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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확대경] '당선된 방'이 더 무섭다?…20대 임기말 국회 '이직열풍'

  • 정치 | 2020-05-13 05:00
20대 국회 임기말 의원회관에선 보좌진들의 이직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 전경. /더팩트 DB
20대 국회 임기말 의원회관에선 보좌진들의 이직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 전경. /더팩트 DB

'낙선·불출마·컷오프·당선'된 방 보좌진들의 냉혹한 생태계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선거 열심히 뛰고 당선됐다. 의원님 한번 더 하실 수 있게 만들어드렸고, 기쁜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불안하다."

20대 국회 임기말 이른바 '당선된 방' 보좌진들의 이야기다. 야당의 경우 의원 수가 큰 폭으로 축소된 만큼 의원 개개인의 당내 입지·역할에 대한 중압감이 커졌고, 당선인들이 유능한 보좌진을 뽑으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국회 의원회관엔 '이직 열풍'이 불어닥쳤다. 여야를 막론하고 당선된 방, 낙선한 방, 불출마한 방, 컷오프된 방 등 각자 상황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 아직 이직 자리를 구하지 못한 보좌진들은 동분서주하며 공식·비공식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다.

국회 사무처는 지난 11일부터 각 의원실별 보좌진 등록을 시작했다. 국회의원 1명 당 둘 수 있는 보좌진은 총 8명으로,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8·9급 비서 각 1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야당 소속 한 보좌진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당선된 방이 더 문제다. 당선된다고 (보좌진을) 다 끌고 간다는 관행은 19대부터 깨진 지 오래"라고 했다.

그는 "당선된 방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사람은 더욱 이직 자리를 찾기 어렵다. '당선됐는데 왜 이력서를 썼느냐'는 물음이 당연히 나오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구직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당선자들도 보좌진 구성을 어떻게 꾸려가야할지 생각이 많을 거다. 일단 쪽수가 많으면 이대로 가고 다음을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 당의 상황에선 의원이 주목받을 수있는 기회가 훨씬 많아졌고, 그에 따라 보좌진에게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낙선한 의원실 보좌진도 비상이 걸렸다. 당장 선거를 뛰느라 다른 자리를 알아볼 여력은 없었고, 불출마·컷오프가 결정된 곳중 선거 캠프에서 일하지 않은 보좌진들이 이미 이직을 확정지어뒀기 때문에 자리는 더욱 없는 상황이다.

통합당에서 21대 국회에 등원하지 않는 의원은 77명에 달한다. 총선 참패로 일자리 시장은 더욱 좁아진 가운데 일부 낙선한 의원들은 보좌진의 생계 유지를 위해 다른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리를 부탁하는 등 일도 빈번히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각 의원실은 '새손님 맞이'를 위해 오는 15일까지 방을 비우도록 권고받은 상태다. 기존 방을 정리하는 보좌진들은 '새 둥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12일 정리할 짐을 내놓은 한 의원실 문 앞. /문혜현 기자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각 의원실은 '새손님 맞이'를 위해 오는 15일까지 방을 비우도록 권고받은 상태다. 기존 방을 정리하는 보좌진들은 '새 둥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12일 정리할 짐을 내놓은 한 의원실 문 앞. /문혜현 기자

다른 야당 소속 보좌진은 "야당은 웬만하면 자리가 다 정리된 상태다. 영감(보좌진들이 의원을 부르는 은어)들이 처음 국회에 올 때 보은 인사와 국회 인사를 나눠서 의원실을 꾸린다"며 "이번엔 초·재선 의원이 많기 때문에 국회를 잘 알고 있는 관급 인력을 먼저 뽑는다. 그래서 야당 관급 인사는 마무리가 됐다. 지금 나오는 (채용)공고는 기존에 있던 사람이 '새 방'으로 옮겨가면서 빈 자리를 구하는거다. 6·7·8·9급 비서들은 자리가 조금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야당소속 의원실 보좌진은 조금 다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일단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는 상황이다. 실업 급여를 받으며 생활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해당 보좌진은 "야당 자체에서 자리가 적어 갈 데가 없는 상황"이라며 "민주당에서 통합당 출신 보좌진을 채용할 경우 철저히 검증하라는 공문이 있었던 뒤로 사실상 '뽑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다보니 일부의 경우는 다른 일을 찾아 나갈 생각을 하고 있다. 직급 높은 보좌관·비서관은 기업 대외협력팀 등에 갈 수 있지만 7급 비서나 인턴 비서는 연령대 등이 기업에 신입으로 입사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구직난에 당적을 옮겨 이력서를 넣는 보좌진도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타당에 속해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과 일하는 게 어렵다는 인식이 퍼져 있을 뿐 아니라 패스트트랙·총선을 거치면서 타당 보좌진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24일 윤호중 사무총장 명의로 각 의원실에 '제21대 국회 보좌진 구성 안내' 공문을 통해 '타당 출신 보좌진 임용 시 정밀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야당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통합당에 있던 보좌관급 이상 인사가 당을 옮기는 건 직급을 낮춰서 하는 건 몰라도 리스크가 크다"면서 "한 번 이력서가 들어가면 어디든 소문이 나게 돼 있다. 밖에서는 다들 구직난이라며 이력서를 돌린다고 하지만 이 와중에서도 그런 걸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의원 1명당 최대 8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21대 국회를 앞두고 새 보금자리를 찾아 나선 보좌진들은 치열한 생존경쟁 중이다. 국회 의원회관 전경. /더팩트DB
의원 1명당 최대 8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21대 국회를 앞두고 새 보금자리를 찾아 나선 보좌진들은 치열한 생존경쟁 중이다. 국회 의원회관 전경. /더팩트DB

이러한 생각은 여당 보좌진도 비슷했다. 여당 초선 의원실 소속 한 보좌진은 통화에서 "(21대 국회)야당에서 여당으로 오는 경우를 아직 보지 못했다"며 "저희 입장에서도 좀 그렇긴 하다. 다른 이념을 가졌던 사람과 의사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여당의 치열한 구직 경쟁은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해당 보좌진은 "민주당 의석수가 대폭 확대되긴 했지만 채용공고가 그렇게 많이 올라오지 않는다"며 "대부분 채용 절차가 수면 아래에서 추천을 받아 이뤄진다. 그래서 국회 미경험자가 아닌데도 아직 자리가 결정되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들 '정보싸움' 같다고 이야기한다"며 "또 개원 전까지 굳이 8명을 채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상임위 배정 결과를 보고 그에 맞는 보좌진을 위한 자리를 남겨두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부 의원실 내정자들은 경쟁자들을 쳐내기 위해 부정적인 소문을 낸다거나, '결국 아무도 채용하지 않는' 채용공고를 올려두는 등 일들이 간간이 들려온다.

새로운 자리를 구하지 못한 보좌진들에게 아예 방법이 없진 않다. 국회에는 두 번의 '큰 장'이 열린다. 첫 번째는 국회 개원 첫 해 국정감사 직후다. 의원들이 '보은 인사'로 영입한 보좌진들이 국정감사에서 역량 등에 한계를 느끼고, 의원 또한 상임위의 전문성 강화 등을 명분으로 '물갈이'에 나선다. 때문에 지금 당장 이직 자리를 구하지 못한 보좌진들은 '그 때 들어가면 된다'는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

두 번째 '큰 장'은 총선 직전 국정감사 이후로, 정책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보좌진 대신 선거 전략과 홍보에 능한 이들이 의원실로 입성한다. 일부 정책 전문 보좌진들은 국정감사 시기에만 일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moo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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