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보다 빛나선 안 되는 사람', '국회의원 그림자'라고 평가받는 보좌진은 사실 의원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다. 보좌진은 의원의 생각과 의지를 '법'이라는 틀로 빚어내고, 때로는 정치 여정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선거철도 마찬가지다. 의원의 활동 전반을 보좌하는 이들의 업무는 그 범위를 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새롭게 시작한 21대 국회 보좌진들은 어떨까. <더팩트>는 이들의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눈여겨 보고, 앞으로 4년 동안 이어질 '의원-보좌진' 관계와 발전 방향을 모색해봤다. <편집자주>
'주 4일 근무제', '호칭 변화' 등 문화 개선…"단기 계약직에 적합한가"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저부터 이번 주 금·토·일 쉬려고요. 쉰다고 했다가 안 쉬면 안 되잖아요(웃음)."
국회 최초로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한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보좌진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주 4일제 도입과 관련해 "의원님이 일방적으로 한 건 아니다"라며 "선거 끝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좌진이 건의했고, 의원님도 저희가 못 쉬는걸 잘 알고 흔쾌히 좋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앞서 김 의원은 경제부총리 시절 '주 5일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김 의원의 발표 이후 보좌진들은 시범적으로 조를 짜서 월 1회 주 4일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첫 차례가 된 해당 보좌진은 "(주 4일제를 하게 돼서) 좋다"면서 "다른 보좌진들은 (주 4일제 결정이)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의원님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잘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않나"라고 주변 분위기를 전했다.
김 의원은 21대 국회 최고령 의원(73세)이지만, 평소 보좌진과 수평적인 관계를 선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실 한 보좌진은 "의원님의 얼리어답터(Early-adopter)적인 기질이나 트렌드에 반응하시는 걸 저희가 오히려 따라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21대 국회 들어 보좌진의 업무 환경·호칭 변화 등이 생겨나면서 전반적인 국회 문화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포착되고 있다. 당장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한 김 의원실을 비롯해 '얀(Yan)' 등 영어 호칭을 사용하는 이용우 민주당 의원, 업무시간 외 연락이 차단되는 메신저 사용에 나선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의 새로운 시도로 '꼰대집단'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국회가 활기를 얻을 전망이다.
카카오뱅크 대표 출신인 이 의원은 자유롭고 수평적이었던 사내 분위기를 국회로 가져왔다. 이 의원은 사내에서 '얀'으로 불렸고, 300명 이상 되는 직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울 만큼 소통을 중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얀'이라는 별칭과 관련해 "프랑스 사진작가가 한 명 있다. 애드벌룬을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작가다. 똑같은 사물도 다른 시각에서 보면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런 것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실도 '의원님', '보좌관님' 대신에 '00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조 의원은 당 공동대표 때부터 이런 방식의 호칭을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조 의원은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보좌진 소개 회견'을 열어 화제를 모았다.
조 의원은 통화에서 "(소개하는 게) 너무 당연한 것인데 사람들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고,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다"면서 "수평적인 소통은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효율성'을 중시하는 국회 특성상 수평적 구조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조 의원은 이에 대해 "수직적인 게 효율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수직적인 것이 효율적인가"라며 "국회는 공장이 아니다. 한 시간 앉아있다고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팀이 돼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과 정책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거다. (수평적 소통은) 새로운 것도 아니고, 이미 민간과 사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장혜영 의원은 '슬랙'이라는 기업용 메신저를 의원실 내 온라인 소통창구로 사용한다. 슬랙은 일반 메신저처럼 사용 가능하지만 업무시간 외엔 알림이 울리지 않는다. 장 의원은 보좌진의 퇴근과 휴식시간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슬랙을 도입했다. 또 장 의원은 보좌진과 함께 의정활동을 준비하는 스터디를 꾸려 토론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같은 국회 내 분위기에 보좌진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여당 비서는 통화에서 "보통 의원과 보좌진의 관계는 사장과 직원의 관계다. 보좌진 임명권을 의원이 쥐고 있어 보좌진은 의원을 '나를 고용하는 사람'으로 보고 충성하고 열심히 보좌하는 거였다"고 말했다.
그는 조 의원의 기자회견을 언급하면서 "(조 의원이) 직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 의정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보좌진을 그저 직원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동료'로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게 정말 좋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좌진이 사실상 의원의 직원이고, 아랫사람인 건 맞지만 '내가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를 통해 더 많은 의정활동을 할 수 있고, 의원 본인이 생각하지 못하는 걸 할 수도 있다. 의원들이 직원을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면 서로 더 힘이 날 것 같다"고 밝혔다.
다른 야당 보좌진은 "지금 당장을 보기보다 앞으로 3년 뒤를 평가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의원은 보좌진에게 항상 무언가를 시켜야하기 때문에 수평적인 관계가 어렵다. 말 그대로 우리는 스태프"라면서 "일단 시도는 굉장히 좋지만, 국회의원 업무의 특성상 수평적으로 (의사소통)할 경우 속도가 안 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긴 4년에 한 번씩 선거하는 곳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기다려주고 배려할 시간이 부족하다"면서 "우리는 4년 단기 계약직이다. 그 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도 했다.
다만 그는 앞으로 국회의원과 보좌진 관계 등의 발전을 위해 "20대 국회 때 보좌진들이 의원의 '심기'를 보좌하는 모습을 보면 회의감이 많이 들기도 했다. 또 의원이 불출마하거나, 컷오프·의원직 상실 등에 처했을 때 내 의지와 상관 없이 항상 '수동태'가 되는 점이 있었다"며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실 보좌진은 '보좌진 업무 명시'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동사무소 홈페이지만 가도 무슨 과에 누가 어떤 일을 소관하는지 적혀 있다. 하지만 보좌진은 이름밖에 나와있지 않다"며 "국회 A 의원 보좌관이 홍길동인데, 그 사람의 업무는 뭐고 전화번호는 무엇인지 등을 구분해 놓으면 민원인들을 만날 때나, 업무할 때 더욱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moo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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