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개봉한 장동건 주연의 영화 '마이 웨이'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소련군~독일군으로 군복을 갈아입는 기구한 운명의 조선인 청년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연합군에 포로로 잡힌 동양인 얼굴의 독일군과 관련한 얘기는 2000년대 중반 잠시 발간됐던 무료 신문 '굿모닝 서울'에 발굴 특종 기사로 실린 적이 있다. 이 얘기에 마라톤이라는 요소를 넣고 '마이 웨이'라는 제목을 붙였으니 1970년대에 청년 시절을 보낸 영화 팬들에게는 다소 혼잡한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다.
1975년 개봉한 외화 '마이 웨이'는 주제가 가족 이야기이지만 마라톤을 집어넣어 제작한 휴먼 드라마다. 원제는 '위너(winner)'인데 영화 엔딩에 그 유명한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가 흘러 국내 개봉을 하면서 제목을 바꿨다는 일화가 있다. 글쓴이는 이 영화 때문에 꽤 오랫동안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들으면 마라톤을 뛰는 장면을 떠올리곤 했다.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에서는 연합군과 독일군, 소련군과 일본군의 전투 장면이 그려진다. 전투 장면에는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탱크(전차)가 예외 없이 등장한다. 물론 독일 전차도 나온다. 독일은 제 2차 세계대전 직전 폴란드를 전격적으로 침공할 때 전차를 앞세웠다. 이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영국군 전차와 동부전선에서는 소련군 전차와 치열한 탱크전을 전개하는 등 제 2차 세계대전 기간 내내 끊임없이 전차 성능을 개선하며 연합국 전차들과 맞섰다. 전쟁광 아돌프 히틀러가 끌고 간 나치 정권의 독일은 패망했지만 우수한 엔진을 탑재한 독일 전차는 제 2차 세계대전 기간 내내 연합군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평화 시대의 독일은 '전차군단'의 경기력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려 통산 4번째 월드컵 우승을 했고 20년 만에 국제축구연맹 랭킹 정상에 우뚝 섰다. 2014년 현재 축구 최강국은 브라질도 아니고 스페인도 아니고 독일이다. 이 과정에서 독일은 1970년대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던 브라질을 7-1로 무너뜨렸다. 월드컵 축구 대회가 지속되는 한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경기를 독일이 펼쳤다. 가공할 '전차군단'의 경기력에 전 세계 축구 팬이 깜짝 놀랐다. 진짜 탱크인가 싶을 정도로.
1900년 축구협회를 결성하고 1908년 바젤에서 스위스와 첫 A매치를 치렀으니 독일 축구의 유구한 역사는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후 1938년 제 2회 월드컵(이탈리아) 3위를 시작으로 2014년 제 20회 월드컵(브라질) 1위까지 독일이 거둔 성적도 그 어느 나라와 견주기 어렵다.
독일하면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혈통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못된 유산인데 게르만 민족의 혈통주의는 1960년대 앤서니 퀸 주연의 영화 ‘25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2014년 월드컵에 나선 독일 대표팀에는 얼핏 봐도 게르만 민족의 성(姓)를 갖고 있지 않은 선수가 여럿 있다.
제롬 보아텡은 가나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베를린이 고향이고 17세 19세 21세 등 연령대별 대표를 거쳤으니 사실상 독일 선수지만 이른바 ‘순혈’은 아니다. 비슷한 사례로 사미 케디라가 있다. 케디라는 튀니지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슈트트가르트에서 출생했고 17세 21세 독일 대표로 뛰었다. 전쟁과 인종 우월주의로 광분하던 1940년대, 그리고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 꿈도 꾸지 못했을 혼혈 선수가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메수트 외칠은 우리로 치면 재일동포 3세 같은 신분이다. 외칠의 조부모는 터키 서북부 지역인 데브레크 출신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서독이 경제 부흥을 할 때 많은 터키인이 이주했고 그 후손들이 독일에 살고 있다. 독일 인구가 8천만 명 정도인데 외국인 가운데 가장 많은 2.4% 가량이 터키계다. 외칠은 겔센키르헨에서 태어나 19세 21세 독일 대표 를 거쳤으니 그를 터키인으로 보는 독일인은 많지 않을 듯하다.
루카스 포돌스키와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폴란드계다. 두 선수 모두 부모가 폴란드인이지만 클로제의 부모는 폴란드 거주 독일계 주민이었으니까 독일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포돌스키도 두 살 때인 1987년 서독으로 가족 이민을 했고 스스로 독일을 선택해 17세 18세 19세 21세 대표팀을 거쳤으니 사실상 독일인이다.
토니 크로스는 통일 직전인 1990년 동독 그라이프발트에서 태어났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크루스는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동독은 1974년 서독 대회 때 딱 한번 본선에 나섰다.
신형 '전차군단'이 초고성능을 발휘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위에 있는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순혈'을 고집하지 않은 것도 포함될 수 있다. 이 사례들은 탁구, 농구 대표팀에 뽑히고 있는 귀화 선수와 미래의 어느 날 만나 게 될 북한 지역 선수를 비롯해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나 쑥쑥 자라고 있는 아이 등 한국의 현실과 많이 닮아 있다. 2020년대 한국 축구 대표팀에도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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