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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인터뷰] 허정무 감독 "유학 경험, 한국 축구 위해 쓰겠다!"

  • 스포츠 | 2014-12-07 07:30

허정무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지난달 28일 서래마을의 한 커피숍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 서래마을 = 이새롬 기자
허정무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지난달 28일 서래마을의 한 커피숍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 서래마을 =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서래마을 = 김광연 기자] 허정무(59)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게 2014년은 불명예스러운 한 해였다. 단장으로 축구 국가 대표팀을 이끌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졸전 끝에 조별 리그 1무 2패에 그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렸다. '축피아' 논란이 거세진 가운데 지난 7월 부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야인이 됐지만, 한국 축구를 향한 허 전 부회장의 노력은 끝나지 않았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을 사상 첫 원정 16강으로 이끈 저력은 바로 끝없는 축구 공부에 있었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끊이지 않는 축구를 향한 갈망을 보였다. 허 전 부회장은 지난 9월 답답한 한국 축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 독일로 약 두 달간 축구 연수를 떠났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치열하게 갈고 닦은 독일 축구 저력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

허 전 부회장은 "브라질 월드컵 실패는 준비 부족에 있다. 선수들도 체력적으로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하지만 "저와 함께 사퇴한 홍명보(45) 전 대표팀 감독이 한국 축구의 자산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월드컵 실패로 소중한 경험이다. 책임만 요구한다면 시행착오만 반복할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롭게 출항한 슈틸리케 호에 대해서도 "상대의 전략에 따라 전술을 달리해야 한다. 현대 축구 흐름을 따라야 한다"고 냉정하게 평가하면서도 다음 해 1월 호주에서 열리는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대해선 "우승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더팩트>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의 한 커피숍에서 브라질 월드컵 이후 자취를 감췄던 허 전 부회장과 만나 말하지 못했던 월드컵 소회, 독일 축구에서 찾은 한국 축구의 개선 점, 슈틸리케호 전망, 앞으로 계획 등에 대해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허 전 부회장은 한국의 브라질 월드컵 실패 원인으로 준비 부족을 꼽았다.
허 전 부회장은 한국의 브라질 월드컵 실패 원인으로 준비 부족을 꼽았다.

◆ 韓, 브라질 월드컵 실패 원인 "준비 부족했다"

- 브라질 월드컵 부진으로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직을 내놨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도 사퇴했다.


참 아쉬웠다. 옆에서 지켜보니까 더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홍명보(45) 전 대표팀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커 나가야 할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홍 감독뿐만 아니라 황선홍(46) 포항 스틸러스 감독 등 여러 젊은 감독도 마찬가지다. 홍 감독은 2012 런던 올림픽, 2009 이집트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좋은 지도력을 보였다. 월드컵에서 실패했지만, 누구보다 어마어마한 공부를 했을 것이다. 물론 본인이 얼마만큼 이를 받아들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월드컵이란 최고의 무대에 감독으로 나갔다. 이러한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귀중한 자산이다. 한번 실패했다고 내쳐버린다?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항간에 왜 내가 홍 감독을 싸고도느냐는 말도 나왔다고 들었다. 한 개인을 싸고돈 게 아니다. 앞으로 또 귀중한 자산을 얻기 위해서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것인가. 계속 실험만 하다가 끝날 거라는 말이다. 처음에 협회 차원에서 월드컵과 상관없이 홍 감독 체제로 계속 간다고 했다가 여론에 밀려 사퇴했지만 제발 조금만 신중했으면 한다. 소중한 자산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실패로 많은 경험을 했다. 나 말고 그런 원로들도 있다. 최대한 활용했으면 한다. 지금 젊은 감독들도 나중에 한번 실패하면 또 그렇게 될 텐데. 경험으로 쌓아올린 비법은 엄청난 자산인데 너무 쉽게 버리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 이번 월드컵 대표팀을 이끈 단장으로서 가장 큰 실패 요인이 뭐라고 보나

월드컵 직전 열린 가나 평가전 때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준비 상황이나 선수 상태를 봤더니 상당히 안 좋았다. 체력에서 준비가 안 됐다. 너무 뒤떨어졌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전임자로서 큰 경기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홍명보호는 월드컵이란 큰 무대를 준비하는 게 부족했다. 잘하기 위해선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모두가 각성해야 한다. 세 게임을 분석해 보면 결과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기술, 전술, 정신적인 측면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체력이 안 됐다. 그 이유는 다 나온다. 국외파가 많은 구성에서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가 2~3명에 불과했다. 한 달 정도 체력적으로 충분히 준비해야 했다. 상대 팀 정보, 경기 대비도 많이 부족했다.

