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파 "시점 명시 안 돼 휴지 조각"…다음 주 처리 전망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강대강 대치를 이어온 '검수완박' 정국이 여야의 전격 합의 타결로 해소 국면에 들어갔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안한 '검찰개혁' 중재안을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이 받아들이면서 오는 28일 또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관련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박 의장의 적극적인 중재 시도와 민주당의 강행 처리 부담에 대한 정무적 판단이 극적 합의의 배경으로 꼽힌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을 비롯해 강성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여진은 이어질 전망이다.
여야는 22일 박 의장이 내놓은 '검수완박' 중재안에 합의했다. 과정은 신속했다. 이날 오전 9시 45분 박 의장은 최종 중재안을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에 전달하며 "오늘 반드시 결론을 내겠다"고 단언했다. 이후 양당이 곧바로 의원총회를 열고 의견을 모았다. 여야 모두 일부 반발이 있었지만 박 의장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결론을 내리고 의원들로부터 추인받았다. 이후 양당 원내대표는 오후 3시 17분께 합의문에 서명했다. 약 5시간 30분만에 중재안 전달부터 합의 공식화가 이뤄진 것이다.
속전속결 합의 배경에는 박 의장의 적극적인 물밑 조율 작업이 있었다. 측근도 모를 정도로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지난 금요일(15일) 오후부터 출장 보류하라고 경로를 통해 요청한 상태였다. 이후 전직 의장, 정계 원로, 김부겸 국무총리, 법조계 주요 전문가들을 쭉 만났다. 그래서 박 의장이 구상을 가다듬어서 본인 스스로 손글씨로 초안을 만들어서 여야 원내대표들에게 하나씩 보여주면서 자구 수정을 했다. 그게 3, 4일 전"이라며 "오전 6시부터 8시,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새벽하고 심야 시간을 많이 활용해서 비공개 회동을 굉장히 많이 하셨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에 '검수완박'을 강하게 추진했던 분들도 만나서 설득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민주당이 투트랙으로 진행하던 원내 전략에 차질이 생긴 점도 절충안을 수용하게 된 이유로 보인다. '검수완박' 법안 4월 내 국회 처리를 목표로 설정한 민주당은 박 의장과 의견 조율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안 처리 강행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던 안건조정위 절차가 삐걱였다. 민주당 출신 양향자 무소속 의원을 안건조정위 캐스팅보터로 교체투입했으나 반대 입장을 밝혀 민형배 의원을 '탈당' 시키는 초강수를 쓰다가 당내에서도 "편법" "민주주의 능멸" 비판을 받았다. 여론이 악화하면서 입법 강행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커진 셈이다.
박 의장의 중재안이 민주당의 원칙이었던 '검찰의 직접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방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지만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합의안은 검찰의 '직접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원칙을 담았다. 또 현행 검찰의 6대 범죄(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부패·경제) 수사권 중 부패·경제만 남기고 삭제하기로 했다. 부패·경제 수사권 역시 새 수사기관이 출범하면 폐지하도록 했다. 즉,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을 한시적 유예기간을 두고 모두 없애기로 한 것이다. 또 경찰의 송치사건에 대한 검찰의 별건수사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중대범죄수사청(한국형 FBI) 신설 등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국회 내에 사법개혁특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중수청은 1년 6개월가량 준비기간을 거쳐 출범할 수 있도록 했다.
검찰개혁을 주장해온 민주당 한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만족스러운 건 아닌데 극한 대결로 가지 않고 '수사·기소 분리'의 방향을 잡은 합의안이 만들어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중수청 신설 등을 놓고 여야가 다시 충돌할 여지를 남겼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그는 "수사권 이관이 아직 법으로 확정된 게 아니니까 흔들릴 수 있다는 건데 여기까지 왔으면 돌이킬 수 없다고 본다. 특히 그때는 총선을 앞두고 있는데 약속을 안 지킨다면 국민의힘 스스로 무덤을 파는 거라 (약속 파기는) 어려울 거라고 본다. 중수청 출범하고 검찰 수사권이 이관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지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부대변인은 "원내에서 중재안이 수용됐다는 점을 인수위는 존중한다"면서 "중재된 내용은 해당 분과에서 검토 중이고 추후에 별도로 입장이 있게 되면 말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날 여야의 극적인 합의로 관련 법안은 다음 주 28~29일쯤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고 다음 달 3일 열리는 국무회의에 상정되는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안 명문화 과정에서 잡음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강성 의원 모임인 '처럼회' 중심으로 강경파가 합의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민 의원은 "박 의장의 최종 중재안 제안과정은 헌법 파괴적"이라며 "민주당 의원 전원의 찬성으로 정해진 당론 대신 의장이 자문그룹을 통해 만든 안을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입법권 없는 자문그룹이 실질적 입법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진 탈당해 '꼼수' 비판을 받았던 민형배 의원도 "의회민주주의 파괴"라며 "의장이 의원은 물론 국회 밖 의견까지 포함해 의원들에게 강요한 때문이다. 놀랍다. 국회의장이라는 분이 이렇게 몰아붙이다니"라고 박 의장을 저격했다.
이수진 의원(동작을)은 합의안에 직접수사권 이관 시한을 명시한 부칙을 넣지 않았다며 '무늬만 폐지'라고 비판했다. 강경파 의원들은 이에 대해 원내 지도부에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오후 친여성향 유튜브 '시사타파TV'에 출연해 "저와 김용민 의원은 (의총에서) 부칙에 '공포일로부터 1년 6개월 지나면 직접수사권이 폐지된다'라고 넣자고, 이걸 넣지 않으면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 의장이 저쪽당(국민의힘)이 걸사반대라 안 된다고 했다고 박홍근 원내대표가 말했다"고 했다. 이어 법사위에서 시점을 명시한 부칙을 추가하자고 제안할 경우엔 합의가 어그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모든 게 박병석 의장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라고 했다. 이 의원은 발언 중간에 여러 차례 "박병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 일부 강성 지지자들도 가세했다. 이들은 여야의 중재안 합의 발표 이후 문자, 전화 등으로 민주당 의원들과 박 의장에게 원안 통과를 압박했다. 오는 24일 박 의장 지역 사무소 항의 시위도 예고했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과 이재명 상임고문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 커뮤니티 등에는 항의 글이 쏟아졌다. '박병석 국회의장 아웃' 등 박 의장 비판글은 물론 민주당 원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6·1 지방선거 낙선 운동을 벌이겠다는 글도 보인다. 박 의장을 향해 항의를 의미하는 '18원' 후원 인증도 쏟아졌다. 향후 개혁 과제를 퇴행 없이 추진하기 위해 이 고문이 지방선거 보궐선거 국회의원으로 출마해야 한다며 '조기 등판론'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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