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2016-2017 프로농구 시상식이 27일 열렸다. 포인트가드의 상징인 어시스트에서 1위를 한 전자랜드 박찬희가 포지션별 최고 선수를 뽑는 베스트 5에서 당연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KGC의 정규시즌 '우승'을 이끌었고 MVP를 놓고 경쟁한 가드 이정현과 센터 오세근도 포함됐다. 나머지 포워드 둘은 오리온의 이승현과 애런 헤인즈였다. 그만큼 오리온이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 4강에 직행한데는 이 둘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시상식 4일 전 KBL은 재정위원회를 열어 오리온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다. 지난 22일 KCC를 상대로 한 홈경기에서 핵심 주전선수들을 출전시키지 않는 등 불성실한 경기를 했다는 이유였다. 이승현과 헤인즈가 그 '핵심 주전선수'다. 문태종도 엔트리에서 빠져 있었다. KBL은 경기감독관, 경기모니터링위원, 비디오분석관 등의 보고서를 근거로 오리온이 규약 제 17조(최강 선수의 기용 및 최선의 경기)를 위반했다고 결론짓고 추일승 감독에게 견책 및 제재금 500만원을 부과하고 구단에는 경고조치를 내렸다.
재정위원회의 설명은 정규시즌 1,2위를 다투는 경기에서 핵심 주전선수를 부상 등의 이유로 출전시키지 않았고, 정규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D리그에서 뛰던 비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으며, 4쿼터에 외국인선수를 전혀 기용하지 않은 것이 규정을 명백히 위배되며 KBL 권익에 반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논란이 벌어졌다.
오리온의 해명은 헤인즈의 컨디션이 나빴고, 이승현과 문태종은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전혀 뛸 수 없는 상태였거나 아주 멀쩡했다면 논란 자체가 있을 수 없다. 오리온이 무리하지 않고 플레이오프에 대비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언론에서도 KBL의 징계 결정에 비판적인 시각이 없지 않았다. 선수 기용을 결정하는 감독의 권한에 개입했다는 이유다. 현실적으로 오리온이 선두 KGC를 따라잡을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감독은 플레이오프 대비라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상식에 참석한 한 여자프로농구 관계자는 "제도 개선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정규시즌 1위의 이점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여자프로농구는 1위팀만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하는 유리한 면이 있긴 하다.
KBL 구단의 관계자는 "감독에게 벌금이 아니라 경고를 주는 정도면 괜찮았을 것"이라며 "오리온보다 시즌 최종전에서 삼성에 대패한 모비스가 더 불성실했다"고 말했다.
오리온의 선택과 KBL의 결정에 대해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에 앞서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정규시즌 1위의 의미와 '팬덤'이다.
KBL이 '정규경기'라는 이상한 용어로 부르는 장기간의 레이스는 결코 '예선'이 아니다. 그래서 KBL뿐 아니라 단일리그이면서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패자를 모두 가리는 종목들은 통합우승이라는 말로 양쪽 모두에 의미를 둔다. 그러나 결국 챔피언결정전의 승자가 챔피언이다. 지난 시즌 오리온은 3위에 그쳤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1위 KCC를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54경기를 치르며 1위가 되는 것은 통합우승을 위한 필요조건이고 6강전 면제라는 이점을 얻기 위한 것일 뿐인가?
스포츠 팀의 팬은 일종의 추종자다. 진정한 팬은 승패나 성적 때문에 팀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기지 못하고 우승하지 못하는 팀을 바라보면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승을 위한 패배를 용납할 수 있을까.
팬의 처지에서 선수들의 부상이 걱정되고, 장기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원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보고 있는 우리 팀의 경기가 전략적 선택의 대상이 되었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감독은 나중의 중요한 승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면서도 팬들을 위해 모든 경기에 총력전을 펼쳐야 할까? 그것이 정말 팬을 위한 것인가? 판단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최강 선수의 기용과 최선의 경기'라는 규정이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없어 적용 범위가 모호하다는 주장이 있다. 규정은 그것을 지켜야 하는 팀들과 선수들의 '선의'를 기대하며 만든 것이 아니다.
구단과 감독은 팀과 팬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리그도 팬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감독과 선수들은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 리그는 그들이 혹시라도 자신들만의 승부에 몰입하는 일이 없도록 예방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모순과 딜레마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오리온과 추일승 감독은 억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한다. 승부조작 파문 때 모든 구단과 선수들이 고개를 숙이며 정정당당하고 최선을 다한 승부를 다짐했던 일을 되새길 때다. 스스로 떳떳해서만 되는 일은 아닌 것이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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