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이기자] 11일 오바마 미국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20여개 국 정상들이 한국으로 속속 입국하고 있다. 이날 오후 6시부터 열릴 G20 서울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우리 정부는 '올림픽·월드컵'에 준하는 국제행사라며 보안수준을 '심각(Red)'으로 높여 안전에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각국 정상들 중심의 보안이 이뤄지다보니 일반 시민들이 겪는 불편은 상당하다. 삼성역 무정차를 비롯해 지상 교통 통제로 인한 출근길 체증, 코엑스 건물 안팎에서 이뤄지는 검문 등. 시민들은 '큰 국제 행사에 가능한 협조하자'는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있다.
그러나 G20 정상회의가 시민들에게 보답할 만큼의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우리 정부가 강조했던 '세계 속 선진한국 이미지'와 '수십 조 원 경제효과'와 같은 결과물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과연 'G20 정상회의'의 허와 실은 무엇일까. G20 서울정상회의를 지난 2000년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과 2005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그리고 외국의 G20 개최사례와 비교·분석해봤다.
◆ 'G20정상회의'와 '의장국', 정말 특별한가?
'G20 정상회의'는 1999년에 만들어진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모임'이 지난 2008년 정상회의로 격상된 것이다. 이 정상회의에서는 선진경제국(G7)과 신흥경제12개국 그리고 유럽연합(EU)이 모여 세계 경제를 논의한다. 세계 부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20개 잘사는 나라의 모임이니 그 위상만큼은 월드컵과 올림픽에 못지않다.
그러나 빈도와 사람들의 관심정도를 따지면 'G20 정상회의(이하 G20)가 그렇게 대단한가'라는 반문이 생긴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과 올림픽에 비해 G20은 6개월에 한 번씩 개최된다. 동일한 정상회담급 행사를 놓고 봐도 연중 1회인 APEC 정상회의와 2년마다 있는 ASEM에 비해 희소가치가 떨어진다.
거리로 나가 '가장 최근에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나라'와 '6개월 전 G20을 개최한 나라'가 어디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어떨까. 답은 둘 다 '캐나다'지만 후자를 맞추는 이는 드물 것이다.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올림픽·월드컵은 기억해도 6개월 전의 G20 개최지는 모른다'라면 'G20을 치르면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다'는 우리 정부의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정부에서 '큰 성과'라며 대대적으로 강조하는 '의장국'도 속을 들여다보면 과대 포장된 부분이 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G20 개최는 미국과 유럽의 힘겨루기의 결과"라고 밝힌바 있다. 애초 미국이 유럽을 견제하며 아시아를 고집했고 일본을 지목했지만, 일본이 APEC을 개최(11월12~13일)하게 되면서 한국에 'G20 의장국'을 넘겼다는 것. 결과적으로 '의장국' 타이틀은 챙겼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 '수십조 원'에 이른다는 경제효과, 거품은 없나
G20 개최를 '핑크빛'으로 물들인 것은 수십 조 원에 달한다는 '경제 파급 효과'다. G20을 앞두고 삼성경제연구소는 21조~24조 원,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30조 원, 그리고 한국무역협회 대전·충남본부는 무려 450조 원의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 수치들은 유형의 가치 외에 국민 자긍심이나 기업의 미래성장 동력 확충 등을 계산해 넣은 것이다.
하지만 수십 조에서 수백 조 원에 이르는 이 고무줄 수치는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신뢰성이다. 9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직접적인 효과는 1천억에서 3천억 정도 밖에 안 된다"며 "기업의 홍보효과·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같은 간접적인 효과의 크기를 숫자로 표현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6개월 전 토론토 G20의 결과는 어땠을까. 한국의 한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캐나다 폴라리스 연구소의 토니 클라크 소장에 따르면 토론토 정상회의가 끝난 뒤 G20 개최가 지역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는 "(G20 개최를 두고) 수치로 환산하면 5000만 달러(한화 약 550억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했다"고 추정했다.
이번 G20의 가장 큰 경제 이슈는 '환율 분쟁'이다. 환율 문제에 관한 국제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인 것. 이 의제만 원만히 해결돼도 G20 개최의 가치는 상당하다. 하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하루 이틀 사이에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은 낮다. '환율 문제'에서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다면 개최를 안 한 것만 못할 수도 있다.
◆ '4만 5천 경호인력'과 '특별법'…외국도 같은 상황?
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며 새롭게 기록을 세운 분야는 '보안'이다. 우선 정상회의 주간이 시작된 8일부터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을 포함한 5개 공항의 보안등급은 사상 처음으로 항공보안 최고 단계인 '심각(Red)'으로 높아졌다. 2000년 ASEM, 2005년 APEC 정상회의 때 이보다 2등급 낮은 '주의(Yellow)'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조치다. 또한 약 4만5000명의 경찰을 서울로 집결시켜 철저한 경비를 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9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46일간 적용되는 'G20 정상회의 경호안전을 위한 특별법'도 만들었다. 이 법안은 G20의 경호를 위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제한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집회 진압을 위해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다. 여기에 지난 9일 저녁에는 정상회의가 열리는 코엑스 주변으로 높이 2.2m의 초록색 펜스까지 세워졌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2000년 ASEM과 2005년 APEC 정상회의 때도 특별법 없이 현재의 반 정도 수준의 경찰력으로 잘 치렀던 것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G20 개최를 통해 '선진국가'로 거듭나겠다면서 자유와 민주주의 정신은 80년대 군사독재 시절로 돌아간 셈.
화단을 가꾸고 거리를 청소하는 것을 넘어 쓰레기 치우듯 노숙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만든 한국의 이미지는 북한이 공개하는 평양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한마디로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공식적 시작을 몇 시간 앞둔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정부는 국민과 G20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고 소통을 통해 진정한 대표성을 가진 정상회의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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