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지난 17일 벌어진 프로야구 두산-삼성전에서 삼성 박해민의 도루가 논란이 됐다. 두산이 14-1로 앞선 가운데 3회말 삼성 공격 때 박해민이 2루를 훔쳤는데 두산 투수 더스틴 니퍼트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불문율'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점수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삼성이 내야 수비를 뒤로 빼자 그에 맞춰 두산도 도루에 대한 방비를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지고 있는 팀이라고 해서 도루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 두산쪽의 생각이었다. 박해민 역시 사과의 몸짓을 보냈다.
각 구단 선수들과 감독, 코치들이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여기지만 야구규칙에는 없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왜 규칙에 들어있지 않을까?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없어도 야구 경기를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또 하나는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기에는 기준을 잡기 애매하다. 도대체 언제 어느 정도의 점수차가 나야 상대를 자극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누구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임의로 정할 수는 있겠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앞서 말했듯이 꼭 필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홈런을 친 타자가 자신의 타구를 바라보며 타석에 머물러 있거나 베이스를 천천히 돌면 안된다든가 삼진을 빼앗은 투수가 지나치게 좋아하는 기색을 드러내면 안된다든가 하는 불문율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배려와 예의는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지 강요할 문제가 아니다. 하물며 경기와 직접 관련된, 규칙에 할 수 있도록 돼 있는 도루와 번트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도를 지나친 주장이다. 규칙에 나와 있는 각 팀의 목적은 '상대팀보다 많이 득점하여 승리하는 데에 있다(1.02).
선수들의 불문율은 프로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팬과 관중을 무시하고 있다. 팬들은 치열한 승부를 보기 위해 야구장에 가는 것이지 선수들이 친목을 도모하고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 경기의 3분의 1도 진행되지 않았는데 점수차가 크게 났다고 해서 야구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도루를 하지 말라는 것은 자신들끼리만 예절을 지키고 관중에 대한 예의는 신경쓰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자, 이제부터는 우리 식으로 할테니 그렇게 알고 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큰 점수차가 뒤집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선두 KIA는 지난 13일 SK와 경기에서 7회초까지 10-5로 앞서다가 7회말 10점을 내주며 역전패했다. 한 이닝에 10점을 낼 수 있는 타고투저의 흐름에서 어떻게 섣불리 결과를 확신하며 상대를 자극하지 말자고 할 수 있겠는가. 큰 점수차 열세에서 필요한 것은 분발이지 상대의 위로가 아니다.
불문율과 관련해 주객전도의 예가 2001년 메이저리그에서 있었다. 애리조나 투수 커트 실링이 샌디에이고 타선을 압도하며 퍼펙트 게임까지 아웃카운트 5개만을 남겨 놓은 상황이었는데 샌디에이고 포수 벤 데이비스가 번트 안타로 대기록을 무산시켰다. 애리조나 감독과 선수들은 데이비스가 불문율을 깨뜨렸다며 맹비난했다. 그런데 당시 스코어는 2-0으로 샌디에이고가 따라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데이비스의 출루로 샌디에이고는 결국 동점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두 팀은 지구 공동 선두였다.
불문율은 자기중심적 사고에 그치지 않고 야구의 질서까지 깨뜨리는 경우도 있다. 벤치 클리어링과 불문율을 어긴 선수에 대한 빈볼 보복 같은 것이다. 자신들의 단합을 위해 패싸움을 벌이고, 자신들만의 룰을 수호하기 위해 규칙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행위를 버젓이 자행하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야구장에서 지켜야 할 불문율은 딱 하나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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