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실 = 이성노 인턴기자]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야구계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프로야구 출범 30년 만에 600만 관중을 돌파한 지난해에는 여성 관중이 10명 가운데 4명에 이를 정도로 흥행몰이에 큰 몫을 했다. 다른 종목보다 어려운 경기 규칙과 긴 관람 시간 때문에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프로야구가 이제는 여성의 주요 문화생활로 자리를 잡았다. 연일 매진 사례를 이어 가고 있는 올해 야구장에서도 여성들의 응원 열기는 뜨겁다. 웬만한 남자들보다 더 깊은 야구 지식과 열정을 가진 여성 팬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더팩트>은 야구장 안팎에서 '야구에 사는 여자', 이른바 '야생녀'를 만나 그들의 뜨거운 '야구사랑'을 느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이번 주 '야생녀'의 주인공은 두산에 죽고 사는 남은지(25·서울 광진구)씨 와 이보림(25·서울 광진구)씨다. 27일 2013시즌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에서 만난 그들은 포스트시즌 기적의 드라마를 꿈꾸는 '미라클 두산'의 열렬한 팬이었다. 경기 시작 50분 전 야구장을 찾은 그들은 두산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지각이라도 한 학생처럼 분주하게 자리를 잡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순수한 외모와는 다르게 인터뷰가 시작하자 진지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두산 선수들의 연습장면에도 눈을 떼지 못한 그들이었다. 넘치는 긍정 에너지로 두산의 승리를 바라는 그들은 어느 야구팬 못지 않은 '야생녀'였다.
- 두산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이보림(이하 이) : 아버지가 오랜 베어스 팬이죠. 자연스럽게 OB 때부터 야구장을 찾았어요. 베어스 특유의 뚝심 있는 팀 색채가 마음에 들어서 1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됐어요. 야구 규칙은 선수 못지않게 알고 있고요.
남은지(이하 남) : 저희 아버지는 대학교 야구부 활동을 하셔서 저 또한 어려서부터 야구에 관심이 많았어요. 4년 전 처음으로 친구(이보림 씨)를 따라서 야구장에 왔을 때 두산 응원석에 앉았어요. 동시에 사회인 야구팀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두산과 야구에 푹 빠지게 됐죠. 이 친구와 두산 홈 경기가 있으면 급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함께 야구장을 찾아요.
- 야구장을 많이 찾으면 특별한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
이 : 넥센과 준플레이오프 3차전 때 일이에요. 당시 두산이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확정 짓는 순간 저도 모르게 바닥에 있던 음료수 잔을 발로 차버렸어요. 저희 좌석보다 세 칸 앞까지 음료수가 흘러내려 몇몇 사람들 가방과 옷이 젖었어요. 너무 죄송하고 민망한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그날 두산 팬들은 팬심으로 하나 되는 날이었어요. 모두 웃으며 이해해줬어요.(웃음)
남 : 저도 그 사건이 제일 머릿속에 남아요.(웃음)
- 10년 동안 8번 포스트시즌에 오른 두산이지만 우승이 없다. '가을 야구' 부진 원인은.
이 : 가장 큰 원인은 김현수 선수의 '비염'입니다.(웃음) 농담이고요, 언제나 두산을 우승후보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 선수들의 오기가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이번 포스트시즌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두산은 안된다고 예상했는데 이런 말들이 그동안 두산 선수들에게 없었던 '오기'를 끄집어냈다고 생각해요. 두산, 올 시즌 꼭 우승합니다!
남 : 친구 생각과 비슷해요. 다양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지금처럼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한 적이 없었어요. 그동안 두산 선수들이 가을 야구에서 실패하며 많은 경험이 쌓였다고 생각해요. 지난해까지 2% 부족했지만, 지금은 넥센과 LG를 이기면서 기량이나 정신적으로 최고의 위치에 올라섰다고 자신해요!
- '가을종박' 이종욱이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한데.
이 : 정규시즌에는 잘 뛰었는데 아무래도 나이 문제인 것 같아요. 올 시즌을 마치고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으니 남은 경기 힘내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FA 되셔도 남은 야구인생 두산에서 함께하길 바랄게요.
남 : 현재 다른 선수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어요. 지금은 잠시 부진해도 크게 걱정하진 않아요. 이종욱 선수는 워낙 잘하는 선수잖아요. 당장 눈앞에 좋은 성적은 못 내고 있지만, 팀에서 '기둥'과 같은 구실을 하기 때문에 존재만으로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웃음)
- 라이벌 LG 트윈스를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기분이 좋을 것 같은데.
이: 넥센과 준플레이오프 5차전까지 가면서 선수들이 매우 힘들 것으로 생각했어요. 라이벌 팀에 져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죠. LG를 이겨서 기분 좋았어요. 한국시리즈 진출이 확정된 날 선수들이 자랑스러웠어요. 그날만큼은 집에 들어가기 싫을 정도로 정말 기뻤어요.
남 : 일단 서울 라이벌팀과 경기에서 기대와 다르게 잘해줘서 좋았어요. 넥센과 5차전까지 가서 솔직히 힘든 경기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가볍게 꺾어줘서 기분이 짜릿했어요. 몇 년 동안 야구를 보면서 이런 순간을 함께해서 무척 영광스러웠어요.

- 우승까지 2승 남았는데.
이 : 잠실에서 끝냈으면 좋겠어요. 다시 대구 가게 되면 경기하는 선수들이나 원정 응원가는 팬들도 피곤하잖아요.(웃음) 원정에서 힘들게 2승하고 올라오신 두산 선수들 감사하고요. 남은 잠실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셔서 우승의 영광을 같이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남 : 준플레이오프부터 우승을 확신하고 있었어요. 두산은 기적처럼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여줬어요. 이제 유리한 홈구장에서 경기하는 만큼 안방에서 끝낼 것이라 믿습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 정수빈, 최재훈 선수 멋진 플레이 정말 감사합니다. 두산 베이스 화이팅!
- 한국시리즈에서 기대하는 선수 또는 좋아하는 선수는.
이 : 사실 포스트시즌 보면서 최재훈 선수에게 관심이 가지만, 김현수 선수를 가장 좋아해요. 포스트시즌에서 '한 방'이 안 터지고 있어서 아쉬워요. 남은 경기에서 몸 관리 잘하셔서 결정적 순간에 '멋진 한 방' 기대합니다.
남 : 사실 저는 이종욱 선수를 제일 좋아해요. 야구는 뛰어난 투수와 타자가 전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야수나 포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이종욱 선수가 부진하지만, '맏형' 역할을 충분히 하는 만큼 남은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종욱 선수 믿습니다!
- 본인에게 야구란.
이: '희로애락'이 담긴 인생 같아요. 보통 야구는 9회말 2아웃에도 알 수 없잖아요. 우리 인생도 언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야구장 와서 두산을 응원하면 때론 기쁘고, 슬프고, 가끔은 화나기도 해요. 이것이 우리 인생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남: '드라마' 같아요. 타 스포츠에 비해서 작은 요소에 뒤바뀌는 게 야구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두산과 넥센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 9회 말 2아웃에 박병호 선수가 홈런 쳤던 것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하잖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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