- 월드컵 이후 대표팀 내 관계자에 대한 책임론이 거셌지만, 곧바로 사퇴하지 않았는데

여론이란 참 무섭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협회 차원에서 나라도 져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처음에 협회에 들어갈 때부터 언제든지 책임지려는 마음이 있었다. 대표팀 단장이라고 하지만 며칠 전에야 통보받고 갑작스럽게 출발했다. 이리저리 조언하면 대표팀에 간섭한다고 욕먹으니 멀리서 편하게 해주려고 했다. 그게 내 임무라고 생각했다. 월드컵 이후 돌아가는 상황 자체가 뭐 누군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하겠더라.

- 월드컵 이후 홍 감독 땅 투기 논란과 대표팀 회식 논란이 거세지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여론이 원하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홍명보 감독도 기자회견 전날 '더는 안 되겠다'고 했다. 나도 홍 감독 사태 당일 부회장을 내놓았지만, 전날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전에도 책임져야 하면 책임져야 하지 않나. 나중에 땅 투기 논란과 회식 사건이 나왔는데 냉정하게 따져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국 국민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회식 사건도 마찬가지다. 월드컵을 뛰면서 누구보다 허탈한 건 감독과 선수단이다. 원정 첫 16강에 올랐던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논란이 터진 날은 바로 다음 날이 출국 일이었다. 언론에 나온 회식 동영상을 봤는데 솔직히 아무것도 아니었다. 관광지다 보니까 밴드가 있었다. 그때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코치진이 선수단에 당연히 맥주라도 권했을 거로 생각한다. 맥주 한 잔 못할 이유 없다. 조별 리그 탈락으로 허탈한 마음이었다. 이런 마음을 풀고 귀국하는 건 그냥 돌아오는 것과 천지 차이다. 술로 만취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 브라질 월드컵에서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조별 리그 3경기 모두가 아쉽다. 러시아전은 남들이 잘했다고 하지만 나는 아니다. 이날 러시아는 정말 못했다. 우리가 무조건 잡아야 했다. 그래야 16강에 갈 수 있었다. 한국의 브라질 월드컵 조 편성은 누가 뭐래도 역대 최고였다. 북아프리카팀인 알제리는 약간 중동 색의 축구를 한다. 기술이 좋고 체력적으로 나이지리아, 카메룬보다 뒤떨어진다. 우리는 이에 대한 대비를 전혀 못했다. 알제리는 기술적으로 놔두면 우리가 당한다. 너무 쉽게 자유롭게 경기하게 내버려두며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알제리에 대한 전략과 평가가 잘못됐다. 벨기에전도 우리가 힘들지 모르지만 지지 않을 정도로 갈 수 있었다. 상대 한 명이 퇴장당하며 상황이 좋았다. 2-0으로 이기면 16강 진출도 가능했다. 하지만 3경기 모두 체력이 안 됐다. 상대가 지쳐 있는데 우리가 못 뛴다. 알제리전에서 0-3으로 뒤지고 후반 분위기 올라올 시점에 뚝 떨어졌다. 후반 10~15분 정도였다. 벨기에전도 1명 퇴장당해서 좋은 기회인데 후반 10분 지나니까 뚝뚝 떨어졌다. 선수들 체력이 문제다. 결국 농락당했다.

- 홍 감독은 U-20 월드컵과 런던 올림픽 제자들을 중용하며 '의리 축구' 논란을 낳았다. 논란 끝에 명단에 포함된 박주영, 윤석영 등이 월드컵에서 부진하며 비판이 가중됐다.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고 전술적인 측면이다. 누구도 이야기할 수 없다. 감독이 정하는 것이다. 홍 감독이 박주영(29·알 샤밥)을 선택한 것은 당연했다. 어쩔 수 없다. 스트라이커가 누가 있었나. 없다. 김신욱(26·울산)이 잘했지만 2경기로 평가할 게 아니라 경기 흐름이라는 것은 순식간에 바뀐다.

