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연 인턴기자]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야구계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프로야구 출범 30년 만에 600만 관중을 돌파한 2011년에는 여성 관중이 10명 중 4명에 달할 정도로 흥행몰이에 큰 구실을 했다. 다른 종목보다 어려운 경기규칙과 긴 관람 시간을 이유로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프로야구가 이제는 여성의 핵심 문화생활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연일 매진 사례를 이어가고 있는 올해 야구장에서도 여성들의 응원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웬만한 남자들보다 더 깊은 야구 지식과 열정을 가진 여성팬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더팩트>은 야구장 안팎에서 '야구에 사는 여자', 이른바 '야생녀'를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만나 그들의 뜨거운 '야구 사랑'을 느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이번 주 '야생녀' 주인공은 서승오(28·대전 레이디스)다. 한국여자야구연맹 부평국화리그에서 뛰는 그는 투수는 물론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만능 선수'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프로야구 LG 트윈스에서 활약했던 서승화(34)의 친동생으로도 유명하다. "야구를 그만둔 오빠 대신 태극마크를 달아 못다 한 꿈을 이뤄주고 싶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서승오를 17일 인천에서 만났다. 야구와 오빠에 대한 생각, 앞으로 바라는 꿈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은 그는 "배우자마저 야구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겠다"며 야구에 죽고 야구에 사는 '진정한 야생녀'의 모습을 보였다.

◆ "LG 이대형 선수를 좋아해요. 만날 기회도 있었는데…"
- 야구장은 많이 찾는 편인가? 좋아하는 팀과 선수는?
예전에는 항상 갔어요. 하지만 프로야구장은 잘 안 찾고 오빠가 뛰는 경기장에만 갔죠. 초등학생때만 해도 그렇게 야구가 싫었어요. 아빠한테 혼날 때면 오빠가 집으로 가져온 야구 방망이 끝으로 종아리를 맞았거든요. 그래서 전 오빠가 야구하는 걸 되게 싫어했어요.(웃음) 제가 방망이를 버리면 오빠가 가져오고 버리면 또 가져오고.(웃음) 저 어릴때만 해도 천방지축이었어요. (현재 좋아하는 팀과 선수가 있나.)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팀은 없어요. 선수로 치면 LG 트윈스 이대형 선수를 좋아해요. KIA 타이거즈의 이용규 선수도 좋아하구요. (LG에서 뛰는 이대형 선수라면 직접 보기도 했을텐데.) 선수 가족끼리 모일 자리가 있었는데 오빠가 의외로 그런거 신경을 잘 안 써줘서 저는 안들어가고 밖에서 기다렸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쉽죠.(웃음)
- 야구 말고도 육상, 농구, 피겨스케이팅을 했다. 남다른 운동 감각의 비결이 뭔가?
음…. 비결이라기보다는 체격 조건도 좋고 몸이 받쳐주다 보니 자동으로 몸에서 반응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저 부모님께 감사하죠.(웃음) (대학교까지 농구 선수였는데 그만둔 이유가 있나.) 아빠의 심한 반대가 있었어요. 오빠에게 야구를 시키다 보니 운동 선수가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셨죠. 제가 농구를 할 때 여자 농구 지원이 열악하기 때문에 그만하라고 하셨어요. (아쉽지 않았나.) 처음엔 아쉬웠죠. 대학교 창단팀까지 들어갔다가 1년 만에 나왔어요. 아빠가 비전이 없다고 사회생활을 하라 조언해주셔서 그렇게 했죠. 하지만 현재 생활 체육으로 농구 심판도 보고 있고 직접 농구도 하고 있어요. 어떤 종목이라도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살면서 취미로 즐기면 된다고 생각해요.
- 야구 시작 후 공백 기간이 있었는데?
