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국회 인턴 6인 인터뷰
그만둔 이유? '직업 불안정성' '야근' '업무 괴리감 등'
뿌듯한 순간은 '업무 효능감' 느낄 때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동영상 편집 능력과 SNS 홍보 업무 능통에 능통한 분. 홍보물 제작툴(ex 포토샵, 파워포인트 등) 활용 능숙자.' 방송사 또는 홍보대행사 직원 채용 공고 같겠지만, 국회 인턴 채용 공고 내용이다. 정확하게는 의원실의 인턴이다.
국회에는 300명의 국회의원이 있다. 이들을 보좌하는 의원실 보좌진들은 최대 9명으로 4급 보좌관 2명, 5급 선임비서관 2명, 6·7·8·9급 비서관 각 1명, 인턴 1명을 둘 수 있다. 의원실 내에서 가장 '꼬리' 직급인 국회 인턴은 국회 운영 지침에 따라 최대 22개월까지 일할 수 있는 계약직 직원으로, 올해 기준 2770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
취업을 준비하거나, 정치권 진입을 노리는 20·30세대들이 많이 지원하는 국회 인턴은 최소 수십 대, 최대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뽑혀 '금(金)턴'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의원의 의정활동 전반을 보좌하며 입법기관이 하는 정무·정책·수행·홍보 업무 등을 수행한다. 이들이 인턴에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입법 관련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서다. '금턴'들은 국회에서 일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까? <더팩트>는 국회 전·현직 20대 인턴들에게 자신들의 업무 경험을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대부분 정책 업무가 아닌 의원 SNS관리, PPT 작성, 영상 편집 등 '젊은 사람들이 잘 한다'고 여겨진 홍보에 업무가 과중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또 이들은 한목소리로 보수에 비해 현저히 높은 '회사'의 업무강도를 지적했다. 특히 '젊은 세대의 감성'을 공략하기 위해 인턴들에게 유튜브 채널 운영, 유튜브 영상 편집 등 영상 관련 업무를 시키는 의원실의 경우 업무 비효율성이 심하다고 전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자신이 쓴 질의서가 신문 1면에 나거나 브라운관을 탔을 때, 유튜브가 빠른 성장을 보였을 때 등 '내 업무가 빛을 발했을 때'를 주로 꼽았다. 인턴을 그만둔 이들의 경우 '직업 불안정성' '야근' '원했던 업무와 실제 업무 사이의 괴리' 등을 이유로 들었다.
다음은 전현직 국회 인턴 6인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다.
A 씨는 대학을 휴학하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실에서 약 1년을 인턴으로 근무했다. A 씨는 의원실에서 SNS와 유튜브 운영 등 홍보 업무를 주로 맡았다. 이외에도 상임위 질의서, 보도자료, 축사 등 메시지 작성 업무도 했었다.
국정감사, 청문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대정부질문 등 국회의 굵직한 '이벤트'들은 나름 다 겪었다는 A 씨. 그는 상임위 질의서 작성을 위해 야근이 잦았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또, 의원실 손님 응대 등 '의원실 막내'에게 통상 맡겨지는 잡무를 수행하느라 꽤 바빴다.
복학을 위해 인턴을 그만둔 그에게 국회에 다시 지원할 것인지를 물었다. A 씨는 "의원을 보좌하면서 공부도 많이 할 수 있었고 내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뿌듯함이 클 것 같다는 생각에 보좌진이 괜찮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다만 '워라밸'(일과 일상 사이의 균형)은..."이라고 말을 흐렸다.
직업 불안정성 때문에 그만뒀다는 사람도 있었다. 국회 인턴으로 1년 근무했고 현재는 사기업에 재직 중인 B 씨는 "국회를 그만두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선거가 있는 4년마다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국회 홈페이지에 개제된 의원실의 인턴 채용 공고를 살펴보면, 미세하게는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동영상 편집 능력' 'SNS 활용 능력' 등 뉴미디어 매체를 다루는 능력을 우대한다는 점이다. 인턴 주요 업무란에 '동영상 제작(편집/촬영), 카드뉴스, PPT 등 홍보이미지 제작' 등을 기재한 의원실도 적지 않다.
취업준비생인 C 씨는 지난해 6개월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의원 SNS 메시지 관리, 축사 작성, 카드뉴스·PPT 제작, 영상 편집 등의 업무를 했다. 그는 영상 편집 업무에 대해 "할 말이 많다"며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영상 편집은 매달려서 집중해서 해야 하는 고강도 업무예요. 제대로 만드려면 5분짜리 영상도 몇 시간은 걸리거든요. 그런데 윗분들은 영상 편집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이에요. 일단 영상 편집을 인턴한테 맡겨놓고 계속 다른 일을 시켜요. 전권이 윗분들한테 있으니 전 계속 영상을 보여주고 피드백 받고 '이런 부분은 빼라' 하면 또 수정하거든요. 그림 하나가 빠지면 영상 전체를 뒤집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잘 만들어봐야지' 하다가도 '다른 할 일도 많은데 빨리하고 치워야겠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그럼 (집중하지 못하니) 재미없는 영상이 나오고...인지도 높은 의원들이야 어떤 영상을 올려도 당원들이 봐주겠죠. 근데 그게 아닌 의원들 영상을 누가 유튜브에서 찾아보나요?"