먼저 우리 특징을 못 살린 이야기를 해야겠다. 우리 특징을 내세워 전술적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전혀 못했다. 체력과 세트피스에서 전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공격 전개 속도가 너무 느렸다. 전술적인 문제라 말하기 민감하지만, 한국은 빠른 공격만이 살길이다. 그래야 골을 넣을 수 있다. 세계 강팀이 아닌 이상 상대가 모두 수비를 갖춘 상황에서 골 넣기가 힘들다. 상대가 정비되기 전 골을 넣어야 하는데 그런 점이 가장 아쉽다. 그래야 박주영도 산다. 박주영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원톱이고 외롭다. 주위에 스피드가 좋은 손흥민, 이청용이 있고 활용 가능성이 있었다. 박주영이 공간으로 빠져들거나 2대1 패스를 해야 진가가 나오는데 역습 찬스에서도 공 소유 시간은 길었다. 이미 상대 수비는 모두 정리가 됐다. 박주영이 갈 데가 없었다. 나와서 받을 수밖에 없고 백패스와 횡패스밖에 할 수 없었다. 박주영이 가진 장점을 살리기 힘들었고 본인도 찬스 잡기가 쉽지 않았다.

독일에서 뛰는 유럽파를 만난 허 전 부회장은 그들에게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독일에서 뛰는 유럽파를 만난 허 전 부회장은 그들에게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 손흥민, 메시-호날두에 가까이 가는 도전 정신 필요해

-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여러 국외파를 만났다.

지동원(23·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은 부상인데 스스로 위기를 넘어야 한다. 손흥민(22·레버쿠젠)은 더 잘했으면 좋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오넬 메시(27·FC 바르셀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레알 마드리드), 네이마르 다 실바(22·FC 바르셀로나)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구자철(25), 박주호(27·이상 마인츠 05)도 열심히 하고 있다. 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는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 아우크스부르크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기량만 보면 지금 도르트문트나 바이에른 뮌헨에서 뛸 선수라고 하더라.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상도 많고 체력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했다.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계속 도전해야 한다.

- 유럽파 선배로 따로 주문할 게 있나.

성격적인 부분에서 주문할 게 있다. 마인츠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구자철의 성격이 참 좋다고 했다. 적극적이고 소통하려고 한다. 구자철, 손흥민은 예전부터 봤지만, 성격이 참 좋다, 먼저 다가서려고 한다. 이번에 독일에서 홍정호가 훈련하는 걸 봤다. 묵묵히 훈련만 하길래 따로 불러 조언을 해줬다. 훈련 내내 말 한마디 안 하고 묵묵하게 하는데 그건 아니다. 때론 소리 지르면서 동료에게 요구도 하고 격려도 해야 한다. 유럽에서 성공한 박지성(33), 이영표(37), 기성용(25·스완지 시티), 이청용(26·볼턴 원더러스) 모두 다 밝고 적극적이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사고하는 게 필요하다. 오랜 경험으로 비췄을 때 이런 점을 많이 느낀다. 모두 한국 축구의 미래다. 유럽파 선배로서 그때보다 엄청나게 환경이 좋아졌다. 하늘과 땅이다. 부럽다. 그때는 에이전트는 물론 통역조차 없었다. 사람이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다. 선수는 나이에 한계가 있다. 노력을 멈추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 축구인으로서 요즘 국내 심판 판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처럼 A, B코스 나누는 것도 좋은데 그거만 나누면 뭐하나. 진정한 교육으로 자격을 줘야 한다. 잘할 수 있는 사후 관리가 중요하다. 독일은 우리처럼 심판 자격만 내주는 게 아니다. 자격을 주는데 심판 관리가 장난이 아니다. 심판 문제는 좀 민감한데 심판이 노력하고 잘 볼 수밖에 없는 부분으로 관리하더라. 심판은 경기를 매끄럽게 이어나갈 책임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나 구단 관계자 팬의 지원도 있어야 한다. 심판 판정이 미흡해도 절대복종해야 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불신이다. 뭔가 의혹만 있다. 함께 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심판도 각성해야 한다. 지금 축구 문화론 팬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23일 열린 2014 하나은행 FA컵을 봐라. 현장에서 보는데 누워있고 중단되고 끄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문득 생각이 들더라. 우리나라 국민성을 보면 경기가 재밌으면 축구를 좋아할 수 있다. 월드컵 때 열광하고 유럽 리그를 밤새서 본다. 경기가 재밌으니까. 우리 축구가 재밌어지려면 선수, 구단, 심판, 관계자 모두 노력해야 한다. 불신보다는 함께 발전해 나가야 한다.

