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전수조사 수용 방침 밝혔지만 합의 과정 난항 예고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부동산 투기 의혹 관련 정치권의 제 살 깎기는 이뤄질 수 있을까. 여야 '국회의원 전수조사' 논의가 진척을 보였다. 여당은 '고위 공직자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며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지자체장 등 모든 선출직 공직자까지 전수조사하자고 강수를 던졌다. 제1야당은 책임 전가를 위한 '시간끌기'라며 거부하던 기존 입장에서 수용 방침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공직자 비리 논란 국면마다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국면 전환용으로 내세우고 유야무야된 경우가 많아 이번에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벌써 나온다.
국회의원 전수조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사태를 계기로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제안했다. 야당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불신을 부각하고 이에 여론이 심각해지자 벼랑 끝 전술을 선보인 것이다. 여야의 극한 대치로 전수조사 논의는 진척을 보이지 못하다가 15일 물꼬를 텄다.
여당의 여론전이 한몫했다.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은 이날 전수조사를 거절한 야당을 향해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 아니라면 회피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세간에서는 부동산 비리가 국민의힘 쪽에 몇 배는 더 많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돈다. 설마 그런 이유로 국민의힘이 전수조사를 피하는 것은 아니리라 믿고 싶다"고 꼬집었다.
김태년 상임선대위원장은 "어렵지 않게 합의하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국민의힘에서 이런저런 조건을 갖다 붙이며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며 "이참에 국회의원뿐 아니라 자치단체장, 광역시·도의원, 기초의원까지 모두 조사하자"고 했다.
국회 비교섭단체 5당(정의당, 국민의당, 열린민주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까지도 이날 국회의원 300명에 대한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 의원 배우자·직계존비속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며 압박했다.
당초 여당의 '시간끌기·물타기'라며 전수조사에 미온적이었던 야당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배현진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논평에서 "신도시 투기 범죄의 중대 혐의 주체인 집권여당, 민주당이 온종일 야당이 동참을 안 해서 집 안의 도둑을 못 잡겠는 사정이라며 지나가는 소도 웃을 흰소리를 하고 있다"며 "입으로만 떠벌리며 국민 기만하지 말고 민주당 의원 전원의 정보공개 동의 서명부와 함께 진짜 검증대로 나오라"고 받아쳤다.
이날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야당은 전수조사가 여권의 국면 전환 전략이라며 수용 불가 방침을 밝히면서 대신 자체 내부 조사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자기 당 소속 전수조사를 엄격하게 하면 된다. 우리 당까지 끌고 들어가려 한 것에 나쁜 의도가 있다고 봐서 전수조사에 동의 안 한다"고 했다.
입장 선회 배경에는 자칫 '제 식구 감싸기'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여당의 여론전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판단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야권 관계자는 "원래 야당 내부에서도 전수조사 하자는 여론이 절대적이었지만, 여당의 물타기 우려 등으로 소극적인 의원들도 일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 여당이 괜히 뭐가 있는 것처럼 오해받으니 이번에 깔끔하게 말한 것"이라고 했다.
여당은 일단 야당의 진의를 먼저 파악한 후 전수조사 합의 협상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이다. 홍정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통화에서 "(야당의 입장 변화가) 사실 혼란스럽다.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이 먼저 제안했고, 국회의장에게도 국회 공식 차원으로 전수조사했는데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좋다'고 했고, 주호영 원내대표는 '나쁜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여당 먼저 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야당에서 전수조사) 전원 동의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렇게만 표현해선 전수조사를 수용하겠다는 건지, 합의하겠다는 건지 의미 파악이 안 된다"며 "저희로선 언제든 합의만 하면 국회 차원의 전수조사에 착수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세부 사안 협상 과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에도 공직자 비리 관련 굵직한 현안이 터질 때마다 비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정치권 전수조사 카드를 꺼냈지만, 흐지부지 끝난 경우가 적지 않다. 2018년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외유성 해외출장 의혹, 2019년 손혜원 전 의원 이해충돌 논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특혜 의혹, 이미선 헌법재판관 주식 보유 논란 때 등이 대표적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통화에서 "(합의 과정에서) 또 구체적인 절차나, 처벌을 어떻게 할지, 국정조사로 갈지, 특검을 할 것인지 등등 세부적인 조율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면서 여야가) 또 어깃장을 놓고 시간을 끌 수 있다"며 "이번에는 여야가 제대로 합의해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또 제도를 많이 바꿔야 한다. LH를 쪼개든지, 이해충돌방지법을 강화하든지, 재산공개를 강화한다든지 등등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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