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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비사⑦] 34시간·2821㎞…치밀했던 북한의 '무기 세탁' 

  • 정치 | 2024-08-25 00:00

北, 오스트리아에서 리비아와 무기 밀매
소음기 부착, 지문 감식 불가 '테러용' 총기
핀란드→오스트리아→헝가리 거쳐 반입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북한이 1983년 오스트리아에서 리비와 결탁해 무기 밀매를 벌이다 적발된 당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북한이 1983년 오스트리아에서 리비와 결탁해 무기 밀매를 벌이다 적발된 당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전두환 정권은 북한의 추가 테러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 대통령은 목숨을 건졌지만 우리 측 요인 17명이 사망하면서 북한에 대한 적개심이 최고조로 달했던 때다. 그러던 중 외교부는 북한이 오스트리아에서 무기를 밀매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실제로 북한과 리비아 대사관이 무기 밀매를 벌이다 현지 당국에 적발된 사건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북한의 자금이 유입된 정황이 포착됐다. 중립국인 오스트리아는 우리 정부에 사건의 내막에 대한 보안을 유지해달라고 당부하면서도 이는 모두 사실이라는 점을 귀띔해 줬다.

1984년 3월 19일 외교부 장관은 오스트리아 대사관에 북한이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무기를 구입했다는 정보를 전달했다. 당시 외교부는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과 몰타 무기 지원 등을 감안하면 북한의 행보가 한국에 대한 무력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외신에 따르면 북한은 1982년 7월 몰타와 비밀 군사 협정을 체결, 몰타에 대전차 무기 등을 지원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대사관은 1984년 4월 7일 오스트리아 측과 접촉해 북한의 무기류 구입이 사실이라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상황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오스트리아 측은 현재까지 파악된 대북 무기 수출 건은 없으며, 현지 법령과 한반도 정세를 감안해 심의해 보겠다고 답했다. 오스트리아는 외교 정책상 중립국으로서 군수물자의 수출입 통과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대사관은 이같은 내용을 외교부 장관에게 보고하면서 "정보출처 보호상 구체적 내용에 대한 언급은 일단 피했다"고 밝혔다. 북한 무기 밀매 정보의 출처가 극비를 요할 만큼 사실에 가깝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로 1984년 12월 13일 오스트리아 언론을 통해 빈 주재 북한 대사관이 리비아 대사관에 테러용 무기를 몰래 건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무기는 레밍턴 소총 16정과 베레타 권총 13정으로 총열에 소음기를 부착할 수 있었고, 지문이 전혀 남지 않도록 특수 처리된 상태였다. 이를 통해 현지 언론은 양국의 무기 밀매가 서방에 거주하는 리비아 반정부 인사를 제거하기 위한 테러용이라고 보도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부상자를 찾아 위로하고 있는 모습. /대통령기록관
전두환 대통령이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부상자를 찾아 위로하고 있는 모습. /대통령기록관

당시 보도 내용을 살펴보면 북한은 치밀한 '무기 세탁' 과정을 거쳤다. 먼저 미국 국적의 리비아 요원에게 의뢰를 받은 빈 주재 북한 대사관 공관원 2명은 빈 소재 무기상과 접촉해 핀란드 헬싱키 소재 무기상으로부터 무기를 주문했다. 해당 무기들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한 무기상에게 전달됐고,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국경지역인 니켈스도르프로 수송돼 '평양 북한 사격 연맹용'으로 위장됐다. 위장된 무기들은 북한 외교관 차량에 실려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수송, 얼마 뒤 오스트리아 빈으로 재반입돼 리비아 대사관으로 최종 이송된 것이다.

전체 무기 이동 경로를 살펴보면 '핀란드 헬싱키→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니켈스도르프→헝가리 부다페스트→오스트리아 빈' 순이다. 차량으로만 꼬박 34시간이 걸리는 코스로 전체 이동 거리만 2821㎞였다.

이뿐 아니라 자금의 흐름까지 포착되며 북한과 리비아의 무기 밀매 사건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북한 외교관들이 무기 구입을 위해 접촉한 빈 소재 무기상은 북한 금강은행으로부터 28만5000달러를 지원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미국 국적의 리비아 요원의 계좌에서 리비아 대사관 명의로 수백만 실링(과거 오스트리아 화폐단위·당시 1달러 당 22.8실링)이 입금된 사실도 밝혀졌다.

오스트리아 대사관은 1984년 12월 17일 외교부 장관에게 해당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대사관은 오스트리아 측으로부터 "관련 보도는 관계기관 수사 결과와 부합하고 무기 밀매 동기는 거래에 따른 재정적 이득으로 보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오스트리아 측이 사건에 연루된 북한 외교관과 리비아 외교관의 출국을 요청했다는 사실도 파악해 냈다.

오스트리아 대사관은 오스트리아 측과 접촉 후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 외교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외교부 제공
오스트리아 대사관은 오스트리아 측과 접촉 후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 외교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외교부 제공

이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측은 "이같은 사건은 대외적 발표 없이 해당 공관에 직원 교체를 조용히 요청하는 방식이 관례"라며 우리 정부에 보안에 유념해달라고 강조했다. 중립국에서 벌어진 테러용 무기 밀매 사건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오스트리아가 느꼈던 부담감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공관원 2명 중 1명이 귀국한 사실을 알게 된 외교부는 오스트리아 대사관에 "북괴의 테러 수출 폭로 홍보자료로써 적절한 기회에 언론에 풀 계획"이라며 오스트리아 측에 국내 보도 가능 여부를 문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오스트리아 측은 북한 공관원 2명 모두 출국한 사실을 새롭게 확인해 주면서도 "보도하더라도 기타 출처에 탐문한 형식으로 표현에 신중을 기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1984년 북한의 무기 밀매가 벌어진 오스트리아 빈은 최근까지도 북한 요원들의 밀수와 간첩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20년 12월 블룸버그통신은 서방 고위 정보당국자를 인용해 북한 국가보위성 요원 10명이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고, 그 활동의 중심지가 오스트리아 빈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천지로 이동하면서 탑승한 케이블카는 오스트리아를 통해 조달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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