- K리그는 아직도 시스템상으로 오락가락한다.

K리그 클래식 수를 줄였다. 왜 줄이나. 그거부터 안타깝다. 더 늘려도 시원찮을 판인데. 승강제 때문에 줄인 건데 너무 적다. 한 팀 늘리기가 힘든데 줄인 건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늘려야 한다. 개인적으로 스플릿 시스템보다도 플레이오프가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팬들 때문이다. 6위가 우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정상적인 시스템이다. 팬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다면 그래도 해야 한다. 팬의 흥미를 끌어들이는 게 최우선으로 되어야 한다. 다른 환경과 맞지 않지만, 우리 실정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 거스 히딩크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과 함께 축구 관련 자선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거스 히딩크(68) 감독은 우리나라에 영향을 많이 끼친 분이다. 우리나라를 위해 긍정적으로 나서는 데 나쁘지 않다. 어린 축구 선수들은 꿈을 먹고 산다. 꿈이 있어야 그걸 목표로 할 수 있다. 꿈도 주고 사회적인 면에서 축구에 대한 이해도 바꿀 수 있다. 같은 축구인으로 함께 원래부터 관계가 없다고 해도 서로 도와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허 전 부회장은 다음 해 1월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슈틸리케호가 우승에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전 부회장은 다음 해 1월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슈틸리케호가 우승에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슈틸리케호, 아시안컵 우승 아니면 다른 선택 없어

- 슈틸리케 호가 새롭게 출항했다.

지난달 열린 이란 원정 경기와 지난 10월 열린 코스타리카전을 봤다. 아직 강한 팀과 해본 적이 없다. 평가하긴 힘들다. 코스타리카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게 뭔가. 바로 상대의 빠른 공격에 당했다. 공 소유가 중요하지만, 그 안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 강팀은 기술이 좋고 정교해 미드필드에서 공을 소유해도 곧바로 2선 침투로 골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떨어진다. (공 소유를 길게 하라는 게 슈틸리케 축구 철학인데.) 약한 팀에선 가능한데 상대가 강할 땐 수정해야 할 부분이다. 상대가 강할 땐 공을 계속 소유하기 불가능하다. 우리 축구도 상대에 따라서 전략이 달라야 한다. 우리 장점을 충분히 살려야 한다. 짧은 패스가 나쁘진 않다. 우리 장점 살려가면서 하면 된다. 세계 축구 흐름이 스페인 축구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축구와 접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대표팀에 옛 제자 한교원, 김주영 등이 활약하고 있다.

김주영(26·FC서울)은 용인FC 시절 뽑은 선수고 한교원(24·전북)은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때 K리그 드래프트 5순위로 발탁했다. 한교원은 개인 운동을 많이 지시했다. 1년 정도 매일 아침 7시부터 숙소 운동장에서 함께 훈련했다. 한교원은 아주 긍정적이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타고난 체력과 스피드가 있었다. 성장할 수 있는 선수라고 판단했다. 경험과 노력이 뒷받침되면 더 좋은 선수가 될 것이다.

- 박지성을 발탁하는 등 선수를 보는 눈이 뛰어나 성인 허와 스카우트의 결합어인 '허카우트'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과분하다.(웃음) 나는 원칙에 의해서 선수를 본다. 선수 장단점 모두 중요하다. 한 가지만 봐선 안 된다. 단점을 가릴 수 있고 장점은 승화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본다. 독일 축구를 보면 전문적으로 스카우트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뉜다. 기술적으로 총괄하는 스카우트와 선수 이적 관련 스카우트다. 일본도 강화부장이란 게 있다. 우리도 이런 게 필요하다. 어설프게 하면 부작용이 심하다. 감독 혼자서 전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 구단이 손대는 것도 옳지 않다. 시스템을 잘 갖추면 좋은 선수를 발굴해 재정적으로 구단이 이익 볼 수 있다. 상당히 필요하다. 선수들이 왔다 갔다 하면 구단으로서도 많은 액수가 오간다. 투명하게 잘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게 실질적으로 비즈니스다.