야구는 2008년 9월에 대전 레이디스에 입단하며 시작했어요. 하지만 1년 반가량을 부상으로 쉬면서 야구를 못했어요. 2011년 1월 피겨스케이팅을 배우다 무릎 수술을 했고 이후에도 회사에서 일하다가 머리에 뭐가 떨어져서 크게 다쳤어요. 약 1년 반의 공백 기간이 가졌죠. (1년 반, 상당히 긴 시간인데?) 네, 요양이 필요한 시기였어요. 정신과를 1년 동안 다닐 정도로 굉장히 힘들었죠. 밖에 나오기만 하면 머리에서 뭐가 떨어질까 봐 새 그림자만 봐도 놀랬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야구를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꼭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죠. 결국, 부상도 야구를 하면서 다 극복했어요.

◆ "오빠요?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웃음) 하지만 겁많고 여려요"
- 오빠와 남동생도 전·현 야구 선수다. 이런 배경이 야구 시작에 계기가 됐을까.
계기라기보다는 '보고 배운 것이 무섭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께서 오빠의 경기장을 따라다니셨어요. 저 역시 학교 끝나면 곧장 오빠가 경기하는 야구장으로 갔고요.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접하다 보니 익숙해진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생활 하면서 운동을 하려고 찾아봤는데 여자 소프트볼은 있는데 여자 야구는 없을까 하고 생각했죠. 솔직히 처음엔 많이 고민했어요. 당시 오빠가 현역에 있었고 남동생도 야구를 하고 있어서 조심스러웠어요. 어렸을 때부터 '서승화 동생'이라는 말이 꼬리말처럼 붙어서 정말 듣기 싫었는데 야구를 하면 또 이 얘기가 나올까봐 노심초사했죠. 정말 '인간 서승오'로 봐줬으면 좋겠는데…. 처음엔 신분도 속였는데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웃음) 나중에 들켜서 지금까지 온 거죠. 물론 좋은 점도 있어요. 야구에 대한 개인 지도도 가끔 받았거든요. 지금은 오빠와 남동생 승현(화순고 3학년)이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서 따로 받진 못하지만, 예전에 오빠한테 포크볼을 배웠어요. '이렇게 던지면 된다'고 했는데 이제 제 걸로 만들었죠.(웃음) 동생이 알려준 슬라이더는 아직 연습하고 있어요.
- '서승화 동생' 타이틀에 대해 많은 부담감이 있나 보다.
주위에 오빠에 대한 인식이 조금 좋지 않다 보니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안 좋게 바라 보는 분들이 많았어요. 좋게 보는 분보다는 나쁘게 바라보는 분들이 많아서 신경이 쓰인 게 사실이죠. 안타까운 일이에요. (동생으로 본 서승화는 어떤가?) 정말 안타까울 뿐이에요…. 겉으로 봤을 때는 솔직히 말하면 오빠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웃음) 욱하는 면이 있죠. 그 욱하는 성격이 승부욕이 있는 운동선수라면 어느 정도 다 있겠지만, 이걸 조절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같아요. 옆에서 가라앉혀 줘야 하는데 오빠는 집에서 장남이고 책임감이 정말 강하다보니…. 정말 경기에 대한 열정과 야구에 대해선 배포도 크고 의지도 강했죠. 집중력도 높고 워낙 자존심이 강해서 이미지가 나쁘게 굳어졌는데 옆에서 봤을 때는 그저 안타까워요. 사실 엄청나게 겁도 많아요. 집에 오면 '초딩'처럼 군것질도 좋아하고요.(웃음) 무서운 영화도 못 볼 정도로 마음이 여린 측면이 강한 그런 오빤데…. 안타깝죠.
- 2011년을 끝으로 오빠가 갑자기 현역 은퇴했다.
