서다.

정해영(KIA) 김택연(두산) 김서현(한화) 등은 구단 사정에 의해 선발을 포기하고 불펜으로 돌아선 경우다. 올 시즌에도 이런 경향은 계속될 전망이다. 올해 입단한 정우주(한화) 배찬승(삼성)은 150km 이상을 쉽게 던지는 대어급 신인 투수다. 향후 소속 팀은 물론 한국야구를 이끌어갈 선발투수 감이다. 하지만 팀 여건상 불펜으로 투입되고 있다. 불펜에 정착한 투수가 선발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좋은 선발투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류현진같이 신인 때부터 선발 한 자리를 꿰차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잠재력 있는 투수를 찾아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어 가야 한다. 현대 야구가 불펜 중심으로 운영되는 추세라 해도 쓸만한 선발투수가 없는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렵게 찾은 원석을 근시안적 판단으로 1이닝짜리 투수로 만드는 건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daeho902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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