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멘도사 라인'이라는 야구 용어가 있다. 타자의 타율이 2할 언저리에 있음을 말하는데 1970년대 피츠버그와 시애틀, 텍사스의 유격수였던 마리오 멘도사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그의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이 0.215였다.
멘도사 라인의 타율을 기록하는 타자는 대부분 유격수다. 왜냐하면 유격수가 아니면 이 정도 타율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뛰어난 수비 실력 덕분에 메이저리그에서 9시즌을 뛸 수 있었던 멘도사는 은퇴 후 마이너리그와 멕시코리그에서 감독을 지냈다.
멘도사 라인으로 유명한 메이저리거 가운데 한 명이 1960~197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댈 맥스빌이다. 세인트루이스의 유격수였던 맥스빌은 골드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수비가 뛰어났으나 타격은 형편없었다. 1964년 월드시리즈에서 타율 2할, 1967년 월드시리즈에서는 1할5푼8리에 그쳤다. 1968년 월드시리즈에서는 22타수 무안타였다.
통산 타율 0.217로 은퇴한 맥스빌은 여러 팀에서 코치로 일하다가 1985년 세인트루이스의 단장이 됐다. 세인트루이스가 애틀랜타의 코치였던 맥스빌에게 단장을 맡긴 것은 그가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데다 야구에 대한 실전 지식이 풍부하고, 세인트루이스라는 팀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맥스빌은 단장 첫해 트레이드를 통해 호세 오켄도를 영입했다. 오켄도는 그 후 10년 동안 세인트루이스에서 맹활약했고 코치까지 됐다. 1985시즌 세인트루이스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최하위로 꼽혔으나 예상을 깨고 리그 챔피언에 올라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맥스빌은 단장으로서 세인트루이스를 수비가 강한 팀으로 만들었고 1987년에도 내셔널리그 우승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그는 선수로는 세인트루이스에서 두 차례를 비롯해 네 번이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지만 단장으로 일한 10년 동안에는 팀을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지 못했다. 그러나 고향팀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했을 때보다 단장이 됐을 때 더 기뻐했고, 선수로서 그라운드에서 활약할 때보다 단장으로 팀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더 희열을 느꼈다.
SK가 17일 염경엽 전 넥센 감독을 단장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넥센 지휘봉을 잡고 있던 지난해 SK의 감독으로 간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결국 단장으로 팀을 맡게 됐다.
염경엽 단장은 2000시즌을 마치고 현역에서 은퇴한 뒤 현대와 LG에서 프런트로 일했다. 프런트와 코치로 활동하면서 그는 "언젠가는 단장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그 꿈을 이룬 것이다.
염 단장은 선수 시절 국내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멘도사 라인 타자였다. 1994년 119경기에 나서서 단 8개의 실책을 기록했을 만큼 수비는 리그 정상급이었지만 타격은 현대 시절인 1998년 0.265가 가장 높은 시즌 타율이었을 정도의 물방망이였다. 통산 타율 0.195.
그가 선수 생활을 시작한 태평양은 김경기, 윤덕규 등 강타자가 있었지만 타선보다는 마운드 중심의 팀이었다. 수비와 주루 실력만으로도 주전 자리를 지키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태평양이 현대에 인수되면서 주전에서 밀려났고 그때부터 마음을 다져먹고 끊임없이 연구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넥센에서 감독으로 두각을 나타낸 뒤 "타율 1할의 실패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넥센에서 감독으로 비교적 좋은 성적을 냈지만 지도자로 능력을 평가받기에는 기간이 짧았다. SK의 단장을 맡게 됐지만 다시 감독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쩌면 팀을 우승시키는 것은 감독보다 단장으로서가 먼저일지도 모른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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