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손으로 직접 뽑은 그 국회의원은 잘하고 있습니까. 2016년 4월 총선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020년 21대 총선을 준비할 때가 됐습니다. 하지만 국회는 시간이 가도 여전히 당파싸움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꼴을 보려고 국회의원을 뽑지는 않았는데 말이지요. 우리를 대신해서 정치를 해달라고 했는데, 민심은 외면한 채 자신의 정치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신지요. <더팩트>는 화제와 이슈의 국회의원 지역구를 찾아 '풀뿌리 민심'을 듣는 '그 의원 지역구에선'을 연재합니다. 모든 시민을 만날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 유권자를 만나 '우리 의원님'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들어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정치 1번지'의 자존심…이낙연 출마설에 "일단 지켜볼 것"
[더팩트ㅣ종로=박숙현 기자] "정세균 의원이 국무총리하면 내년 총선은 누가 나오려나. 이낙연?"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으로 상가를 운영하는 A 씨(40대·여성)는 언론보도를 보자마자 이웃 상점 사장과 내년 총선에서 종로구에 나올 정치인을 이같이 꼽았다. 당장 이낙연 총리 외에 딱히 떠오르는 인물은 없다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6선 중진이자 국회의장(20대 국회 전반기)을 지낸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더팩트>는 정 의원의 총리 지명에 대한 반응과 21대 총선 출마 가능성이 높은 정치 인사에 대한 지역 민심을 듣기 위해 이날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종로구 동부지역(창신동·혜화동)과 보수색이 짙은 서부지역(삼청동·청운동) 일대를 취재했다.
종로구에선 벌써부터 이 총리 출마설이 돌고 있었다. 정 의원과 한 동네라 자주 얼굴을 봤다는 창신동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B 씨(70대·여성)는 "(이 총리 종로 출마 얘기가) 많이 돌죠. 민주당 식구들은 다 벌써 이래이래(참여) 하고 그 밑에 따라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은 안하죠"라고 했다.
문 대통령도 정 의원을 국무총리로 지명하면서 "이 총리가 국민의 폭넓은 신망을 받고 있는 만큼 이제 자신의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놓아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밝히면서 이 총리 '총선 등판론'에 불을 지폈다. 현재 정치권에선 이 총리가 비례대표 후보로 나와 '총선 간판'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당내 기반을 다질 것이라는 데 무게가 쏠리지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출마를 준비하는 서울 광진을이나 거물급 정치인들을 키워낸 종로 출마, 정부 청사가 밀집한 세종 출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총리가 오는 것에 대해 종로구 주민 일부는 긍정적이었지만, '지켜보겠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B 씨는 "정 의원님도 여기 토박이었나요? 이사오셨잖아요. 그러니 (이 총리도) 오셔가지고 자기 능력발휘를 해주시면 국민들이 믿고 밀어주는 거죠"라며 "그 사람(이 총리)도 마음이 곧아요. 오시면 아마 자유한국당에서 누구하고 경쟁할지 몰라도 100% 될 것 같아요"라고 했다.
상가를 운영 중인 또 다른 창신동 주민 C 씨(50대·남성)는 "다음 총선에선 정치 신인들이 국회에 입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이 총리는 인물 호감도에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해서 나온다면 긍정적"이라고 했다.
중도 성향 지지자들이 모여 있는 혜화동 주민 D 씨(60대·남성)는 "이 총리가 출마하면 좋죠. 역량도 훌륭하신 분"이라면서도 "공천을 받아서 활동을 활발하게 하시면 좋겠지만 옛말에 전임자가 항상 좋다는 소리가 있잖아요? 일단 두고 봐야죠"라고 했다.
이 총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악화된 경제 상황이 이유였다. 서대문구에 거주하고, 삼청동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E 씨(60대·여성)는 "이 총리가 총선 간판으로 나간다고 하는데, 웃기지도 않는다. 내가 정말 반대할 수 있으면 할까 (싶다). 경제를 이렇게 망가뜨려 놓고"라고 했다.
