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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초대석] '28년 외길' 양해영 KBO 총장 "내 사주에 야구가 있다"<1>

  • 스포츠 | 2016-01-26 11:51

'28년 외길'을 걷고 있는 양해영 KBO 사무총장이 인터뷰 도중 출신 학교인 신일고 야구부 얘기가 나오자 환하게 웃고 있다./도곡동=문병희 기자
'28년 외길'을 걷고 있는 양해영 KBO 사무총장이 인터뷰 도중 출신 학교인 신일고 야구부 얘기가 나오자 환하게 웃고 있다./도곡동=문병희 기자

[더팩트 | 대담=박순규 편집국장, 정리=이성로 기자] 강남역에서 보이던 건물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2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한강만큼 넓어 보이던 강남대로가 이제 비좁아 보일 정도로 차가 많다. 지난 1988년, 그러니까 도곡동 강남대로 언덕에 KBO 건물이 준공될 즈음이다. 서울지하철 2호선 역사 밖에서 보면 멀리 보이던 7층 높이의 근사한 KB0 건물이 이제는 빌딩 숲에 가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변치 않은 사람도 있다. 1988년 도곡동 KBO 새 건물 준공과 함께 공채 1기로 업무를 시작한 양해영(55) 사무총장이다. 10명의 지원자 가운데 딱 한 명의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강산이 세 번 바뀔 만한 시간을 그 건물에서 야구와 함께 여전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만 직책이 총무부의 말단 빌딩 관리사원에서 야구 실무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사무총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양 총장을 만나러 가는 길은 추웠다. 모처럼 소한 추위를 능가하는 대한 추위로 한강이 결빙됐다고 공식 발표된 21일, KBO 건물 6층 사무총장실에서 마침내 그와 마주했다. 2주 전 시간 약속을 받아낼 때는 인터뷰 시간 잡기가 어려워 '비시즌에 무슨 일이 그리 많은가'란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사무실 가득 각종 대회 사인볼과 사인배트, 기념패 등이 빼곡하게 쌓여 있는 좁은 공간에서 인터뷰 예정시간 직전까지 미팅을 하는 걸 보니 상투적으로 바쁘단 핑계를 대지는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바쁘시네요"라고 인사를 건네니 "늘 그런데요"라며 항상 대하는 사람처럼 대수롭지 않게 화답한다. 시즌이든, 비시즌이든 가리지 않고 일을 대하는 그의 자세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아프든 아프지 않든(그는 두 차례 직장암 수술을 받았는데, 30일의 공식 병가 이외 휴가를 쓴 적이 없다), 위기를 맞든(2002한일월드컵, 2014년 세월호 침몰, 2015년 메르스 사태 등등) 극복하든 별로 내색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는 '골프여제' 박인비와 어떤 점에서는 비슷하다.

프로야구는 지난해 시즌 최다 관중(762만 2494명)을 기록했다. 1982년 출범 후 연간 최다 관중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비록 10개구단으로 팀수가 늘어 총 경기수가 많아진 측면이 있지만 5월부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실외 경기 모두 관중동원에 큰 타격을 면치 못한 것을 고려하면 의미있는 기록으로 꼽힌다. 최다 관중 기록에는 관계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땀방울이 스며있다. 경기장의 선수단과 심판, 열성 팬들의 성원과 경기장 인프라, 구단 프런트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프로야구를 국내 대표적 스포츠로 이끌어온 KBO사무국의 열정과 노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요즘에는 일주일에 몇 번이나 정상 퇴근을 하느냐"고 묻자 "한 번은 제 시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한다. 노력한다고 하니, 그 시간은 또 얼마나 지켜질까. 비시즌이지만 한 해 목표를 설정하고, 지난해 발생한 각종 문제나 계속 고쳐지지 않고 있는 과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해법을 찾다 보면 하루 해가 부족하다고 한다. 프로야구가 국내 최고 인기스포츠를 구가하는 데는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야구가 좋아 야구와 관계된 직업을 택했지만 경기장에 가면 한 번도 편하게 야구를 즐기지 못한다는 그와의 인터뷰는 점심을 겸해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연말연시의 최고 화제작인 tvN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이동휘(동룡)가 'MBC청룡' 재킷을 입고 나오는 장면을 보고 감회가 새로웠다고 하자, 드라마의 배경이 된 쌍문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서도 야구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드라마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에게 도대체 야구는 어떤 의미일까.

