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짜리 만화가 쏘아올린 정치 풍자 논란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한 고교생의 만화가 정국을 강타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풍자한 만화인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엄중 경고' 조치를 내린 까닭입니다. 야당과 만화계는 윤석열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반발합니다. 여당에선 표현의 자유가 아닌 '표절'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반박합니다. 뭐가 맞을까요. 하나하나 짚어봤습니다.
작품명은 '윤석열차'.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한 기차가 달려가고 있고, 놀란 시민들이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기관사 자리에는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로 보이는 인물이, 그 뒷자리에는 검사복을 입은 4명의 남성이 칼을 들고 있습니다.
이 만화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주최한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카툰은 '주로 정치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한 컷짜리 만화'라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공모전 작품 주제는 '자유'였습니다. 종합해보면 '한 컷짜리 정치 풍자만화를 자유롭게 그리시오'라는 말이 됩니다. 정치 풍자가 금지된 사회라면 고교생이나 주최 측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들에게 문제를 제기할 만한 사유는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시각입니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 생각은 달랐습니다. 문체부는 4일 "정치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난다"고 밝혔습니다. 또 "주최 측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문체부는 '정치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 즉, 카툰을 전시하는 건 '만화 창작 욕구 고취'와 어긋난다고 한 셈입니다. 만화 전시가 만화 창작 욕구를 높이는 것과 거리가 있다는 건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유감을 표하고 엄중히 경고한다고 할만한 일이라고 보기에는 더욱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체부는 같은 날 늦은 오후 추가 입장을 냈습니다. 주최 측이 문체부 후원을 신청하면서 '정치적 의도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작품' 등은 결격이라고 했는데, 실제 공모 요강과 심사에 관련 내용이 빠졌다는 겁니다. 문체부는 후원 명칭 취소에 해당한다며 "신속히 관련 조치를 엄정히 이행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문체부가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요.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5일 국회에서 열린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문제 삼은 것은 작품이 아니다. 순수한 미술적 감수성으로 명성을 쌓은 중고생 만화 공모전을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만든 만화진흥원을 문제 삼는 것."
이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는 평가입니다. 앞서 문체부는 해당 작품이 '정치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뤘다'라고 밝혔고, 그 작품을 주최 측에서 전시하는 바람에 행사 취지와 어긋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루지 않은 작품을 전시했다면, 취지에 적합하다는 뜻으로 작품 역시 문제 삼은 셈입니다.
야당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공세에 나섰습니다.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등학생 작품을 두고 문체부가 긴급하게 두 차례 협박성 보도자료를 낸다는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다"며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가 다시 떠오른다. 그때는 밀실에서 이뤄졌지만 이번에는 아예 공개적으로 예술인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를 의식한 걸까요. 여당은 표현의 자유가 아닌 '표절'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표절 의혹으로 논란이 크다"며 "외국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베낀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란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표현의 자유 논란 못지않게 표절 논란도 뜨겁습니다. 원래 있던 작품을 베꼈다는 건데 2019년 6월 영국 일간지 '더 선'에 실린 만평이 언급됩니다.
해당 만평을 살펴보면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의 얼굴을 한 기차가 달리고 있고 주변 사람들이 달아나고 있습니다. 당시 보리스 전 총리는 영국의 유럽연합탈퇴(브렉시트·Brexit) 강행을 위해 조기 총선을 추진했고 여론의 비판을 받았는데, 이를 풍자하기 위한 취지로 실린 삽화였습니다.
윤석열차라는 작품과 상당히 유사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표절이 맞을까요?
김종혁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5일 라디오에 출연해 보리스 전 총리 만평을 언급하며 "누가 봐도 그대로 표절한 건데 심사위원들이 일러스트를 보지 못했거나 검증을 소홀히 한 것 아니냐"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림의 구도나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 등이 맞닿아 있어 표절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에서는 표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윤석열차라는 작품의 소재가 지극히 보편적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표절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소재를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숨기려는 의도가 있어야 하는데, 윤석열차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윤석열차의 소재는 '사람 얼굴 열차'입니다. 열차 앞면이 사람 얼굴로 표현된 작품은 많습니다. 1984년 영국의 어린이 만화 '토마스와 친구들'이 방영된 이후 보리스 전 총리의 사례와 같은 열차는 해외 언론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단골 소재입니다. 즉 윤석열차에 사용된 소재는 일반인들에게 상당히 익숙한 만큼, 표절이 아닌 '소재의 차용'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김빈 전 청와대 행정관은 "토마스 열차는 너무나 흔한 풍자 소재로 이를 사용한다고 해서 업계 누구도 표절이라고 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인면수심(人面獸心)을 이야기할 때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소재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차가 표절이라면 얼굴이 그려진 열차 만평은 모두 표절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 시사만화가는 "이미 수없이 많은 만평에서 열차에 얼굴을 그렸다"며 "윤석열차는 오래전부터 그려져오던 열차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또 "만약 윤석열차를 표절이라고 한다면 지금껏 세계 유수 언론에 그려진 수많은 열차 만평은 모두 만화 토마스와 친구들을 표절한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실질적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윤 대통령은 어떤 입장일까요.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표현의 자유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6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서 "그런 문제는 대통령이 언급할 게 아니다"라고 함구했습니다.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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