E 씨에 따르면 카페를 열었던 4년 전만 하더라도 장사가 수월했지만, 현재는 광화문 광장에서 지속된 시위로 삼청동 일대 도로가 자주 막히고 경찰 인력과 시위대들로 꽉 차면서 상권이 무너졌다고 한다. 청와대 인근 청운동 상가 주민도 "청와대 앞이며 광화문까지 온갖 규제들이 생겨 '규제의 섬'에 갇혔다"고 한탄했다.
총리로 자리를 옮기며, 종로를 떠나게 된 정 의원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정 의원은 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에서 4선을 한 뒤 종로로 지역구를 옮겨 19대 총선과 20대 총선에서 '친박 좌장'인 홍사덕 전 의원과 오 전 시장을 잇달아 꺾었다. 정치권에선 정 의원이 '3명 이상 모인 자리엔 어디든 달려갈 정도'라며 지역구를 착실히 다져왔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지역구에서도 정 의원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며, 총리 지명도 환영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D 씨는 "지역주민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런 훌륭하신 분이 총리로 가는 것에 대해 환영해요. 다만 정 의원님처럼 활발하게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공헌하는 분이 오실지 의문"이라며 "(의전) 서열 2위 의장을 하시다가 5위 총리로 가시는데 지역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두고봐야겠네요. 좀 아깝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바닥 민심을 차근히 다져온 정 의원은 최근까지도 7선 도전을 기정사실화해왔다. 청와대를 나온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제도권 정치 은퇴를 선언한 것도 총선 출마 예정인 정 의원의 벽을 넘지 못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정 의원이 방향을 틀어 총리를 수락한 배경에는 지역민들의 환영 분위기가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B 씨는 "지난 12일에 회장단들 망년회 겸 지회 모임을 했었어요. 그때 참석한 정 의원님이 '아직까지는 본인이 (총리) 수락을 안 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 그래서 '총리 하세요'하면서 박수 쳐드렸어요. (총리하시면) 잘하실거야"라고 했다.
지역구민들의 중진 의원 피로감에 대한 부담도 고려했을 수 있다. E 씨는 "(정 전 의장이 삼청동 일대) 지역구에 대해선 한 번도 일한 적이 없었어요. 표 달라고 악수하고 다닌 뒤에는 한 번도 못봤어요"라고 했다. 창신동 D 씨도 "정 의원은 두 번 하셨으니 이제 그만 정치 은퇴하면 좋겠다. 정치 신인들이 국회에 입성하면 좋겠다"라고 했다.
종로구는 총 17개 동으로 이뤄져 있다. 유권자 수는 지난 16대 총선 당시 18만750명에서 최근 20대 총선 때 15만 6261만 명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21대 총선 인구수에서 미달(올해 1월 31일 기준 15만866명)해 선거구 통폐합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가 위치해 있고, 평창동과 창신동, 동대문시장 등 다양한 공간이 한데 있어 입체적이다. 보수적인 성향을 띄는 서부지역(평창동·부암동·청운효자동·삼청동·사직동·무악동·교남동)과 진보색이 있는 동부지역(종로·이화동·혜화동·창신동·숭인동)의 유권자 수도 엇비슷해 국가 축소판이라 불릴 만하다.
때문에 오래전부터 대권 잠룡들이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곳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단순한 지역구 한 석 이상의 상징성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종로 1번지'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듯이 종로구 주민들은 여야 가리지 않고 판단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삼청동 주민(60대·남성)은 "출마자에 대해선 잘 얘기를 안 하고요. 여든 야든 열심히 하면 밀어줘야죠"라고 했다.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만난 주민(60대·여성)도 "아직은 좀 더 봐야 할 것 같다"며 "이 총리보다 더 좋은 분 나오면 그 분 찍어야겠고, 조금 더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본인을 종로 토박이라고 소개한 혜화동 상점 사장(50대·여성)은 "여기는 옛날부터 정치 1번지라고 하잖아요. 보는 관점이 곧은 것 같아요. 다들 오래 사시는 분들이 많고. (여야에) 안 치우치고 올바른 분들을 뽑는 데가 종로"라며 "누가 또 나오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꼭 그 사람(이 총리)이 이쪽으로 와서 뽑아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고 관망할 것이다. 그게 종로 토박이들이에요"라고 했다.
unon89@tf.co.kr
[영상=한건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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