양해영 KBO 사무총장(왼쪽)이 박순규 더팩트 편집국장과 대담을 하고 있다./도곡동=문병희 기자
양해영 KBO 사무총장(왼쪽)이 박순규 더팩트 편집국장과 대담을 하고 있다./도곡동=문병희 기자

◆28년 프로야구 외길, 양 총장에게 야구란?

-양 총장의 인생 역정을 보면 야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느끼게 된다. 정식으로 선수 생활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렇게 야구를 인생의 전부로 삼았나? 야구는 양 총장에게 어떤 의미인가.

야구는 내 인생의 전부다. 종교도 없고 특별히 의지하는 대상도 없지만 묘한 운명 같은 게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위기를 겪을 때마다 야구로 힘을 얻었다. 야구와 멀어질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운도 좀 따랐다. 사주에도 어느 정도 야구가 들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어릴 때부터 사주 이야기 들었던 것을 돌이켜 보면 거의 맞는 것 같다.

-야구가 인생의 전부라고 했는데, 사실 잘 안 느껴진다.
인생 자체가 야구다. 야구를 처음 좋아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6살에 서울로 올라왔다. 삼양동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다. 당시 맹장염에 걸렸다. 배가 아파 아버지와 병원 두 군데 정도 가보고 수술 없이 항생제만 먹었다. 학교를 한 달 정도 쉬었다. 쉬는 중간에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는데 야구 경기를 하러 간다고 했다. 그래서 일어나 야구하러 갔다. 당시에는 동네에 공터가 많았다. 쉬는 동안에 야구를 많이 했다. 야구를 할 때는 배가 아픈 것도 몰랐다.(하하) 야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야구 명문 신일고에 진학하면서부터다. 박종훈 전 LG 감독이 3학년일 때였다. 야구는 학교에서 전국대회 8강부터 응원을 갔다. 다른 종목은 4강부터였다. 예선은 무조건 통과했다. 학교 생활이 정말 좋았다. 운동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요즘 학생들은 그런 측면에서 불행한것 같다.

(신일고 야구부는 75년 창단한 신일중 야구부에 심어놓은 싹을 키워 76년 한동화 창단 감독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시작했다. 신일중에서 뛰던 양승호(전 두산 감독) 박종훈(전 LG감독) 김남수(전 농협) 김경훈 등 강타자들과 투·타 모두에서 활약했던 고(故) 김정수(전 MBC) 등이 단숨에 '고교야구 스타'로 자리잡았다. 76년 창단 당시 고교야구 무대를 주름잡던 김용남(전 해태)의 군산상고와 최동원(전 롯데)의 경남고 사이를 비집고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마수걸이 우승을 하며 화려한 역사를 활짝 열었다. 2대 사령탑은 김성근 감독이다. 잠수함 투수 박철홍(전 LG)이 버티던 87년 황금사자기를 또 한번 잡은 뒤 조성민(요미우리)이 마운드를 지킨 91년 봉황기와 황금사자기 대회를 석권, 2관왕에 올랐다. 이후 김재현 조인성 조현 봉중근 등 숱한 스타를 배출하며 명문으로 자리잡았다.)

-신일고 야구에 대한 자부심이 꽤 강한 것 같다.
당연하다. 엄청 잘했다. 내 인생의 분기점이 되기도 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1978년) 한일 고교 교환 경기가 있었는데 우리학교 출신 6명이 대표로 뽑혔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는 황금사자기 예고 기사가 있었다. 제목을 '최강(最强)'도 아니고 '초강(超强) 신일고' 이랬던 기억이 있다. 최동원 김용남 등등 고등학교 선수들 라인업을 다 꿰찼다. 야구 경기가 있으면 집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라디오 들었다. 아나운서 흉내를 내면서 중계도 했다. 야구는 내게 운명이자 숙명이었다.

(신일고 출신 중에는 유명 야구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홍윤표 오센 대표, 신명철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등 야구 전문기자들도 많다.)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할 때도 사회인 야구 전지훈련에 참가했다는 얘기가 있다.
야구 명문 신일고에는 진짜 선수들 말고 반대항 야구 경기가 많아 '반 대표 선수'들도 많았다. 야구를 마음껏 했다. 졸업 후에는 고등학교 시절에 같이 야구를 한 친구들이 사회인 야구팀을 만들었다. 재수를 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찾아와 1년 내내 공부만 하느냐며 꼬드겼다. 일주일에 한 번이니까 머리도 식힐 겸해서 가입했다. 포지션은 중견수를 봤다.

