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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택의 고전시평] '난맥상' 한국 정치, 원인을 살펴보자

  • 정치 | 2019-12-26 00:00
 한국 정치가 난맥상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이나 정치수준을 비판하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지연, 혈연, 학연 및 이미지에 미혹되어 자격 없는 정치인을 뽑아줬기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장 모습./국회=남윤호 기자
한국 정치가 난맥상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이나 정치수준을 비판하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지연, 혈연, 학연 및 이미지에 미혹되어 자격 없는 정치인을 뽑아줬기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장 모습./국회=남윤호 기자

[더팩트 | 임영택 고전시사평론가] 비즈니스나 국가를 경영할 때 어떤 사람과 일을 도모하는가는 성패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은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이다.

집단이나 조직 및 국가의 용렬한 지도자는 자신과 마음이 통하고 편안한 사람만 곁에 둔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 곁에서 극심한 긴장을 풀어주고 재충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역할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도자가 편안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의 말에만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주로 채택한다면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도자가 전지전능하여 매번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지도자의 곁에 있는 무능하지만 편안하고 마음이 통하는 측근들은 지도자의 잘못된 의견에도 무조건 옳다고 맞장구를 치기 때문이다.

'춘추좌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춘추시대 제나라 경공이 신하들을 이끌고 사냥을 갔다가 돌아올 때 재상인 안자가 뒤를 따랐는데 신하 양구거도 마차를 몰고 와서 경공을 알현했다. 경공이 안자에게 "양구거만이 나와 마음이 맞는(和) 사람 같소"라고 말했다. 그러자 안자가 "제가 보기에 두 사람 사이에는 ‘같음(同)’만 있을 뿐‘ 어울림(和)’은 없습니다. 양구거는 군주의 뜻에 무조건 따르기만 할 뿐인데 무엇이 잘 맞는다는 말씀인가요?"라고 말했다.

이 얘기를 들은 경공은 의아해하며 "같음과 어울림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안자가 "잘 어울린다는 것은 양념이 조화를 이뤄야 맛있는 탕을 끓여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싱겁지도 않고, 짜지도 않으면서 적절하게 재료들이 어우러져야 제 맛이 납니다. 군신 관계도 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군주의 의견이라고 해서 무조건 옳고 완전무결할 수가 있겠습니까?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신하가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나라를 평안하게 이끄는 길입니다. 하지만 양구거가 군주의 뜻을 무조건 받드는 것은 부화뇌동과 다르지 않습니다. 군주가 좋다고 하면 그 또한 좋다고 하고, 안 된다고 하면 그 또한 안 된다고 합니다. 만일 맹물을 이용해 맹물의 간을 맞춘다면 누가 이 물을 마시겠습니까. 또 금슬로 어느 한 가지 소리만 탄주하면 누가 이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같음(同)’이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열국지'의 마지막에 나오는
'열국지'의 마지막에 나오는 "오랜 역사의 흥망을 모두 관찰하니 모든 것은 조정에 충신이나 간신 중에 누구를 등용하느냐에 달려있다"는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더팩트 DB

지도자가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고 보다 양질의 의사결정을 하려면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래서 현명한 지도자는 직언을 하는 사람을 곁에 둘 줄 안다. 같은 사람끼리 만나면 편하고 쉽게 섞일 수는 있지만 자극과 영향이 적어서 발전은 거의 없다. 조화를 이루되 똑같아지지 않는 경지가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 분야가 가장 후진적 영역이 된 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이미 오래 되었다. 정치가 난맥상을 보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시민들의 정치의식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왜 우리의 정치인이나 정치수준은 이렇게 엉망인가’라고 한탄하지만 질이 낮은 정치인을 뽑아준 시민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나 시스템의 탓만 할 일이 아니다.

정치인이나 정치수준을 비판하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지연, 혈연, 학연 및 이미지에 미혹되어 자격 없는 정치인을 뽑아준 결과가 바로 한국의 후진적인 정치 현실이다. 또한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이 무능한데도 자신들과 마음이 통하는 인물의 의견만 듣거나 그들을 측근에 두는 것도 한국 정치가 수준이 낮은 이유이다. 유력자의 무능한 측근들은 유력자의 입속의 혀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유력자 곁에서 ‘인(人)의 장막’을 친다.

'한비자'에 다음과 같은 술집의 ‘사나운 개’ 이야기가 나온다. 송(宋)나라 사람으로 술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술의 양을 속여 팔지 않고 손님을 공손하게 대했으며, 술을 만드는 재주도 아주 뛰어났다. 또 깃발을 높이 내걸어 멀리서도 술을 파는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술이 팔리지 않아 시게 되었다. 그 이유를 이상히 여겨 마을의 현명한 사람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주인에게 "당신네 개가 사납소?"라고 물었다. 주인은 "개가 사나운 것과 술이 팔리지 않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 사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오. 어떤 사람이 어린 자식을 시켜 돈을 주고 술병에 술을 받아오게 하면 개가 달려와서 그 아이를 무는 경우가 있을 것이오. 이것이 술이 쉬고 팔리지 않는 이유요"라고 답했다.

무릇 나라에도 사나운 개와 같은 존재가 있다.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있는 인사가 나라를 다스리는 책략을 품고 만승의 군주에게 밝히려고 하는데, 대신이 사나운 개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이것이 군주의 눈과 귀가 가려지며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있는 인사가 등용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한비자는 군주 주변에서 훌륭한 인재를 시기하여 등용을 막거나 등용되었더라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여 스스로 떠나게 하거나 군주가 내치게 하는 못된 신하를 술집의 사나운 개로 비유하고 있다. 사나운 개는 신하들 뿐 아니라 때로는 군주까지 물어뜯어 파멸의 길로 이끈다. 결국 조직이나 국가의 지도자는 무능하지만 마음이 통하고 편안한 사람 및 현명한 사람의 등용을 막는 ‘사나운 개’를 측근으로 두지 않아야 된다.

'열국지'의 마지막에 나오는 "오랜 역사의 흥망을 모두 관찰하니 모든 것은 조정에 충신이나 간신 중에 누구를 등용하느냐에 달려있다"는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열국지'의 마지막에 나오는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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