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어려운 '서민'보다 덜 어려운 '중산층'을 위한 천문학적 세금 투입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이하 서민대출) 신청액이 일주일 만에 공급총액인 20조 원을 돌파했다. 금융위원회 산하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지난 16일부터 오는 29일까지 금리변동 위험이 있는 주택담보대출을 낮은 금리의 장기, 고정금리, 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로 대환하는 서민대출 접수를 받고 있다.
이 대출의 조건은 과연 '서민이 대상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후하다. 부부합산 연소득 8500만 원 이하에 9억 원 미만 1주택을 보유한 자를 대상으로 최저 1.2%, 최대 2.2%의 금리로 기존 대출을 바꿔주는 것이다(최대 대출한도 5억 원). 서민대출은 접수를 시작한 지 6일째인 22일 신청 건수 17만5000여 건, 신청금액 20조4000억 원을 돌파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당초 예고한 기한까지 신청자를 받고, 이 중 집값이 낮은 순서대로 전환대출을 실시할 예정이다. 당장 관련 소식을 다룬 기사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집 없는 사람, 전·월세에 사는 사람부터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낸 세금으로 9억 원 미만의 집을 가진 중산층 이자를 깎아주는 것을 서민복지라고 봐야 하나"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실제 국민 대다수가 '자가 주택 마련의 꿈'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집을 보유한 자는 전체의 과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국토교통부가 올 3월 발표한 '2018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택점유형태는 자가 보유 57.7%, 전세 15.2%, 보증금 있는 월세 19.8%, 보증금 없는 월세 3.3%, 무상 4.0%다. 특히 집값이 높기로 유명한 서울은 자가 보유율이 43.3%로 50%에도 미치지 못하고, 전세(25.7%)와 보증금 있는 월세(24.6%)에 사는 사람이 50% 이상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기준 중위소득(전 국민을 100명이라 가정할 때 소득 규모가 50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의 소득)은 2인 가구 기준 299만 원이다. 8월 말 기준 평균주택매매가격은 전국 3억525만 원, 서울 6억4470만 원이다.
담보인정비율(LTV)이 40%로 축소된 서울에서 평균값의 주택을 사려면 대략 3억8000만 원가량의 자금을 보유해야 하는데, 이는 중위소득인 2인 가구가 10.6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한 금액이다. 실제 매달 생활비로 지출되는 금액을 감안하면 중위소득의 가구는 대출을 최대한으로 받는다고 해도 평생 내 집 마련이 쉽지 않다.
이들 대다수는 집을 가진 자보다 더 높은 금리인 3~4%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전세 아니면 반전세, 혹은 월세로 거주해 주거비용 부담이 훨씬 더 높은 게 현실이다.
무주택자와의 형평성도 문제지만, 기존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이들과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서민대출보다 엄격한 조건으로 앞서 고정금리 2.5%가 넘는 디딤돌 대출, 보금자리론을 받은 더 서민에 가까운 이들은 정작 '이미 고정금리 대출을 받았다'는 이유로 이번 서민대출을 이용할 수 없다.
덜 어려운 이들을 위한 '이상한 서민대출'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에 집을 가진 중산층의 이자부담 경감에 2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세금을 투입하기에 앞서 더 어려운 진짜 서민을 위한 비슷한 정책을 먼저 펼칠 것을 기대한 것은 지나친 욕심이었던 것일까.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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