- 대표팀은 다음 해 1월 아시안컵 우승을 노린다. 한국은 56년째 아시안컵 우승을 못하고 있는데.

경기는 해봐야 한다. 다른 국가는 한국을 제일 무서워할 거다. 모두가 가장 견제할 팀이 한국이다. 조 편성도 원만하게 됐다. 우승 후보로 따지면 호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정도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도 예전 같지 않다. 한국은 충분히 우승을 노릴 수 있고 또 노려야 한다. 목표는 우승이어야지 다른 선택은 없다고 본다. 무조건 우승을 노려야 하는 대회다. 4강, 결승만 가면 된다는 생각은 맞지 않다고 본다.

-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나보다는 협회에서 생각해야 한다. 내가 '이렇다저렇다' 이야기할 부분이 아니다. 독일 현지 분위기를 봤는데 영입한 것에 대해 현지에선 의외라고 그리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한국 감독이 됐다는 사실에 놀라더라. 선수와 감독으로서 위상이 다르다. 물론 현지는 우리나라와 다르다. 우리나라와 잘 맞는 인물일 수도 있다. 더 지켜봐야 한다. 내가 뛰던 시대에 같이 뛰던 선수로 나는 좋게 봤다. 그때 리베로 시스템을 많이 썼는데 독일 축구에서 프란츠 베켄바워(69) 다음 주자가 바로 울리 슈틸리케(60)였다. 수비수로 기술도 있고 능력도 있어 좋게 평가했다. 같이 붙어본 적은 없었다. 다만 지도자로서는 다소 좋지 못했다. 그래서 현지에서 반응이 뜻밖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맞을 수 있다. 아무도 모른다.

허 전 부회장은 지난 9월 떠난 두 달의 독일 축구 연수에서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되짚었다.
허 전 부회장은 지난 9월 떠난 두 달의 독일 축구 연수에서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되짚었다.

◆ 끊임없는 준비의 독일 축구, 한국 축구도 배워야

-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지난 9월, 축구 공부를 위해 두 달 독일로 축구 유학을 떠났다. 왜 하필 독일이었나.


독일은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한 팀이다.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완파한 결승전도 인상적이었다. 독일 축구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부진한 우리 축구와 접목할 부분을 찾을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시간이 되면 남미 쪽도 가고 싶었는데 50일도 길지가 않았다. 가서 보니까 역시 뭘 하든 간에 계획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독일의 축구 환경과 문화가 부러웠다. 팬과 구단, 독일축구협회(DFB), 독일축구리그(DFL) 등이 전체적으로 함께 조화를 이루며 움직였다.

- 월드컵 우승을 이끈 독일의 힘은 뭐였나.

DFB와 DFL이 조직적인 시스템을 잘 갖췄다. 우리도 이래야 발전할 수 있다. 독일을 말하기 전에 프랑스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프랑스 축구가 1982 스페인 월드컵 때 굉장히 잘했다. 하지만 이후 다소 부진하자 1984~1985년 시작한 게 유소년 축구였다. 프랑스는 네덜란드를 주목했다. 네덜란드가 명문 아약스를 중심으로 국가가 아닌 클럽과 유소년 중심 축구를 펼치는 것을 벤치마킹했다. 이후 전역에 프랑스축구협회가 직접 운영하는 6개의 축구 센터를 설립했다. 나이대별 20명씩 총 60명이 있다. 전국으로 따지면 360명이다. 보통 한 연령대 20명을 뽑는 데 1000명 정도 온다더라. 지역별로 고르고 골라서 우수한 선수를 선별한다. 이러한 시스템으로 프랑스는 13년 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 프랑스와 독일을 직접 비교한 이유는 뭔지.

재밌는 게 이번에 DFB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독일이 유소년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게 부진했던 유로 2000 이후였다. 독일은 프랑스를 벤치마킹했고 2001년 생긴 게 지금 유소년 시스템이다. 이 주기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독일과 프랑스는 13년이란 세월을 투자해 월드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냈다. 우리도 준비가 중요하다. 이전 독일 시스템은 협회에서 모든 아마추어까지 담당했다. 이젠 분데스리가, 2부리그만 연맹에서 관장하고 나머지 3부 이하는 협회가 맡고 있다. 유소년에 대한 투자가 없으면 팀을 강등한다. 독일이 지난해 동안 유소년에 쓴 돈이 1억 5백만 유로다. 한 팀에 5% 정도면 그럴 만하다.

