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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위의 여론<상>] 그 여론조사, 공감할 수 없던 이유?

  • 정치 | 2024-10-29 10:30

'미공표' 및 '신고대상 예외' 악용

'명태균 의혹'이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명 씨는 '여론조사'를 활용해 권력에 접근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대통령실 제공
'명태균 의혹'이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명 씨는 '여론조사'를 활용해 권력에 접근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대통령실 제공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보통) 500~600개의 샘플을 추출한다고 할 때 40만 원의 전화 비용이 든다. 그런데 거기서 2000개 샘플로 결과보고서를 쓰라고 했다. 이 얘기는 500개 샘플에다가 곱하기(를 하라는 것이다). 20대와 30대의 윤석열 당시 후보 지지를 20% 올리라는 것은 20대와 30대 중 윤 후보 지지 응답에 곱하기를 해서 결과보고서를 만들라는 지시다. 이건 보정이 아니라 조작이다."

지난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한 강혜경 씨(전 미래한국연구소 직원, 김영선 전 의원의 회계책임자)의 증언이다. 강 씨는 이날 자신의 변호인인 노영희 변호사를 통해 명태균 씨와 통화한 녹취록을 여러 건 공개했다. 그중 2022년 4월 2일 통화를 보면 명 씨는 강 씨에게 "이준석이가 공표 조사나 비공표라도 김지수를 이기는 것을 가져와라, 그러면 전략공천을 준다고 하네", "유선전화를 좀 많이 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 8대 2 7대 3 정도로 섞고 (김 후보와 김 전 의원 간 격차를) 벌려서 홍보용으로 때려야겠다"는 등의 발언을 한다. 같은 해 2월 28일 녹취에서는 명 씨가 강 씨에게 "연령별 가중치를 나중에 줘서. 어차피 공표할 건 아니지 않냐. 그냥 조사만 하는 건 관계없다"고 한다.

강 씨의 주장대로라면 명 씨는 특정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여론조사를 조작했다. 어떻게 조작했는지는 위의 대화에서 유추해보자. '가중치(가중값)'라는 게 등장한다. 여론조사는 '할당표집' 방식으로 표본을 구성한다. 전체인구의 성별·나이·지역 등을 고려해 구성 분포를 맞춘다. 서울 거주 20대 남성이 전체 인구의 3.5%라면 1000명의 응답 표본 중 35명을 조사대상애 포함해야 한다. 가중값은 이 할당을 채우지 못했을 때 적용한다. 35명을 채워야 하는데 20명만 응답했다면, 가중값 1.75를 적용해 보정한다. 가중값이 클수록 소수의 응답자가 과대대표될 수밖에 없다.

가중값만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원하는 답을 해 줄' 사람들을 조사하면 된다. 조사대상 왜곡이다. 여론조사 업체는 조사 전 여심위의 허가를 받고 통신사로부터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의 휴대전화 가상번호 목록을 받는다. 이 목록은 전 계층을 대표할 수 있도록 무작위로 추출된 것이고 당연히 정치성향 등을 알 수가 없다. 여기에 특정 집단을 섞는다. 만약 특정 정치성향 단체의 회원이 대거 포함됐다면 특정 질문에 특정 답이 나올 확률은 높아진다. 선거를 앞두고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당내 경선 과정이라면 이같은 유혹에 쉽게 빠진다. 특정 후보의 가족이나 지인 등을 조사대상에 섞어 그 후보에게 유리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강혜경 씨는 명태균 씨가 여론조사 조작을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을 제기한 강혜경 씨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강혜경 씨는 명태균 씨가 여론조사 조작을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을 제기한 강혜경 씨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물론 이는 모두 공직선거법으로 규제돼 있다. 가중값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에서는 0.8~1.5로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세부기준은 언론보도가 가능한 공표용 여론조사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한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는 통화에서 "미공표 여론조사는 정당 등에서 내부적으로 여론의 추이를 살피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표집을 엄격하게 맞출 필요는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문제는 미공표 여론조사가 '내부용'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언론은 '내부 조사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 후보'를 집중 조명하기 시작한다.

신고의무에도 허점이 있다. 공직선거법 108조에 따라 여론조사를 하려면 조사 이틀 전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목적·지역·방법·설문내용 등을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정당·방송사·신문사·뉴스통신사 및 일일 평균 이용자 10만 명 이상인 인터넷언론사는 신고 의무가 없다. 명 씨의 여론조사가 그랬다. 그는 2021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자신이 대표 겸 편집국장으로 있는 경남 창원의 지역 인터넷 언론 <시사경남> 등의 의뢰로 여론조사를 돌렸다. 여심위에 따르면 지난 4월 22대 총선 때 등록된 여론조사 2531건 중 1524건(60.2%)이 사전신고 면제 대상이었다. 명 씨와 같이 제도의 허점을 노린 사례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여심위는 이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여론조사 사전신고 면제 대상을 축소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미공표 여론조사에 대해서도 공표용 여론조사와 가중값 등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국회에서도 대책을 내놓고 있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여론조사 업체의 여론조작 처벌을 강화하고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 시 영구 퇴출시키는 방안의 '명태균 방지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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