그는 의원실 안에서도 중도층 공략을 위해 '유튜브 콘텐츠로 의원 홍보 활동을 해 보자'는 말은 많이 나온다고 했다. 특히 인턴에게 유튜브를 맡기겠다는 건 젊은 세대를 공략하겠다는 이유도 크다는 것이다.
C 씨는 처음엔 유튜브 콘텐츠 개선 방안도 내보고, 유튜브에 'OOO' 이름을 치면 의원보다 다른 채널이 먼저 나오는 것도 바꿔야 한다는 등의 제안도 해봤다. 돌아온 건 '왜 그래야 하나' '명분이 필요하다'는 대답이었다. C 씨는 "또 조금이라도 의원이 망가지는 콘텐츠는 안 된다고 한다"며 유튜브 채널 운영에는 아쉬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사기업에서는 보통 인턴의 유형을 '채용 연계형'과 '체험형'(채용 무관)으로 나누기도 한다. 따지자면 국회 인턴은 '체험형'에 가깝다. 인턴들 사이에서는 '인턴에서 급수를 다는 일이 9급 비서관에서 5급 선임비서관을 다는 일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고도 했다. 급수를 다는 비서관과 4급 보좌관의 경우, 국회 경력을 바닥부터 쌓아온 이들도 있지만, 상임위 전문성 등을 이유로 국회 밖에서 데려오는 인원도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의 인턴 채용 당시 경쟁률은 20~30:1에 가까웠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유능한 인재들인 셈이다. 개중에는 입법기관에 꿈을 품고 국회에 들어온 데 반해, 자신이 기대했던 업무와 실제로 맡은 일 사이 괴리감을 느꼈다는 이도 있었다.
6개월 국회 인턴 근무 이후 현재는 다른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D 씨는 "PPT 자료를 작성하는데 좌우 간격·너비를 잘못 맞췄다가 선임에게 호되게 혼난 적이 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국정감사 자료 정리, PPT 만들기, 명절 당시 의원 얼굴이 박힌 '카드'를 만들어 문자로 발송하는 일 등을 했었다고 한다. D 씨는 "정치와 정책에 관심이 있어 인턴에 지원했지만 일하면서는 관련 업무를 해보기가 쉽지 않았다"라며 "오랜 시간 사무실에 있어야 하는 등 업무 강도도 높았고 추후 커리어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E 씨는 의원실을 두 차례 옮긴 '현직' 인턴이다. 그는 '인턴의 주요 업무'가 정해져 있지 않고, 의정 활동을 전반적으로 보조해야 하는 역할이 크다 보니 업무 체계가 '주먹구구식'이라 어려움을 겪었었다고 했다.
의원실을 옮긴 이유를 묻자 "사장님(의원) 문제가 가장 컸다"고 답한 E 씨는 "가끔은 내가 의원실 직원이 아니라 '외주업체 직원'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입법 기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인턴직에 지원했으나 정작 맡은 일은 잡무에 가까웠다는 것. 그는 "과중한 업무를 맡아 하면서도 의원실 내에서 정책 업무를 맡은 사람들만 선 안에 들어와 있고, 그 외에는 외부인 취급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전·현직 인턴들 사이에서도 '악덕 사장님'이 운영하는 기업은 빨리 입소문을 탄다고 했다. C 씨는 "국회 사적모임을 가면 '이 의원실은 조심해라, 가지마라'하는 이야기도 쉽게 나온다"며 "사람이 너무 빨리 바뀌기로 유명한 의원실은 급수 단 보좌진들이 오히려 인턴한테 물어보는 상황도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들이 업무의 보람을 느낀 순간은 대체로 비슷했다. 작성한 상임위 질의서가 뉴스를 탔을 때, 조사한 자료가 국정감사에 쓰였을 때 등 모두 자신이 '입법 기관으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했을 때를 꼽았다.
'업무 성취감'은 이들을 계속 보좌진을 꿈꾸게 하는 계기가 된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3개월 차 국회 인턴에 재직 중인 F 씨는 "국회에 들어와 보니 보좌진이 의원의 권한을 빌려 평소 관심이 있던 분야에 정책적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직업임을 알게 됐다"며 인턴 기간이 끝나더라도 국회 일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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