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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택의 고전시평] '공명지조(共命之鳥)'와 정조에게 배울 점

  • 정치 | 2019-12-17 00:00
우리는 지금 불통이나 ‘쇼’에 불과한 소통이 아닌 진정성 있는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상대를 무너뜨려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소통하고 상생하는 관계임을 ‘공명지조’와 정조에게서 배워야 한다. 사진은 지난 10월 3일 서울 도심의 시위 장면./이효균 기자
우리는 지금 불통이나 ‘쇼’에 불과한 소통이 아닌 진정성 있는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상대를 무너뜨려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소통하고 상생하는 관계임을 ‘공명지조’와 정조에게서 배워야 한다. 사진은 지난 10월 3일 서울 도심의 시위 장면./이효균 기자

상대는 무너뜨리는 대상이 아니라 소통하고 상생하는 관계

[더팩트 | 임영택 고전시사평론가] 해마다 이때쯤이면 '교수신문'에서 한 해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사자성어를 선정하여 발표한다. 2001년부터 해 오고 있는 작업인데 2001년 ‘오리무중’을 시작으로 2018년 ‘임중도원’까지 발표했다. 올해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로,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 같이 생각하지만 그러다가는 둘 다 죽고 만다는 뜻의 ‘공명지조共命之鳥’가 선정되었다.

불교경전인 '불본행집경'과 '잡보잡경'을 보면, 이 새의 하나의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 하나의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이에 질투심을 느낀 다른 머리가 화가 나서 어느 날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어버렸다. 공동운명체인 두 머리는 결국 모두 죽게 된다. 공명지조를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는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자기도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어 (이 사자성어를) 선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냉각기이지만 그동안 남북이 극단적으로 대립해 있다가 그나마 2018년에 상호 적대감을 해소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남북관계는 그렇다 치고 남쪽 사회의 여러 유형의 분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야의 극한대립, 노동과 자본의 대결, 세대 간의 갈등 및 지역 간의 대립 등 우리 사회는 여러 부문에서 극단적 대립이 만연해 있다.

특히 올해는 조국의 법무부장관 임명 전후로 나라 전체가 극단적으로 분열되었으며 지금도 그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일방은 타방을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 대결의 끝은 올해의 사자성어인 ‘공명지조’의 운명일 수밖에 없다. 대결 과정에서 스스로의 약점을 전부 드러내고 일방적 승리는 있을 수 없으며 설령 승자가 있다 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다.

어느 일방이나 영향력 있는 특정 인물이 대승적 결단을 내려서 상대진영 및 상대방을 포용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결국 정치권 및 시민들의 극한 대립은 정치권 인사들의 불통에서 비롯한 일이다. 위정자들은 조선 시대 정조에게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아버지 사도세자는 당파싸움의 희생양이 되었고, 자신은 바늘방석 위에 앉아 있는 세손 생활을 하다가 정조는 왕위에 올랐다. 할아버지 영조의 뜻을 이어받아 탕평 정책을 계속 펼쳤으며 과거의 죄를 묻는 일은 최소한의 범위에서 처리하고자 했다. 반대 세력의 의견에도 귀 기울이고 오직 옳고 그름만을 따졌다. 우리 시대의 어떤 정치인도 정조보다 더 심한 반대파의 위협에 시달린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을 세손으로 확정된 뒤에도 정조는 "옷을 벗지 못하고 자는 때가 또한 몇 달인지 알 수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았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정조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자객의 침입에 대비해서라도 독서로 밤을 새곤 했다. 독서는 학문의 수단일 뿐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는 무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가 왕위에 오른 지 1년째인 1777년 7월 28일에 촛불을 켜고 책을 읽고 있던 경희궁 존현각에 암살범이 침입했다. 정조가 죽은 뒤 만들어진 '정조실록'에는 그날 도둑이 들었다고 적혀 있지만, 도둑이 아니라 암살을 목적으로 침입한 자객이었다. 이 자객은 13일 뒤에 다시 궁궐 담을 넘으려다 군사들에게 붙잡혀 ‘암살시도사건’의 진상이 드러났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게 한 홍계희의 손자 홍상범이 궁궐의 호위 군사를 매수하여 암살을 시도했다. 할아버지가 정조의 아버지를 죽이는 일에 가담했으니 정조를 없애지 않는 한 희망이 없다고 본 것이다.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동생인 홍낙임도 가담했다. 혜경궁 홍씨는 단식을 하면서 정조에게 동생을 풀어달라고 시위했다. 정권을 잡고 있던 노론도 홍낙임이 제 편이라고 어물쩍 넘어가기를 원했다. 정조는 홍상범은 죽이고 외삼촌 홍낙임은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2009년 2월에 정조가 반대파의 중심인물이었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가 공개되었다. 약 4년간에 걸쳐 보낸 297통이었다. 정조가 욕을 하는 대목도 나오고 심환지와 정치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협조를 지시하는 부분도 있다. 정조가 편지를 읽은 뒤에는 없애버리라고 명령했는데도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심환지가 남겨두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편지가 공개되자 정조가 반대파 인물과 짜고 술수를 부리기도 했다는 둥 말이 많았다. 화를 내고 욕을 하는 구절을 보고는 정조의 인간적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정조가 반대파의 중심인물이며 독살의 배후 인물로까지 의심받는 심환지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이 사실을 통해 어리석은 군주와는 다른 정조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 불통의 권력자는 반대 세력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귀는 닫고, 말도 섞지 않으려 한다. 반면에 정조는 반대 세력조차 소통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우리는 극단적 분열과 대립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과 다른 상대방 사이에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벽을 쌓는다. 심지어는 상대방을 무너뜨려야 할 적으로 간주한다. 대화와 타협, 소통이 끼어들 여지는 처음부터 없다. 정치인이 다른 정치인이나 국민을 대상으로 소통하는 것을 보면 ‘쇼’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나 국민을 이해하려는 진정성은 갖다버린 지 오래이면서도 자신이 소통을 하는 양 연출하는 데만 급급하다.

소통은 가면놀이나 번지르르하게 꾸며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연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불통이나 ‘쇼’에 불과한 소통이 아닌 진정성 있는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상대를 무너뜨려서 이겨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소통하고 상생하는 관계임을 ‘공명지조’와 정조에게서 배워야 한다.

우리는 지금 불통이나 ‘쇼’에 불과한 소통이 아닌 진정성 있는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상대를 무너뜨려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소통하고 상생하는 관계임을 ‘공명지조’와 정조에게서 배워야 한다. 사진은 지난 10월 3일 서울 도심의 시위 장면./이효균 기자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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