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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스포츠 뒤집기]한국 기자가 북한 선수 은퇴 기사를 특종 한 사연

  • 스포츠 | 2014-09-19 12:26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참석을 위해 지난 11일 북한 선수단 선발대와 함께 입국한 북한 기자단은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 인천국제공항=김슬기 기자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참석을 위해 지난 11일 북한 선수단 선발대와 함께 입국한 북한 기자단은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 인천국제공항=김슬기 기자

한국 기자가 국제 대회에서 북한 기자를 만나면 법에 저촉될까?

지난 17일 여러 매체의 보도 내용에 따르면 한국 기자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입국한 북한 취재진과 우연히 접촉하더라도 법 위반 소지가 없다고 한다. 다만 장소와 시간을 지정해 북한 기자와 만나면 법에 저촉된다고 한다.

기사에는 현행 남북 교류 협력에 관한 법률 제 9조의 2(남북한 주민 접촉)는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하려면 통일부 장관에게 미리 신고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접촉한 후에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한국 기자들이 국제 대회에서 북한 스포츠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는 등 취재한 뒤에 일일이 관계 당국에 신고할까?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글쓴이는 남과 북에서 모두 특종이 될 만한 기사를 썼다. 특종이 될 만한 기사를 작성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대회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던 8월 7일 바르셀로나체육대학 레슬링 경기장 앞 잔디밭에 여러 나라 기자들과 오전 경기를 마친 각국 선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메인 프레스 센터와 선수촌으로 가는 순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술 냄새가 솔솔 풍겨 왔다. ‘웬 술 냄새인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북한 선수 몇 명과 코치가 있었다. 오전에 벌어진 자유형 57kg급 3위 결정전에서 이긴 김영식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아, 그렇습네까. 반갑습네다. 앉으시라요.” 북한 코치가 앉을 자리를 권하며 반갑게 맞았다. “이번 대회에서 북 쪽 성적이 비교적 좋네요. 축하합니다(북한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와 동메달 5개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8개 동메달 11개의 일본에 한 단계 앞선 종합 순위 16위에 올랐는데 레슬링에서 금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그런데 웬 술 냄새입니까.” “술 냄새가 납네까. 죄송합네다. 제가 어제 조금 많이 마신 것 같습네다. 죄송합네다.” 코치 옆에 앉아 있던 김영식이 머리를 주억거리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지금까지 술이 깨지 않을 정도로 마셨다면 꽤 많이 마셨을 텐데.” 이때부터 김영식의 하소연이 시작됐다.

숙취(宿醉) 사연에 앞서 김영식의 선수 경력을 소개한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48kg급 금메달리스트인 김일과 함께 1990년대를 앞뒤로 북한 레슬링 자유형의 간판 선수로 활약한 김영식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전까지 1986년 세계선수권대회 1위, 1987년 세계선수권대회 2위(이상 52kg급), 1989년 세계선수권대회 1위(57kg급),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1위(52kg급) 등 52kg급과 57kg급을 오가며 세계 무대를 휩쓸었다.

김영식으로서는 전성기인 1988년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린 게 무척이나 아쉬웠을 것이다. 국제 무대 성적은 화려했지만 올림픽 메달이 없었던 김영식은 바르셀로나에서 자신의 모든 기량을 다해 금메달을 따고 싶었다. 김영식은 평양에서 출발할 때 애인에게 굳게 약속했단다. “꼭 금메달을 따서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김영식의 애인은 평양 시내에 쓸 만한 살림집을 마련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 꿈에 부풀어 있었을 터.

여자 유도의 계순희, 여자 마라톤의 정성옥, 여자 탁구의 리분희 등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해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은 후배 선수들보다 먼저 인민체육인이 될 만한 실력을 갖춘 김영식이었다. 김영식의 애인은 김영식이 평양을 떠나올 때 짐 꾸러미 깊숙이 뭔가를 집어넣었다. 조금씩 마시고 힘을 내 금메달을 따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애인이 넣어 준 건 뱀술이었다.

대회가 시작됐다. 컨디션도 좋았고 수분 조절(체중 조절)도 비교적 순조로웠다. 그러나 김영식의 금메달 꿈은 조 편성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레슬링 강국인 독립국가연합(EUN·옛 소련)의 세르게이 즈말과 한 조가 됐고 조별 리그에서 즈말에게 2-4로 져 조 2위가 돼 3위 결정전으로 밀려났다.

즈말에게 진 뒤 선수촌으로 돌아왔으나 경기 장면이 자꾸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밤새 뱀술 한 병을 몽땅 마셔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술 냄새를 풍기며 매트에 올랐다. 터키의 렘지 무사오글루는 고약한 술 냄새가 역겨웠는지 슬슬 꽁무니를 빼다 2-3으로 졌다.

“나이가 꽤 됐지요. 운동을 계속할 건가요.” “아니오, 이젠 그만둬야겠시요. 평양에 돌아가면 지도원 공부를 할까 합네다.” 올림픽 동메달을 마지막으로 김영식은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메인 프레스 센터로 돌아온 글쓴이는 ‘북한 레슬링 강자 김영식 은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곧바로 서울로 송고했다. 따지고 보면 이 기사가 북한 주민 접촉 사후 신고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19일 막을 올린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그렇게 되겠지만 올림픽 등 국제종합경기대회에서는 기자와 경기 단체 관계자 등 사이에 자연스럽게 대규모로 남북 접촉이 이뤄진다. 남북 교류의 좋은 마당이다. 접촉 사후 신고서를 받는다고 하면 A4 용지로 몇 박스가 될지도 모른다. 한국 기자들이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북한 취재진을 만나면 법에 저촉되는지 여부가 기사화된 건 최근 경색된 남북 관계를 반영한 듯하다.

바라건대 인천 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해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 2017년 FIFA(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남자 월드컵(북한이 아시아 지역 예선을 통과할 경우), 2018년 평창 겨울철 올림픽 등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는 물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등 국외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에서 후배 기자들이 글쓴이처럼 북한 스포츠 관련 특종 기사를 쓸 수 있었으면 한다.

더팩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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