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인천 = 김광연 기자] 무한 질주가 멈췄다. 미소를 잃지 않았으나 그간 '박태환의 한국 수영'으로 대변된 서글픈 현실이 비췄다. 이제는 '한국 수영의 박태환'이 필요하다.
'마린 보이' 박태환(26)이 역사가 됐다. 박태환은 26일 문학박태환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경영 마지막날 남자 혼계영 400m 결선에서 박선관(23·대전시체육회), 최규웅(24·부산중구청), 장규철(22·한양대)과 짝을 이뤄 3분 39초 18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땄다. 중국(3분 31초 37), 일본(3분 31초 70)에 이어 세 번째로 들어온 박태환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직전 박태환은 경영 남자 자유형 1500m 결선에서 중국의 쑨양(23·14분 49초 75)과 일본의 야마모토 고헤이(23·14분 54초 86), 왕커청(18·15분 06초 73)에 이어 15분 12초 15의 기록으로 네 번째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계속된 강행군에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자신을 보러온 팬에게 더 많은 경기를 보이겠다던 그다. 얇은 선수층을 혼자 메우기엔 너무 벅찼다.
혼계영 400m 동메달은 박태환에게 한국인 아시안게임 통산 최다 메달 기록(20개)를 안겼다. 박태환은 2006 도하 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휩쓴 뒤 역사를 이뤘다. 한 선수가 아시안게임에서 20개의 메달을 따낸 자체는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한 개도 힘든 메달을 혼자 힘으로 20개나 일궈냈다. 냉정히 말하면 한국 수영이 처한 서글픈 현실이다. 박태환을 뛰어 넘을 선수가 없다. 불행히도 박태환의 탄생은 국제대회에 나설 경쟁력 있는 이가 나오지 않은 시기와 겹친다. 어쩌다 '개천에서 용난 것'은 좋다고 10년 가까이 마냥 지켜봤다. 한국 수영의 박태환이 아닌 박태환의 한국 수영이 된 이유다.
온 국민의 관심을 등에 업은 박태환은 엄청난 부담에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과 자유형 200m 은메달의 쾌거를 이뤘다. 철저한 엘리트 위주의 체육 정책으로 기초 종목에서 유독 약했던 한국 체육에 길이 남을 역사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육상, 수영 등에게 절대 올림픽 금메달이 나올 수 없다던 한국 체육계는 박태환에게 아낌 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후에도 박태환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에 올랐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2012 런던 올림픽 수영 남자 200m와 400m에서 연속 은메달을 따자 메인스폰서였던 SK 텔레콤이 곁을 떠났다. 수학 강사인 우형철 씨가 운영하는 SJR기획이 지난해 2년간 10억 원을 후원했지만 이마저도 지난 7월 회사 사정으로 지원이 중단됐다. 위기의 순간이다.
'맞수' 쑨양이 든든한 스폰서의 지원 아래 수영에 전념할 때 박태환은 자비로 지난해 1월 호주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2012년 전까지 수영에만 집중하며 메달을 수집한 박태환에게도 낯선 현실이었다. 수영에만 힘을 쏟아야 했으나 실상은 냉혹했다. '전성기'의 박태환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던 기업들은 상품 가치가 떨어지자 거들떠보지 않았다. 철저한 이윤을 목표로 하는 기업 윤리를 제대로 느낀 박태환이다. 기업을 무조건 비판할 순 없으나 짐이 더 무거워진 박태환은 운동에 집중할 수 없었다. 비정상적인 기초 종목 육성이 만든 웃지 못할 일이다.
제대로 된 지원도 없었지만 여전히 박태환에 목을 메는 게 지금 한국 수영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번 대회 은메달을 따도 박태환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를 연발했다. 여전히 자신을 향하고 있는 '기대'를 잘 알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대에 보답할 수 있는 선수가 자신밖에 없는 현실에 맞서 싸우고 있다. 외롭고 힘든 시간이다. 계속 '희망'이 되기엔 그간 박태환이 쏟아부은 정열과 힘이 너무 크다. 할만큼 했다. 이젠 놓아줘야 할 때다. 혼자서 한국 수영 모두를 책임질 수 없다. 7개 종목에 출전하며 체중 7kg가 감량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리고 한국 수영의 대들보에서 한국 수영의 역사가 됐다. 존재 자체로 빛난다. 박태환의 한국 수영이 아닌 한국 수영의 박태환으로도 충분히 '잘 했다'고 박수 쳐주며 어깨를 토닥여줄 수 있다. 박태환은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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