- 구체적으로 독일 축구에서 한국 축구에 접목하고 싶은 것이 있나

독일처럼 우리도 23세 이하 팀을 운영해야 한다. 현재 프로축구 구단이 유소년 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고 있고 약간 형식적이다. 유럽보다 확실히 뒤떨어진다. 또 학원 축구 중심으로 가고 있어 문제다. 18~21살에 공백이 많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프로에 가도 경기에 뛰지 못한다. 대학교에 가도 1~2년간 게임에 못 나간다. 주전으로 못 뛰니까 시간이 지나도 아마추어 굴레를 못 벗어난다. 한창 발전할 시기에 공백이 너무 크다. 이건 내가 예전부터 주장한 부분이다. 독일은 철저하게 실력에 따라서 1, 2군이 나뉜다. 잘하면 1군으로 뽑아 쓰고 2군에서 계속 추린다. 1, 2군 모두에서 자꾸 경기 경험을 쌓게 한다. 19세 이하 리그도 있다. 참 재밌었다. 이번에 5개 권역으로 나뉜 것은 3개 권역으로 나누려고 하더라. 이유를 물어보니 이미 1~2부 19세 이하 팀들이 4부리그 수준을 추월했다. 4부리그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팀 수를 줄이고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참 놀랐다.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세계 축구 정상이라고 해도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 독일 축구를 보며 절실히 느낀 부분이 뭔가

최근에 독일이 폴란드와 친선경기하는 걸 봤는데 새로운 실험을 하더라. 자기 고유의 축구에 스페인 축구를 접목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세밀한 패스로 공을 많이 소유하려고 했다. 폴란드, 아일랜드전에서 보면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이게 바로 바이에른 뮌헨에서 하는 거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이다. 참 부러웠다. 축구 자체가 정말 재밌다. 우리나라 축구랑 비교할 때 기술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속도에서 워낙 차이가 난다. 심판 판정도 매끄럽다. 선수들도 복종한다. 심판 판정에 대해 안 좋은 판정이 나와도 존중한다. K리그 '리스펙트 캠페인'을 하지만 더 제대로 하길 바란다. 나도 더 노력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 단·장기적으로 한국 축구가 추구해야 할 계획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단·장기적인 계획이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밑에서부터 커 나가는 선수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선 유소년 시스템을 세밀하게 구성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재목으로 커 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밑바닥부터 손질해야 한다. 이게 장기적인 계획이다. 시간이 걸린다. 협회나 연맹 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 단기적인 계획은 아까 말했듯이 18~20살 선수들이 굉장히 중요하다. 한창 경기력을 향상해야 할 시기다. 당장 월드컵, 올림픽에 나서는 대표팀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유소년기를 벗어난 선수들이지만 잘 관리해야 발전한다. 경기력과 팬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많이 느꼈다. 심판 판정도 마찬가지다.

- 앞으로 계획은

축구를 떠나서 살 순 없다. 계속 공부하면서 축구를 위해서 조언할 수 있는 건 하겠다. 결국, 축구 안에 있는 거 아니겠나. 감독직 복귀는 하늘의 뜻이다. 때가 있고 기회가 주어지면 온 힘을 다하는 거다. 협회든 감독이든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축구와 연관한 일을 할 것이다. 현역 감독이 되든 협회 임원이 되든 항상 축구와 함께할 것이다. 솔직한 마음은 죽을 때까지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생을 끝낼 수 있다면 최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경험한 훈련 방법을 가르치고 싶다. 목포와 대전 축구 꿈나무에게 유소년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더 좋은 기회가 생기지 않겠나. 현역 감독이 되든 협회 임원이 되든 항상 축구와 함께할 것이다.

- 프로 구단 부임설이 있는데

귀담아듣지 않는다. 나랑 이야기된 부분도 없다. 그래도 좋게 생각한다. 가치가 있는 모양이구나 느낀다.(웃음) 아직까진 인정해주는 의미이기 때문에 기분 나쁘지 않다.

fun350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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