아직 오빠는 야구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어요. 서울에서 혼자 개인 훈련을 하고 있어요. 자주 연락은 안 하지만 연습하면서 사업 준비도 계속해요. 오빠가 무뚝뚝해서 물어봐도 대답을 잘 안 해주긴 해요.(웃음) 6살이라는 터울 때문에 어렸을 때는 오빠가 정말 무서웠어요.(웃음) 그래도 제겐 정말 좋은 오빠예요. (메이저리그행 얘기도 나왔던 '유망주' 오빠였다. 대신 이뤄주고 싶은 꿈이 있나?) 여자 야구도 국가대표가 있어요. 오빠도 동국대 재학 시절 국가대표를 했지만 저 역시 태극마크에 욕심이 많이 생겨요. 오빠도 말주변이 없는 건 아닌데 나이 차가 많이 나고 현재 따로 살다 보니 서로 얘기를 많이 나누진 못해요. 오빠 대신 이뤄지고 싶은 게 딱 떠오르진 않네요. 하지만 태극마크를 달면 오빠의 못 다한 꿈을 이뤄주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 "프로야구요? 부럽죠. 여자 야구에 절실한 게 지원이에요"
- 대중들의 여자 야구 인식이 높은 편은 아닌데?
맞아요. 정말 안타깝죠.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저희가 보기에도 어떤 게임은 박진감 넘치고 또 어떤 게임은 느슨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꾸준히 흥미를 주지 못하다 보니 관중 분들이 재미없어하는 거예요. 여자 야구에 대한 인식 자체도 그렇게 좋지 못하고요.
- 인기 많은 프로야구를 보면 부러운 생각도 들지 않나.
많이 들죠. 제가 전에 농구를 했었기 때문에 운동을 직업으로 삼는 게 꿈이었어요. 지금은 이렇게 사회인 야구를 하고 있지만, 프로야구 같은 경우에는 정말 제대로된 지원을 받고 스폰서도 많잖아요. 물론 저희 대전 레이디스 팀의 경우 다른 여자 야구팀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에요. 김근영 회장님과 김광수 단장님이 물심양면으로 힘써줘서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부담 없이 야구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전체적으로 보면 여자 야구에 대한 지원은 정말 부족한 부분이라 그저 아쉽죠.
- 선수로서 느끼는 현재 여자 야구에 가장 필요한 부분은.
지원이겠죠. 여자 야구에 대한 발전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에요. 지난해 처음 시행된 LG에서 후원한 전북 익산에서 열린 2012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가 기억에 남아요. 정말 든든하게 지원을 해주셔서 야구 하면서 마음 편히 편안하게 경기를 치렀어요. 매번 경기를 나가면 2주 만에 경기가 끝나고 그것도 녹다운제로 한번 지면 아예 경기 자체가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하지만 이 대회는 달랐어요. 한 번 져도 또 한 번 기회를 준다는 것이 그만큼 야구에 대한 열정을 더 강하게 한다는 걸 느꼈어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올해도 대회가 열려 기대가 커요.

◆ "배우자도 야구 좋아하는 사람 만날 거예요"
-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한다면.
저는 평생 운동만 해왔어요. 현재도 생계를 유지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죠. 배우자도 야구같이 운동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거예요. 미래의 자녀는 운동을 하는 건 반대하고 싶어요. 하지만 저처럼 정말 좋다면 생활 체육으로는 시키고 싶어요. 앞으로 꿈은 바로 최초의 여자 야구 해설자가 되는 거예요. (특별한 이유가.) 아직 여자가 야구 해설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꼭 도전하고 싶어요. 특별히 크게 준비하고 있는 건 없지만 매일 거울 앞에 서서 해설 연습을 하고 있어요.(웃음)
- 마지막으로 '야생녀'의 공식 질문! 당신에게 야구란?
제2의 심장이죠. 심장이 없으면 죽는 거처럼 어느 직장인이던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입니다. 몸보다도 마음이 힘든 게 사회생활인데 야구 하다 보면 이런 스트레스가 한방에 확 풀려요. 제겐 없어서는 안 될 심장과도 같은 존재죠. (야구의 진정한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제가 전 포지션을 다 들어가 봤는데 무지개가 일곱 빛깔이 나고 색마다 매력이 있듯이 야구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포지션을 들어가듯 그 포지션 마다의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야구에 대한 매력은 무지개인 것 같아요.(웃음)
◆ [영상] '여자야구 얼짱' 서승오 "얼짱이요? 제가 마르고…" (영상 = 조재형 기자, http://youtu.be/eKDUML4ad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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