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인정 않는 금융위원장에 시장 참여자 부글부글
[더팩트ㅣ청와대=허주열 기자] "하루에 20%씩 오르내리는 자산에 함부로 뛰어드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보지 않는다. (청년들이) 잘못된 길을 가 있으면 잘못됐다고 어른들이 얘기해줘야 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4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암호화폐 열풍에 빠진 청년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에 분노한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국민청원을 통해 은 위원장 사퇴를 촉구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가상자산 거래 관련 불법행위 전방위 대응, 피해 예방 방안 및 제도 보완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동문서답' 답변을 내놨다.
지난 4월 23일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20만1079명이 동의해 청와대의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30대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원인은 해당 글에서 은 위원장의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어른들이 가르쳐줘야 한다'는 발언을 언급하면서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왜 이런 위치에 내몰리게 되었을까. 지금의 잘못된 길을 누가 만들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며 "그 말에 책임을 지시고 자진사퇴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청원인은 2030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하나 가질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블록체인과 코인 시장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는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술품과 비교하면서 가상화폐 시장을 운운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이미 선진국들은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종 노력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제조업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 훌륭한 인재들과 IT 기술력을 갖추고도 정부의 이런 뒤처진 판단으로 세계적인 흐름에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은 위원장은 지난 4월 국회에서 "9월 모든 암호화폐 거래소가 갑자기 폐쇄될 수도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는 정부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암호화폐는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에 불과하다" 등의 가상자산에 대한 강력한 경고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이에 분노한 암호화폐 시장 참여자들이 그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지난 23일 서면 답변에서 "답변에 앞서 청원에 담긴 청년의 목소리가 무겁게 다가온다. 청년세대는 일자리, 주거, 교육, 사회 참여, 삶의 질 문제 등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면서도 "정부는 그 어려움을 덜어내고, 사회적 안전망 위에서 청년들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체감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정부의 가상자산 정책에 대해 "정부는 2017년부터 가상자산 관련 관계 부처 합동 TF를 운영 대응해왔으며, 최근 가상자산 시장 급증에 따라 지난 5월 28일에 관계 부처 합동으로 '가상자산 거래 관리방안'을 발표했다"라며 "가상자산 거래의 불법, 불공정 행위 관련해서는 가상자산 관계 부처 차관회의(TF)에 국세청, 관세청이 추가 참석해 불법행위를 전방위 대응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가상자산 관련해서는 시장 동향, 제도 개선 효과, 청년층 등 거래 참여자와 전문가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며 피해 예방 방안 및 제도 보완을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했다. 은 위원장 사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가상자산 투자가 활성화된 것은 고용난, 집값 폭등으로 근로소득만으로 내 집 마련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유일한 탈출구로 가상자산을 선택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부 규제로 탈출구를 잃을 것을 우려한 이들은 청원인의 주장과 거리가 먼 답변에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 등을 통해 "사퇴를 묻는 청원에 동문서답한다", "원하는 답변은 안 하고 요리조리 피해 가는 말만 한다", "무겁게 다가오기만 하고 해결은 안 한다"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또한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해당 글 외에도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다수 올라와 있다. 지난 7일 올라온 '개인 투자자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정부의 잘못된 가상화폐 규제 방향을 바로 잡을 것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청원인은 "가상화폐는 가격변동 보호 대상이 아니고, 인정 하지 않지만 세금은 걷겠다. 9월에 모든 거래소를 폐쇄할 수도 있다는 게 정부의 가상화폐에 대한 입장"이라며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말인가. 세계에서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나선 건 민주주의 국가에선 한국이 유일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한국의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에서 개인의 선택에 의한 투자 결과에 대해서 수익을 보장해달라는 게 아니다"라며 "규제라는 명목 아래 무자비한 방식으로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을 절벽 끝으로 내모는 정부 행동은 결코 옳은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청원인은 "2017~2018년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 폐쇄 추진을 언급하면서 비트코인이 무너졌다"라며 "우리는 투자자 보호 및 양성보다 세금이 먼저인 현 상황을 타개할 투자자보호 업권법을 창설하고, 세법 개정을 통한 가상자산의 양성화를 원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미국과 EU의 가상자산거래자 보호제도의 시사점' 보고서에서 "미국과 EU는 물론 일본, 싱가포르, 홍콩, 호주 등 대다수 주요국에서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하는 가상자산은 기존 증권법의 적용을 받는다"라며 "미국 SEC 투자계약 가이드라인과 같이 가상자산의 금융투자상품 해당 여부에 관한 국내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또 "가상자산 거래와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국제화된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 정부도 장기적으로 가상자산거래자 보호와 시장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국제적 정합성에 맞는 가상자산시장 규제체계 정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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