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낙인 찍히면 폭망" vs "제대로 하는 건 박 위원장뿐"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염치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6·1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청년 정치인 양성 시스템을 제도화하고 팬덤 정치와 결별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도부 일각의 우려에도 스스로 결단한 것이다. 내부에선 "사과로 선거를 이기지 못한다"며 쓴소리가 나왔다. 일부 강성 지지층들은 박 위원장을 향해 인신공격성 비난도 퍼부었다. 지도부와 586세력(50대·80학번·60년대생) 등 당내 '기득권 내려놓기' 제안에는 누구도 호응하지 않았다.
다만 민주당 청년 당원들 사이에선 "제대로 목소리 내고 있는 사람은 박 위원장뿐"이라며 그를 지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박 위원장의 호소문이 지선 이후 당내 '세대교체' 움직임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박 위원장은 24일 첫 일정이었던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작심한 듯 '긴급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이 출마해 압승할 것으로 예상됐던 인천 계양을까지 판세가 여유롭지 못하자, '반성과 쇄신 약속' 메시지로 막판 호소하기 위해서다.
박 위원장은 오전 10시께 '대국민 호소문'이라는 입장문을 직접 발표했다. 종종 고개를 숙여 종이를 바라보는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앞을 바라보고 '1200자' 입장문을 담담한 목소리로 읽어 나갔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100도 인사'도 두 차례 했다.
입장문에는 지선 이후 당 쇄신 방안 관련 메시지가 담겼다. 박 위원장은 "이번 지방선거에 기회를 주신다면 제가 책임지고 민주당을 바꿔나가겠다"고 호소했다. 특히 그는 "다음 전당대회에서 당헌·당규를 체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고쳐야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586세대 용퇴와 관련해서, 우리 당이 젊은 민주당으로 나가기 위한 그림을 그려 나가는 과정에서 기득권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민주당이 반성과 쇄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 같다"며 이번 주 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막판 지지 호소를 위해 선대위 지도부가 차기 당대표나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강수를 둘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이재명 위원장은 박 위원장 기자회견에 대해 "민주당의 반성과 쇄신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라며 "그 밖의 확대해석은 경계한다"고 선을 그었고,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도 "당과 협의된 게 없다. 개인 차원의 입장 발표"라고 진화에 나섰다.
박 위원장의 화살은 정치권의 화두인 '팬덤 정치'로도 향했다. 그는 "맹목적인 지지에 갇히지 않겠다. 민주당을 팬덤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개딸 현상'에 대해서도 "팬덤 정치라고 하는 것이 지금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 사람의 어떠한 정치적 공약이나 지점을 더 봐야 하는데 맹목적 충성으로 비치고 있는 것 같다. 건강한 공론장 만드는 게 지금 우리 정치권이 해야 할 과제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대선 이후 2030여성들이 당원 가입 등 대거 유입되면서 '친이(친이재명)' 팬덤이 공고해졌다고 보고 있다. 이 위원장을 적극 지지하는 이들은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며 당내 원내대표 선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분리) 입법 강행 등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 과정에서 문자 전화 세례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해오고 있다. 이 위원장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에선 '아빠'로 불리는 이 위원장을 비롯해, '큰삼촌' 송영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 김남국 의원 등이 가입해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박 위원장의 행보를 두고는 반복되는 사과가 지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로 시끄러운 분위기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사과로 선거를 이기지 못한다. 새로운 약속보다 이미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좋은 전략"이라며 박 위원장을 에둘러 비판했다. 그는 지난 19일에도 "비판하고 싶다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 자유롭게 하시기 바란다"라며 박 위원장을 저격한 바 있다. 박 위원장 호소문 발표 직후 그의 페이스북에는 "닥치고 민주당 나가달라. 오늘날 민주당이 있기까지 '박지현' 씨는 했던 공로는 뭐가 있다고 민주당을 사당화하려는 건가?" "사과만 해선 낙인효과 생겨서 오히려 폭망한다" "개딸들 무시하지 말라. 님은 검찰정상화 과정에서 뭐했나" "열심히 선거운동 하는 후보들 사기 떨어뜨리는 비대위원장은 차라리 없는 게 나을 것 같다" "박지현의 뭘 보고 믿어야 하지? 정치 커리어가 있나. 업적이 있나. 학벌이 좋나. 성공을 해봤나"등 민주당 지지자들로 추정되는 누리꾼들의 비판 글들이 쏟아졌다.
반면 청년 정치인의 쇄신 의지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김본비 청년 당원은 "박 위원장 행보보다 더 큰 문제는 기성세대의 강성 지지자들이 청년정치인을 대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봉한나 청년 당원도 "당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은 박지현 위원장뿐이다. 사과할 짓을 안 해야 사과를 안 할 것"이라며 박 위원장 행보를 지지하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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