-왜 재수는?
당시에는 대학 본고사가 있었다. 수학 채점을 하는데 한 문제가 틀렸다. 루트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맞았다고 생각했다. 경영학과를 지망했는데 가장 경쟁률이 셌다. 아마 채점자들이 답안지를 찬찬히 살펴 봤더라면 점수를 좀 얻었을 텐데(하하). 하지만 그게 결국 내 진로에 큰 영향을 줬다. 그 대학 경영학과에 합격을 했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있겠나.

-대학에서도 계속 야구를 한 것 같다. 야구 덕분에 결혼을 하게 됐다고 하던데.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에 진학했다. 당시 야구 서클(동아리)에 들어가 맨날 운동장에서 야구유니폼을 입고 운동을 하는 바람에 학과에서는 독어독문학이 부전공인 줄 아는 친구들도 있었다. 사실 아내를 만난 것도 야구 덕분이었다. 아내는 미술을 전공하는 회화과 학생이었는데 그쪽 실기실에는 난로가 없었다. 우리 서클에 속한 회화과 학생이 야구 서클룸에는 난로가 있다는 말을 한 모양이다. 그때 아내가 우리 서클룸에 놀러와서 만나게 됐다. 그래서 야구서클 가입을 유도했고 둘 다 야구를 좋아하는 인연으로 결혼까지 하게 됐다.

◆KBO 외길 28년?, 2년 외도?

-KBO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는?
야구를 좋아했지만 당시 KBO 입사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공채로 직원을 뽑은 적도 없고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신문기자나 공사(한전 등) 등을 생각했다. 국정원 시험도 봤다. 학교 성적이 워낙 안 좋았다. 당시에는 야구만 했다. 1학년부터 수업 시간에 불충실하니 우리 과 여학생들은 내가 체육과 학생인 줄 알았다. 맨날 운동장에 있었으니. '왜 체육과 애가 독어독문과를 부전공하지'라며 굉장히 의아해했다고 한다. 1988년 졸업 당시 내가 학과 취업 대표를 맡았다. 행정실에서 추천서가 오면 받아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게 KBO 추천서였다. 내가 먼저 집을 수는 없었고, 마지막에 남은 게 그거였으니 이 또한 운명이다.

 1988년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채 1기로 KBO에 입사한 양해영 사무총장(맨 왼쪽)은 2년의 잠깐 외도를 빼고는 프로야구와 영욕을 같이 하고 있다. 사진은 단장으로 출전한 지난해 '2015 WBSC 프리미어12'에서 초대 우승을 차지한 뒤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구본능 KBO총재/이새롬 기자
1988년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채 1기로 KBO에 입사한 양해영 사무총장(맨 왼쪽)은 2년의 잠깐 외도를 빼고는 프로야구와 영욕을 같이 하고 있다. 사진은 단장으로 출전한 지난해 '2015 WBSC 프리미어12'에서 초대 우승을 차지한 뒤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구본능 KBO총재/이새롬 기자

-KBO에 공채 1기로 들어왔다. 당시 경쟁률이 10대 1이었나.
도곡동에 야구회관을 짓고 프로야구 조직이 조금씩 커지면서 인력이 필요했다. 일반 공채를 한 것이 아니고 서울 주요 10개 대학교에 추전장을 보냈다.1988년 1월에 면접을 보러오라고 해서 우여곡절 끝에 면접을 보고 3월에 입사했다. 당시 면접관은 안의현 총무부장이었다. 추천장을 보낸 대학에서 한 명씩 면접을 보니 10명의 지원자가 생겼고 그 중에 나 혼자 합격했다.당시에는 통신 수단이 좋지 않았다. 낮에는 온통 야구를 하고 끝나면 친구들과 한잔 하고 그랬다. 원래 귀가 시간이 늦었다.

그런데 그날(면접 당일)따라 연습만 하고 집에 빨리 들어갔다. 어머니께서 야구 회관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빨리 면접보러 가라고해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뛰어갔다. 알고 보니 면접 통보를 했느데 집에서 전화를 못 받았다. 면접 통보를 연락하는 직원이 다시 해야했는데 깜빡하고 못했다. KBO에서 나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양해영)얘가 왜 안 왔냐'라고 하자 그 여직원이 솔직하게 깜빡했다고 한 모양이다. 전화를 다시 못 했다고 솔직히 말해서 다시 연락한 뒤 면접을 혼자 치렀다. 그날 마침 집에 일찍 들어가서 연락이 닿았다.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다.(하하)

양해영 총장의 28년 KBO 인생 중에는 위기도 있었다. 두 차례 직장암 수술을 받았으며 김기춘 KBO 총재를 만나 잠시 2년간의 뜻하지 않은 외도를 하기도 했다. 이 얘기는 <2>편에 계속된다.

sungro51@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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